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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교육을 다시 묻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경쟁이 없는 세계가 아니다

교실 앞자리에 앉은 초등학교 6학년 재혁이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맺혀 있다. 수학 시간이 시작되자마자 칠판에는 복잡한 수학 공식들이 빽빽하게 채워지고, 짝꿍은 익숙한 콧노래를 부르며 쓱쓱 문제집의 빈칸을 동그라미로 메워 나간다.

재혁이는 첫 줄조차 쓰지 못한 채 연필 끝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이윽고 아이는 조용히 샤프를 필통 속에 밀어 넣고, 문제집 여백에 낙서를 끄적이기 시작한다. 선생님이 다가오자 재혁이는 피식 웃으며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쏘아붙인다.

“어차피 저 원래 수학 포기했어요. 공부 안 할 거예요.”

재혁이의 이 당돌한 포기는 정말 나태함과 의지 부족의 발로일까. 아니다. 아이는 이미 수학상, 수학하까지 수년 치 진도를 끝내고 기다리는 또래 집단의 아득한 속도 앞에서, 자신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저 아득한 출발선의 격차를 좁힐 수 없다는 냉엄한 현실을 영리하게 간파했다. 단 한 번의 시험이 자신의 인지 능력을 바닥으로 종신 선고해 버리는 폭력적인 경쟁 앞에서, 아이는 상처받지 않기 위해 자존감 보호막을 친 것이다. “도전해서 패배자가 되느니, 아예 도전하지 않는 기권자가 되겠다.” 이것은 10대들의 너무도 합리적이고 서글픈 자기방어 전략이다.


대부분의 사회학자나 교육 전문가들은 눈만 뜨면 “경쟁사회”, “피로사회”를 외치며 교실에서 경쟁을 완전히 해체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인다. 경쟁은 해롭고, 비교는 죄악이며, 온실 같은 평화를 주는 것만이 참된 양육이라 선전한다.

하지만 현실의 삶을 살아갈 아이들에게 경쟁을 무작정 피하라는 낭만적 위로는 무력한 위선에 가깝다. 아이들이 살아갈 사회는 매 순간 크고 작은 경쟁과 협력의 도전으로 가득 차 있으며, 경쟁을 영영 모르는 상태로 기르는 것은 오히려 삶의 면역력을 원천 박탈하는 처사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정말로 응시하고 타격해야 할 핵심 문제는 경쟁의 유무가 아니라, '무기력을 기획하도록 잘못 설계된 단 한 줄짜리 서열 경쟁의 폭력성'이다.

모든 아동을 국·영·수의 진도 속도라는 한 줄 위에 세우고 같은 등수로 판단하는 경쟁은 아이의 성장을 좁게 만든다. 건강하고 나를 다시 움직이게 만드는 경쟁은 다음의 네 가지 기둥 위에서만 비로소 탄생할 수 있다.

  1. 재시도성 (Re-testability): 한 번의 실패가 인생 전체의 사망 선고가 되지 않고, 언제든 전략을 보완해 다시 도전할 수 있어야 한다.
  2. 통제가능성 (Controllability): 내 행동과 공부 방법의 변화가 다음 결과의 눈금을 실제로 정직하게 밀어 올릴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
  3. 적절한 거리 (Manageable Gap): 따라잡을 수 있는 한두 걸음 앞의 궤적이 경쟁 대상이어야 한다. 아득히 멀리 날아간 1등과의 비교는 절망만 생산할 뿐이다.
  4. 다차원성 (Multi-dimensionality): 우리 사회가 인정하는 '유능함의 축'이 여러 갈래여야 한다.

우리가 흔히 범하는 거대한 착각은 수학을 잘하는 지능이 곧 인간의 탁월함 전체를 대변한다는 일차원적 오만이다. 하지만 PISA 2022의 국제 창의적 사고 평가 데이터는 이 오래된 낡은 오만을 정면으로 부순다.

전 세계 수만 명의 아동을 정밀 평가한 결과, 창의적 사고 영역에서 전 세계 최상위권의 독보적인 탁월함을 보인 한국 학생들 가운데, 국·영·수 교과 성적에서도 최상위권인 학생은 38%와 23% 수준에 불과했다.

수식에는 서툴지라도 현상의 틈새를 날카롭게 관찰하고 아름다운 가설을 창조해 내는 아이들, 텍스트 암기는 느릴지라도 실제 문제를 도구를 활용해 거침없이 해결하는 다차원적인 천재성이 우리 곁에 이미 숨 쉬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한 줄짜리 사다리 위주의 상대평가 교실은 이 수많은 입체적 가능성들을 '평균 이하'라는 단 하나의 지표로 손쉽게 절단해 가위질해 왔다.


좋은 사회는 사람들을 단 한 명도 줄 세우지 않는 평평한 유토피아가 아니다. 한 줄로만 세우지 않는 사회, 수많은 사다리를 인정하고 각 사다리를 타고 올라선 저마다의 탁월함에 정직한 가치와 먹고살 길을 기꺼이 화환해 주는 입체적인 다원주의 사회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경쟁이 없는 무중력의 교실이 아니다. 비록 오늘의 승부에서는 깨졌을지라도, 내 노력을 수정해 내일 다시 부딪쳐볼 맷집을 주는 "경쟁해도 결코 무너지지 않는 단단한 주체적 주권의 경험"이다. AI가 모든 지식의 첫 수행 비용을 붕괴시키는 위대한 변화의 시대, 기술이 복구해야 할 진짜 교육의 목표는 이 수많은 경쟁의 축을 아이들의 무늬대로 자유롭고 풍성하게 열어젖혀 주는 인프라적 비계의 마련이다.

함께 읽은 자료

OECD (2024). PISA 2022 Results (Volume III) — Country Notes: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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