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가 다를 뿐 — AI 음악, 누구의 것인가 · 1 / 5
[1편] 이 노래는 누구의 것인가
1. 스무 곡 중 하나
새벽 두 시, 불 꺼진 방에서 모니터만 밝다. 책상 위에는 건반도 기타도 없다. 헤드폰을 쓴 사람이 입력창에 가사 몇 줄과 한 문장을 적는다. 비 오는 밤, 80년대 시티팝, 쓸쓸하지만 너무 처지지 않게.
엔터를 누르고 잠시 뒤, 피아노가 흘러나오고 그 위로 베이스와 드럼이 얹힌다. 처음 듣는 목소리가 방금 적은 가사를 부른다. 그는 끝까지 듣고 다시 엔터를 누른다. 또 한 곡이 나온다. 그렇게 스무 곡을 듣고 열아홉 곡을 지운 뒤, 남은 한 곡에 제목을 붙여 올린다.
이 노래는 누구의 것일까. 가사를 쓰고 한 곡을 고른 사람의 것일까, 음 하나하나를 정한 기계의 것일까.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이건 술자리 농담에 가까운 질문이었다. 이제는 제도가 답해야 하는 질문이 됐다.
2. 실질적이고 주도적으로
2026년 8월, 한국음악저작권협회가 문을 하나 열었다. AI를 활용해 만든 곡도 저작권 등록을 받아 주겠다는 것이다. 조건은 사람이 “실질적이고 주도적으로” 창작에 참여했어야 한다는 것. 프롬프트 몇 줄로 뽑아낸 곡은 받지 않는다. 어떤 AI를 어디에 어떻게 썼는지 스스로 신고해야 하고, 거짓으로 드러나면 받은 돈을 돌려줘야 한다. 바로 얼마 전까지 AI가 들어간 곡은 아예 받지 않던 협회였다.
깔끔해 보이는 문장인데, 오래 들여다보면 질문이 쏟아진다. 미디로 곡을 쓰는 사람은 건반 한 번 누르지 않고 마우스로 음표를 찍는다. 드럼은 사 온 루프를 붙이고, 현악기는 가상악기 음원으로 채운다. 그 곡은 실질적인가, 주도적인가. 닫혀 있던 문을 열자마자, 문틀이 어디에 있는지부터 따져야 하는 처지가 된 셈이다.
3. 손이 아니라 결정
먼저 하나는 걷어 내자. 선은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이에 있지 않다. 그 기준이라면 지난 수십 년 동안 만들어진 대중음악의 상당수가 주인을 잃는다.
흔한 오해가 하나 더 있다.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연주해야 ‘내 곡’이라는 생각이다. 그런데 법은 노래와 연주를 저작권이 아니라 저작인접권의 일로 보고, 가수와 연주자를 ‘실연자’라고 따로 부른다. 저작권법이 말하는 저작물은 인간의 사상이나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이다. 그러니 물어야 할 것은 누가 연주했느냐가 아니라 누가 결정했느냐다.
이렇게 놓고 보면 하나의 스펙트럼이 보인다. 미디로 곡을 쓰는 사람은 음 하나, 박자 하나를 직접 정한다. 샘플팩을 쓰는 사람은 소리를 빌려 오지만, 어떤 소리를 어디에 어떤 순서로 놓을지는 여전히 자기가 정한다. Suno는 다르다. 사람은 가사를 쓰고 분위기를 적고 결과물을 고르지만, 음을 정하는 건 모델이다.
요리로 치면 미디는 칼질부터 간까지 직접 하는 요리고, 샘플팩은 손질된 재료를 사 와서 내 레시피로 볶는 요리다. Suno는 밀키트에 가깝다. 재료도 순서도 상자에 이미 들어 있고, 나는 소스를 고르고 마지막에 맛을 본다. 셋 다 ‘내가 차린 저녁’이라고 말할 수는 있지만, 어디까지가 내 손인지는 점점 흐려진다.
차이는 도구가 디지털이냐가 아니라 결정의 단위가 어디에 있느냐다. 그리고 그 단위가 바뀐 데에는 이유가 있다.
4. 치워진 관문
머릿속에 멜로디 하나쯤 없는 사람은 드물다. 샤워하다가, 버스 창가에서, 설거지하다가 흥얼거린다. 하지만 그 흥얼거림이 곡이 되려면 손이 필요했다. 건반을 치거나 악보를 그리거나, 적어도 미디 프로그램을 다룰 줄 알아야 했다. 악보를 못 읽어 피아노 학원을 석 달 만에 그만둔 사람, 코드 세 개로 버티다 기타를 장롱에 넣은 사람. 그들의 멜로디는 사라진 게 아니라 갈 곳이 없었을 뿐이다.
