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이 빠지고 눈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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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가 다를 뿐 — AI 음악, 누구의 것인가 · 3 / 5

[3편] 손이 빠지고 눈이 남는다

1. 1859년의 피난처

1859년 봄, 파리의 시인 보들레르는 그해 미술 전람회를 둘러보고 긴 비평을 썼다. 그 무렵 파리에는 새로운 물건 하나가 빠르게 퍼지고 있었다. 사진이었다. 그는 그 비평에서 사진 산업을 이렇게 불렀다. 화가가 되지 못한 이들의 피난처.

말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사진이 예술의 영토를 침범해 예술의 가장 치명적인 적이 되었으니, 제자리로 돌아가 과학과 예술의 하인 노릇이나 하라고 했다.

이 문장을 읽다가 웃음이 났다. 요즘 어디선가 많이 들어 본 말이라서다. 주어만 바꾸면 된다. AI는 작곡가가 되지 못한 이들의 피난처다. AI는 음악의 가장 치명적인 적이다. AI는 도구로 돌아가 사람의 하인 노릇이나 해라.

같은 문장이 되풀이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이 말은 늘 같은 자리에서 나온다. 새 기술이 대신하려는 그 일을 평생 손으로 해 온 사람의 자리다. 보들레르가 사진을 미워한 건 사진이 서툴러서가 아니라 너무 쉽게 해내서였다. 오래 걸려 익힌 것을 누군가 단숨에 해내는 걸 보는 일은, 예술의 문제이기 전에 자리의 문제다.

160년이 지났는데 문장이 거의 그대로다. 그렇다면 결말도 미리 볼 수 있지 않을까. 사진을 두고 벌어진 그 싸움은 어떻게 끝났을까.

2. 손이 하나씩 빠진다

사진의 역사를 조금 떨어져서 보면, 사람의 손이 하나씩 빠져나가는 역사다.

처음에는 붓이 빠졌다. 화가는 물감을 개어 빛을 흉내 냈지만, 사진은 빛을 직접 받아 적었다. 다음에는 필름이 빠졌다. 빛이 은 입자를 태우던 자리에 숫자가 들어섰다. 그다음에는 눈을 대던 구멍이 빠져서, 뷰파인더에 한쪽 눈을 붙이고 숨을 참던 자세 대신 팔을 뻗어 화면을 본다.

암실도 빠졌다. 빨간 등 아래 약품 냄새 속에서 인화지를 흔들며 상이 떠오르길 기다리던 시간은, 원본 데이터를 받아 컴퓨터에서 현상하는 시간이 되었다. 처음엔 그 현상도 사람이 다 했다. 밝기를 올리고, 색을 고치고, 하늘만 따로 어둡게 하고. 그러다 버튼 하나로 맞춰 주는 자동 기능이 붙었고, 이제는 말로 시키면 AI가 후작업을 끝낸다.

한 단계 지날 때마다 누군가는 이제 사진은 끝났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마다 그 손으로 먹고살던 사람이 있었다. 붓을 쥔 초상화가, 암실을 지키던 인화사, 필름을 감던 손. 손이 빠질 때 빠져나간 건 기술만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그렇게 손이 다 빠지고 나면, 마지막에는 무엇이 남을까.

3. 마지막에 남은 눈

오래도록 답은 하나였다. 눈이다. 무엇을 찍을지, 언제 셔터를 누를지, 수백 장 가운데 어느 한 장을 남길지 정하는 눈. 사진가의 실력은 결국 고르는 실력이라는 말도 그래서 나왔다.

그런데 그 눈의 자리에도 기계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2023년에 나온 한 스마트폰은 단체 사진을 여러 장 연달아 찍으면, 사진마다 가장 잘 나온 얼굴을 AI가 골라 한 장으로 합쳐 준다. 눈을 감은 사람도, 딴 데 본 사람도 고쳐진다. 어떤 얼굴을 쓸지는 아직 사람이 고르지만, 후보를 추려 오는 건 이미 기계다. 마지막 결정은 사람이 하되, 기계가 차려 놓은 밥상 위에서 한다. 한 교수는 이 기능을 두고 사진은 더 이상 시각적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재미있는 건 그 사이에도 필름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필름 회사는 작년에 소비자용 필름을 직접 유통하겠다고 나섰다. 필름은 기준의 자리에서는 내려왔지만, 고르는 사람이 있는 한 하나의 방식으로 남았다. 예전에는 필름밖에 없어서 필름을 썼다면, 지금은 필름이라서 필름을 쓴다. 같은 필름인데 쓰는 이유가 뒤집혔다.

4. 이름은 안쪽으로

보들레르의 싸움은 판결로 끝나지 않았다. 아무도 사진은 예술이라고 선고하지 않았다. 대신 말의 뜻이 바뀌었다. 사진은 슬그머니 예술이 되었고, 한참 뒤에는 디지털이 슬그머니 사진이 되었다. 싸움은 이긴 쪽 없이, 이름이 옮겨 가는 것으로 끝났다. 그 사이 사진을 미워하던 사람들도, 사진으로 먹고살게 된 사람들도 나이를 먹었다. 그리고 그다음 세대에게 사진은 처음부터 예술이었다. 싸움을 끝낸 건 논리가 아니라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이름이 옮겨 간 방향을 보면 규칙이 하나 보인다. 예술이라는 이름은 매번 마지막까지 사람이 하던 일에 붙었다. 붓이 빠지자 구도와 순간에, 암실이 빠지자 고르는 눈에. 손이 하나 빠질 때마다 이름은 한 걸음씩 안쪽으로 물러났다.

물론 둘이 똑같지는 않다. 카메라는 화가들의 그림을 허락 없이 배워서 만들어지지 않았다. 학습 데이터를 둘러싼 다툼은 사진의 역사가 답해 주지 못한다. 다만 도구가 저자의 자리를 어떻게 옮기느냐에 한해서는, 음악도 지금 같은 길 위에 있다. 미디가 연주하는 손을 덜어 냈고, 샘플이 소리를 만드는 손을 덜어 냈고, 이제는 음을 고르는 일까지 넘어가는 중이다. 사진이 160년에 걸쳐 걸은 길을 음악은 몇십 년 만에 달려가고 있다.

다음 이름이 어디에 붙을지는 아직 모른다. 다만 보들레르가 틀린 방식만큼은 분명하다. 그는 사진이 예술을 죽일 거라고 했지만, 사진은 예술을 죽이지 않았다. 예술이 어디에 사는지를 옮겨 놓았을 뿐이다.

출처와 참고자료

역사

  1. Baudelaire, C. (1859/1955). The Salon of 1859. In J. Mayne (Trans. & Ed.), The Mirror of Art. Phaidon. 프랑스어 원문(1859/1868): https://fr.wikisource.org/wiki/Curiosit%C3%A9s_esth%C3%A9tiques/Salon_de_1859

기술과 산업

  1. PetaPixel (2023.10.12). Google Pixel 8’s AI Features Start Conversation on Perfection. https://petapixel.com/2023/10/12/google-pixel-8s-ai-features-start-conversation-on-perfection
  2. Kodak (2025.11.6). Kodak Reports Third-Quarter 2025 Financial Results. https://www.kodak.com/en/company/press-release/q3-2025-financial-results/
  3. PetaPixel (2026.8.13). Kodak’s transformed business has improved for four straight quarters. https://petapixel.com/2026/08/13/kodaks-transformed-business-has-improved-for-four-straight-quart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