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3줄 요약
- 국가교육위원회는 대학입학제도 개편 방향과 시기를 확정하지 않았으며, 서·논술형 수능도 확정된 제도로 볼 수 없다.
- 논쟁의 핵심은 사교육 증가만이 아니라 가족의 자원과 채점자의 판단이 학생 개인의 능력으로 환산되는 과정이다.
- 평가자의 판단 범위를 넓히려면 채점기준 공개, 복수 채점, 신뢰도 검증과 이의제기 절차도 함께 설계해야 한다.
교사노조는 서·논술형 대학수학능력시험 도입이 사교육 경쟁을 키우고 채점의 객관성과 일관성을 흔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다만 서·논술형 수능은 확정된 제도가 아니다. 국가교육위원회도 구체적인 도입 방향과 시기가 결정되지 않았다고 설명한 바 있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찬반을 서두르는 일이 아니라, 이러한 평가가 현재 입시구조에 들어왔을 때 무엇이 달라지는지 살피는 일이다.
핵심은 문항 형식보다 신뢰에 있다.
입시의 공정성을 판단하는 두 가지 언어
수시와 수능의 대립도 결국 신뢰의 문제다
현재 수시 중심 평가와 수능 중심 평가를 둘러싼 대립도 결국 어떤 결과를 믿고 받아들일 수 있느냐는 문제와 맞닿아 있다.
수시를 지지하는 쪽은 한 번의 시험으로 학생의 역량을 판단하기 어렵다고 본다. 반대로 수능 중심 전형을 선호하는 쪽은 누가 어떤 기준으로 자신을 평가했는지 알기 어려운 결과에 승복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수능이 완전하게 공정해서 신뢰받는 것은 아니다. 사교육의 영향도 크고 시험 당일의 조건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그럼에도 정답과 배점, 자신의 점수와 상대적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결과가 만들어진 경로는 비교적 가시적이다.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무엇을 기준으로 순서가 정해졌는지는 알 수 있다.
수시는 다른 구조를 갖는다. 대학은 학생의 기록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지만, 학생과 학부모는 대학별 평가 언어와 판단 과정을 충분히 알기 어렵다.
교육부도 학생부종합전형을 진학상담 사교육 수요가 높은 분야로 보고 있다. 어렵고 복잡한 대입정보에 대한 학생·학부모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공공 상담과 인공지능 정보검색 서비스도 확대했다. 이는 수시 정보의 복잡성과 접근성 격차가 실제 정책 과제라는 뜻이다.
정보 비대칭은 누군가에게 전략적 자원이 된다
입시 정보의 비대칭은 모든 가정에 같은 의미로 작동하지 않는다.
어떤 가정에는 불안과 불신의 원인이지만, 입시 고관여층에는 비용을 들여 해석하고 활용할 수 있는 전략적 공간이 된다. 대학별 평가기준을 읽고, 학생의 기록을 대학의 언어에 맞춰 구성하며, 지원 가능성과 실패 위험을 계산하는 사적 정보망에 접근하는 것이다.
경제력에 따른 준비 자원의 차이는 공식 통계에서도 나타난다.
2025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에 따르면 월소득 300만 원 미만 가구 학생의 월평균 사교육비는 19만2천 원이었다. 월소득 800만 원 이상 가구 학생은 66만2천 원이었다.
논술 사교육 참여율도 각각 2.1%와 15.6%로 차이가 컸다. 다만 이 수치는 고교 입시논술만을 분리한 결과가 아니라 초·중·고 학생 전체를 대상으로 집계한 통계다.
이 수치가 사교육비와 대학 합격률 사이의 인과관계를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부모가 학생에게 제공할 수 있는 준비 자원의 출발점이 같지 않다는 사실은 보여준다.

부모의 비용은 어떻게 학생의 역량이 되는가
부모의 비용이 학생의 실력으로 평가될 때
여기서 ‘부모 비용–학생 수익’의 구조가 만들어진다.
부모가 지불한 비용과 확보한 정보는 첨삭, 평가기준 해석, 지원전략과 실패 회피 정보로 바뀐다. 그러나 평가 시스템은 이러한 투입과정을 보지 못한다. 최종적으로 제출된 기록과 답안, 면접 결과를 학생 개인의 역량으로 판단한다.
부모가 구매한 보이지 않는 준비가 학생의 능력이라는 외형을 얻고, 합격 가능성과 대학 선택권이라는 수익은 학생에게 돌아간다.
이것은 부정행위와는 다른 문제다. 대체로 제도 안에서 합법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평가 시스템이 별도의 변수로 식별하기 어렵다. 결국 가족이 보유한 경제력과 정보력이 학생 개인의 성취 신호로 전환된다.

서·논술형은 무엇을 더 평가하는가
서·논술형 수능은 이러한 구조를 수능 안으로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
답안을 외워 쓰는 것과 사고력을 기르는 것은 같지 않다. 그러나 실제 평가에서는 둘을 완전히 분리하기 어렵다. 어떤 논증 순서를 택해야 하는지, 채점자가 어떤 표현을 높게 평가하는지, 제한된 시간 안에 답안을 어떻게 구성해야 하는지에 관한 훈련은 최종 답안에 함께 들어간다.
평가자는 완성된 답안을 보고 학생의 역량을 판단하지만 그 역량이 만들어진 과정까지 확인할 수는 없다.
채점 결과에 대한 신뢰도 별개의 문제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서·논술형 평가 연구는 학교 현장에서 평가기준에 대한 해석 차이, 학생·학부모 민원, 채점시간 부족이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연구는 안정적인 서·논술형 평가를 위해 독립적인 채점, 채점 결과가 다를 때의 조정, 채점자 간 신뢰도 점검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학교평가를 대상으로 한 연구이므로 이를 수능의 실제 문제로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전국 단위 시험을 설계할 때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는 보여준다.
판단의 폭만큼 설명의 책임이 필요하다
판단을 넓히면 설명의 책임도 커져야 한다
서·논술형 평가를 반대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객관식 시험도 부모의 경제력과 사교육에서 자유롭지 않다. 서·논술형은 학생이 답을 만들어가는 과정과 논리, 표현력을 폭넓게 평가할 수 있다는 교육적 장점이 있다.
또한 대입 공정성에 관한 연구가 지적하듯, 객관식 수능 점수를 확대하는 것이 자동으로 가장 공정한 해결책이 되는 것도 아니다.
평가자의 판단 범위를 넓히려면 그에 비례해 설명의 책임도 커져야 한다.
채점기준은 얼마나 공개되는가. 한 답안을 몇 명이 채점하는가. 채점 결과가 다를 때는 어떻게 조정하는가. 채점자 간 신뢰도는 어떻게 검증하는가. 학생은 자신의 점수를 설명받고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가. 공교육 안에서 누구나 서·논술형 답안 작성법을 배울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 없이 문항 형식만 바꿔서는 결과에 대한 신뢰를 얻기 어렵다.
수능마저 해석 경쟁이 된다면
이러한 장치 없이 서·논술형 문항만 도입하면 수능의 경쟁은 점수 경쟁에서 해석 경쟁으로 이동할 수 있다. 기존 수시에서 작동하던 정보 비대칭과 가족 자본의 영향이 수능으로 옮겨오는 것이다.
서·논술형 수능이 흔들 수 있는 것은 점수체계만이 아니다. 과정이 어떻든 결과가 만들어진 기준을 확인하고, 그 결과에 승복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새로운 평가가 필요하다면 무엇을 평가할 것인가에 앞서 그 판단을 누가 어떻게 설명하고 책임질 것인지부터 답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