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줄 직접답변
- 늦은 명성은 정말 과거의 실패를 보상하는가.
- 한 사람의 말년은 그의 사유를 어떻게 바꾸는가.
- 평온한 청산은 어떤 삶의 결과일까.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 생애편 3화
“그가 가르친 것은 금욕이었으나, 그가 산 것은 향락이었다?”
1833년, 45세의 쇼펜하우어는 프랑크푸르트에 정착합니다. 콜레라가 창궐한 베를린(고위험 시장)을 떠나, “공기가 좋고 물가가 싼” 프랑크푸르트(안전 자산)를 선택한 것입니다. 이곳에서 그는 1860년 사망할 때까지 27년 동안, 마치 시계태엽처럼 정확하고 단조로운 일상을 반복합니다.
세상은 그를 잊은 듯했지만, 그는 자신만의 ‘1인 주식회사’를 완벽하게 경영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철저히 혼자였지만, 가장 안전했고, 누구보다 삶을 즐겼습니다. 3부에서는 고통을 설파하면서도 플루트를 불고 맛집을 찾아다녔던 이 ‘모순적인 은둔자’의 말년을 감사(Audit)해 봅니다.
1. 프랑크푸르트의 루틴: 리스크 제로(0)의 생활 경영
쇼펜하우어의 프랑크푸르트 생활은 ‘변수 통제’의 끝판왕이었습니다. 그는 불필요한 감정 소모(비용)를 원천 차단하기 위해 군대 점호와 같은 엄격한 일과표를 짰습니다.
- 07:00 ~ 08:00 (개장): 기상 후 찬물 목욕. (정신을 깨우는 의식)
- 08:00 ~ 12:00 (업무): 커피를 마시며 집필과 연구. 이 시간은 그 누구의 방해도 허용하지 않는 ‘신성한 생산 시간’이었습니다.
- 12:00 ~ 12:30 (휴식): 플루트 연주. 니체는 이를 두고 “비관론자가 매일 플루트를 불었다니, 신성을 모독하는 것 아닌가?”라며 비꼬았지만, 쇼펜하우어에게 이것은 뇌의 열기를 식히는 ‘냉각 시스템’이었습니다.
- 13:00 (오찬): 최고급 호텔인 ‘영국 호텔(Englischer Hof)’에서 점심 식사. 그는 항상 같은 자리에 앉아 혼자 밥을 먹거나, 가끔 지나가는 손님들과 대화하며 ‘인간 관찰’을 즐겼습니다. 그는 대식가였으며, “기름을 많이 쳐야 기계(뇌)가 잘 돌아간다”며 식비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 오후 (여가): 독서 후 반려견 ‘아트만(Atman)’과 함께 2시간 동안 산책.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는 프랑크푸르트의 거리를 빠르게 걸었습니다. 사람들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그와, 그의 뒤를 따르는 흰색 푸들을 보며 ‘괴짜와 그의 영혼’이라고 수군댔습니다.
- 저녁 (문화): 독서실에서 《더 타임스(The Times)》를 읽으며 국제 정세를 파악하거나, 극장에서 오페라나 연극을 관람. 베토벤과 모차르트, 로시니의 음악은 그에게 최고의 위로였습니다.
이 완벽한 루틴에는 ‘타인’이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그는 친구도, 가족도 없이 오로지 자신과 강아지, 그리고 예술만으로 이루어진 ‘무결점의 방어 요새’를 구축했습니다. 겉보기엔 외로운 노인이었지만, 회계적으로는 ‘고정비(인간관계 스트레스)가 0에 수렴하는 고효율 구조’였습니다.
2. 1848년 혁명과 유산: 보수주의자의 자산 방어
1848년, 유럽 전역을 휩쓴 혁명의 물결이 프랑크푸르트에도 들이닥쳤습니다. 바리케이드가 쳐지고 총성이 울리자, ‘고통받는 인류’를 논하던 철학자는 본색을 드러냈습니다. 그는 혁명이나 민주주의 따위엔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직 ‘내 자산의 안전’만이 중요했습니다.
