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경쟁은 나쁜 것일까? 좋은 경쟁의 조건과 교육의 역할

핵심 3줄 요약

  • 경쟁 자체보다 한 번의 패배가 사람 전체의 판결이 되는 경쟁 구조가 더 큰 문제일 수 있다.
  • 좋은 경쟁에는 재시도 가능성, 행동으로 바꿀 수 있는 부분, 적절한 경쟁거리, 한 줄로 끝나지 않는 여러 경쟁축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 글의 작업모형이다.
  •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경쟁 없는 세계보다 경쟁 속에서 패배를 정보로 읽고 다시 움직일 수 있는 경험이다.

아이들은 경쟁 자체를 싫어하는가

앞선 글에서 나는 아이들이 게임 속에서는 생각보다 많은 어려움을 견딘다고 썼다.

몇 번씩 진다. 순위가 떨어진다. 자기보다 훨씬 잘하는 사람을 만난다. 그래도 다시 들어간다.

이상하다.

우리는 아이들이 경쟁 때문에 힘들어한다고 말한다. 비교하지 말라고 하고, 등수에 상처받지 말라고 하고, 경쟁보다 협력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정작 아이들은 게임과 운동에서는 스스로 경쟁을 찾아간다.

그렇다면 질문을 조금 바꿔야 한다.

아이들은 정말 경쟁을 싫어하는 것일까.

아니면 어떤 경쟁을 견디지 못하는 것일까.

경쟁은 성장의 정보가 될 수 있다

경쟁 자체에는 꽤 중요한 경험이 들어 있다.

나보다 잘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내가 지금 어디쯤 있는지 확인한다.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잘할 수 있을지 생각한다. 다시 해본다.

경쟁에는 불편함이 있다. 하지만 그 불편함 때문에 사람이 성장하기도 한다.

그래서 경쟁을 교육에서 없애는 것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에는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경쟁이 없는 세계가 아니라, 경쟁하면서도 자기 자신이 무너지지 않는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교육경쟁이 정체성으로 굳어질 때

문제는 우리가 아이들에게 제공하는 경쟁의 구조다.

시험을 생각해보자.

한 반에 30명이 있다. 누군가는 1등을 하고 누군가는 30등을 한다. 다음 시험에도 비슷한 일이 반복된다.

한두 번이라면 별문제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같은 기준으로 몇 년 동안 계속 평가받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수학을 잘하는 아이는 계속 잘하는 아이가 된다. 반대로 몇 번 뒤처진 아이는 점점 이런 말을 하기 시작한다.

“저는 원래 공부를 못해요.”

처음에는 한 번의 결과였던 것이 정체성이 된다.

‘이번에 졌다’가 ‘나는 지는 사람이다’로 바뀌는 순간.

다시 시도할 수 있는 경쟁

좋은 경쟁과 나쁜 경쟁의 차이는 어쩌면 여기에서 시작된다.

게임에서는 졌다고 게임 전체에서 영구히 탈락하는 경우가 드물다. 다시 할 수 있다. 상대가 너무 강하면 비슷한 수준의 상대를 만날 수도 있다.

실력이 조금 오르면 전에는 못하던 것이 된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비교적 보인다. 오늘의 패배가 내 인생 전체의 순위를 결정하지 않는다.

축구에서도 오늘 경기를 졌다고 다음 주 경기까지 패배가 확정되는 것은 아니다. 연습하고 다시 한다.

경쟁의 거리는 왜 중요한가

상대가 조금 더 잘하면 오히려 목표가 생긴다.

“저 정도까지는 해볼 수 있겠다.”

이 거리가 중요하다.

너무 쉬우면 경쟁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상대가 너무 멀리 있으면 경쟁도 되지 않는다.

나보다 조금 앞에 있는 사람. 노력하면 따라잡을 수도 있을 것 같은 사람.

그 존재가 경쟁을 성장의 자극으로 만든다.

반면 교육에서는 때때로 이 거리가 너무 멀어진다.

어떤 아이는 초등학교 때부터 이미 몇 년 앞선 아이들과 같은 시험을 치른다. 중학교에서는 학원과 선행의 차이가 누적된다.

형식적으로는 모두 같은 경쟁에 참여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한쪽에게 시험은 “이번에 내가 어디까지 올라왔지?”를 확인하는 장치다.

다른 쪽에게는 “역시 나는 안 되는구나.”를 다시 확인하는 장치가 된다.

반복된 패배는 목표 자체를 내려놓게 할 수 있다

이런 경쟁은 사람을 성장시키기보다 경쟁에서 빠져나가는 법을 가르칠 수 있다.

안 하면 덜 아프다. 진지하게 도전하지 않으면 실패도 내 실패가 아니다.

“공부 안 했으니까.”

“원래 관심 없었으니까.”

물론 이 말이 언제나 자기방어라는 뜻은 아니다. 정말 공부에 관심이 없을 수도 있다. 다만 반복해서 져온 상황에서는 실패를 자기 능력의 증거로 받아들이지 않기 위해 목표 자체를 내려놓는 편이 합리적일 수도 있다.