Suno는 그 관문을 치웠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그 문으로 들어오고 있다. 2025년 음악 창작자 1,200명에게 물은 설문에서 곡 생성기를 쓴다는 사람은 29%였다. 초보자는 절반이 넘었고, 프로도 네 명 중 한 명꼴이었다. 다만 이 설문을 한 회사는 AI 도구를 판다. 1년 전 샘플을 파는 회사가 한 설문에서는 AI로 곡 전체를 만든다는 사람이 3%에 그쳤다. 숫자도 제 자리에서 고르는 법이다. 그래도 어느 숫자를 믿든 방향은 같다. 관문은 무너지는 중이다.
관문이 사라진 자리에 남는 건 고르는 일이다. 그렇다면 고르는 것만으로 노래의 주인이 될 수 있을까.
5. 흔적이 남지 않는 결정
미국 저작권청은 2025년 1월 보고서에서 비교적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프롬프트만으로는 사람이 표현을 충분히 통제했다고 보기 어렵다. 같은 프롬프트를 넣어도 모델은 매번 다른 결과를 내기 때문이다. 사람이 쓴 가사처럼 결과물에 남은 표현, 결과물을 창의적으로 고치거나 여러 요소를 골라 배열한 구성은 보호받을 수 있다. 보호의 범위는 사람이 무엇을 표현하고 구성했느냐에 달려 있다.
그렇다면 스무 곡을 듣고 열아홉 곡을 버린 판단은 어디에 놓일까. 법이 묻는 것은 어떤 표현을 만들어 냈느냐지만, 고른 사람이 붙드는 것은 왜 하필 이 노래였느냐다. 두 질문은 겹치면서도 같지 않다.
사람의 몫을 생각하면 결정의 수와 무게가 남는다. 몇 번을 고르고, 몇 번을 버리고, 무엇을 남겼는가. 문제는 그 결정이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예전 작곡가의 악보에는 지우개 자국이 남았고, 고친 흔적이 곧 고민의 증거였다. 미디 파일에도 음표를 옮긴 기록이 남는다. 하지만 새벽 두 시의 그 사람이 열아홉 곡을 버린 판단은 어디에도 남지 않는다. 남는 건 고른 한 곡뿐이다. 그 한 곡만 들어서는 공들인 선택의 끝인지, 처음 나온 것을 그냥 올린 것인지 알 수 없다.
협회는 신고를 받겠다고 했다. 그런데 신고는 말이고, 그 말을 확인할 기술은 아직 없다는 지적이 벌써 나온다. 거짓 신고에는 최대 세 배의 위약벌을 물리는 방안도 추진 중이지만, 거짓을 잡아내려면 먼저 참을 알아야 한다.
손에서 결정으로, 결정에서 고르는 귀로. 사람의 자리는 점점 안쪽으로 들어가고,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이 노래는 아마 고른 사람의 것일 거다. 다만 그걸 증명할 방법이 점점 옅어지고 있을 뿐.
출처와 참고자료
제도와 법
손봉석 (2026.8.5). 「한국음악저작권협회, AI 음악 저작권 관리 새 기준 세웠다」. 스포츠경향. https://sports.khan.co.kr/article/202608050109003
심현리 (2026.8.12). 「AI음악 저작권 인정 두고 국회 ‘제동’」. MTN. https://news.mtn.co.kr/news-detail/2026081115501577406
저작권법 제2조(정의). 국가법령정보센터. https://www.law.go.kr/법령/저작권법
네플라 (n.d.). 「저작권과 저작인접권의 차이점」. https://www.nepla.ai/wiki/지식재산/저작권/저작권과-저작인접권의-차이점-x6w9wdl3o8gk
Sidley Austin (2025.2.7). U.S. Copyright Office Issues Report on Artificial Intelligence and Copyrightability. https://datamatters.sidley.com/2025/02/07/u-s-copyright-office-issues-report-on-artificial-intelligence-and-copyrightability/
U.S. Copyright Office. (2025.1). Copyright and Artificial Intelligence, Part 2: Copyrightability. https://www.copyright.gov/ai/Copyright-and-Artificial-Intelligence-Part-2-Copyrightability-Report.pdf
이용 실태
- LANDR (2025). AI 사용 실태 설문. Hypebot 게재(2025.11.20). https://www.hypebot.com/hypebot/2025/11/new-survey-reveals-how-87-of-artists-really-use-ai.html
- Tracklib (2024). Music Producer Survey 2024. Music Business Worldwide 보도(2024.7.8). https://www.musicbusinessworldwide.com/25-of-music-producers-are-now-using-ai-survey-says-but-a-majority-shows-strong-resista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