그래서 아이에게 경쟁하지 않아도 된다고 위로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비교하지 않아도 돼.” “잘하지 않아도 괜찮아.”라는 말이 필요한 순간은 분명 있다.

하지만 계속 그렇게만 말하다 보면 뜻하지 않게 다른 메시지를 줄 수도 있다.

경쟁에서 생긴 어려움을 다루기보다, 경쟁 자체를 피하는 쪽이 더 안전하다고 배울 수도 있다.

살아가면서 경쟁을 완전히 피하기는 어렵다. 취업에서도, 일에서도, 사업에서도, 창작에서도 다른 사람의 실력과 만나게 된다.

중요한 것은 경쟁을 만나지 않는 능력이 아니다.

경쟁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읽고, 패배를 정보로 받아들이고, 다시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이다.

좋은 경쟁의 조건

그러려면 경쟁의 조건이 달라져야 한다.

첫째, 다시 시도할 수 있어야 한다.

한 번의 실패가 너무 많은 것을 결정하면 사람은 실패 자체를 피하게 된다.

둘째, 내 행동으로 바꿀 수 있는 부분이 보여야 한다.

왜 졌는지 모르면 다시 해볼 방법도 없다. “머리가 나빠서”, “재능이 없어서”만 남으면 경쟁은 무력감을 만든다.

셋째, 경쟁의 거리가 적당해야 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닿을 수 없다고 느끼는 상대는 목표가 아니라 절망이 된다.

그런데 다시 시도할 수 있으려면 한 번의 패배가 다른 모든 가능성까지 닫아버리지 않아야 한다.

한 영역에서 졌다는 사실이 사람 전체에 대한 판결이 되면 다음 도전을 선택할 공간도 줄어든다.

경쟁축이 하나만 있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나는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경쟁하는 축이 하나만 있어서는 안 된다.

여기서 ‘여러 줄’은 모든 아이에게 잘하는 분야를 하나씩 억지로 만들어주자는 뜻이 아니다. 어느 영역에서든 실력 차이는 생기고, 어떤 사람은 오랫동안 뚜렷한 강점을 찾지 못할 수도 있다.

다만 하나의 시험 성취가 사회적 가능성 전체를 지나치게 많이 설명하는 구조와, 서로 다른 능력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실제 기회와 연결되는 구조는 다르다. 후자에서는 한 영역의 패배를 다른 영역의 무조건적인 승리로 덮을 필요가 없다. 한 번의 패배가 사람 전체의 판결이 되지 않을 뿐이다.

한 줄의 경쟁이 사람 전체의 판결이 될 때

지금의 교육경쟁이 특히 잔인한 이유는 경쟁이 있기 때문만이 아니다.

시험점수, 학교, 대학, 직장, 연봉이 하나의 긴 줄처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수학에서의 패배가 “수학이 부족하다”에서 끝나지 않는다.

“나는 공부를 못한다.”

“나는 경쟁력이 없다.”

로 번역될 수 있다.

특정 능력의 평가가 사람 전체의 서열로 바뀌는 것이다.

이런 구조에서 “너는 너만의 장점이 있어”라는 말은 오래 버티기 어렵다.

그 장점이 실제 사회에서 가치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림을 잘하고, 사람을 설득하고, 기계를 고치고, 영상을 만들고, 어떤 분야를 깊게 파는 능력이 단순한 위안거리가 아니라 실제로 쓰이고 인정되어야 한다.

그래야 사람은 자기가 경쟁해볼 수 있는 세계를 찾을 수 있다.

좋은 사회는 한 줄로만 세우지 않는 사회

나는 좋은 사회를 사람을 줄 세우지 않는 사회라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이 모이면 비교는 생긴다. 선발도 필요하다.

문제는 줄을 세우는 것 자체보다

한 줄로만 세우는 것이다.

경쟁의 좌표축이 많아지면 한 번의 패배가 사람 전체의 패배가 되지 않는다.

앞에서 이야기한 관심 기반 개인화 교육도 그래서 중요하다.

아이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각자가 실제로 성장하고 경쟁해볼 수 있는 세계를 발견하게 하기 위해서다.

관심을 발견한다.

필요한 것을 배운다.

결과를 만든다.

더 잘하는 사람을 만난다.

진다.

다시 해본다.

그 과정에서 자기효능감은 위안이 아니라 현실의 성취와 연결된다.

“나는 이 세계에서 실제로 더 잘할 수 있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경쟁 없는 세계가 아니다.

경쟁해도 무너지지 않는 경험이다.

좋은 경쟁에는 좋은 평가자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경쟁을 만들려면 결국 아이마다 다른 성장과 결과를 누군가 제대로 봐야 한다.

여러 경쟁축을 말하는 순간 평가도 어려워진다. 시험 한 장은 한 줄을 만들기에는 편하다. 하지만 학생마다 다른 질문과 결과를 인정하려면 누군가는 그 과정의 질을 판단해야 한다.

좋은 경쟁을 만들기 위해서는 결국 좋은 평가자가 필요하다. 어떤 성장이 실제 성장인지, 어떤 실패가 다시 시도할 가치가 있는 실패인지 볼 수 있는 사람.

그런데 누가 이 아이를 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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