그는 폭도들(시위대)을 진압하기 위해 출동한 오스트리아 군인들에게 자신의 아파트 창문을 사격 진지로 내어주었습니다. 심지어 군인들이 시위대를 더 잘 조준할 수 있도록 자신의 오페라글라스(망원경)까지 빌려주었습니다.
나중에 유언장을 작성할 때, 그는 자신의 전 재산을 1848년 혁명 진압 과정에서 부상당하거나 사망한 ‘프로이센 군인들의 유가족 기금’에 기부했습니다. 평생 독신으로 살며 자식이 없었던 그가 선택한 상속자는, 자신의 평온한 노후와 자산을 지켜준 ‘국가 권력(경비업체)’이었습니다. 이는 그가 말한 “국가는 인간의 이기심을 통제하기 위해 필요한 필요악”이라는 철학을 몸소 실천한, 지독히 현실적인 투자 행위였습니다.
3. 소품과 부록(Parerga und Paralipomena): 뒤늦게 터진 대박
1851년, 예순셋의 나이에 출간한 에세이집 《소품과 부록》은 그의 인생을 뒤바꾼 ‘잭팟’이었습니다. 난해한 형이상학을 덜어내고, 처세술과 인생의 지혜를 담은 이 책은 대중의 입맛을 정확히 저격했습니다. 1853년 영국의 《웨스트민스터 리뷰》에 소개된 것을 기점으로 유럽 전역에서 ‘쇼펜하우어 열풍’이 불었습니다.
- 상황 역전: 평생 그를 무시했던 대학들이 그에게 강의를 요청했습니다. 베를린 대학 시절 텅 비었던 강의실과 달리, 이제는 전 유럽에서 팬들이 그를 보기 위해 프랑크푸르트로 순례를 왔습니다.
- 반응: 쇼펜하우어는 이 늦은 성공을 마음껏 즐겼습니다. 그는 신문에 난 자신에 대한 기사를 모두 스크랩하라고 지시했고, 자신을 찬양하는 글을 읽으며 어린아이처럼 기뻐했습니다. 그는 “나는 나의 명성을 먹어 치운다”며 만족해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철학이 실패했다고 믿으며 평생을 살았지만, 마지막 순간에 시장은 그에게 ‘누적된 배당금’을 한꺼번에 지급했습니다. 그는 “해질녘에 도착한 손님(명성)이 더 반가운 법”이라며, 자신의 인생 투자가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했습니다.
4. 죽음: “청산 절차는 조용하게”
1860년 9월 21일 아침, 쇼펜하우어는 여느 때처럼 찬물 목욕을 하고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잠시 후, 가정부가 들어왔을 때 그는 소파에 기대앉은 채 숨을 거두어 있었습니다. 사인은 폐렴으로 인한 심장마비. 고통도, 비명도 없는 ‘무결점의 죽음’이었습니다.
그의 유언은 그의 철학만큼이나 깔끔하고 건조했습니다.
- 장례식은 일체의 허례허식 없이 치를 것.
- 묘비에는 오직 이름 ‘Arthur Schopenhauer’ 두 단어만 새길 것. (철학자니, 교수니 하는 직함도, 생몰연도도 필요 없다고 했습니다. 어차피 알 사람은 다 알 테니까요.)
- 반려견 푸들을 가정부에게 맡기며, 개를 돌봐주는 조건으로 막대한 연금을 지급할 것.
그는 죽음을 두려워했지만, 막상 죽음이 닥쳤을 때는 마치 다 읽은 책을 덮듯 담담하게 생을 마감했습니다. 평생을 괴롭혔던 ‘살려는 의지’의 불꽃이 자연스럽게 꺼진 순간이었습니다.
3부 결론: 인간 쇼펜하우어, 어쩔 수 없음을 딛고 선 거인
우리가 3부에 걸쳐 추적한 쇼펜하우어는 성인군자가 아니었습니다.
- 그는 유산을 지키기 위해 어머니, 여동생과도 의절한 냉혈한이었습니다.
- 이웃집 여자와 20년 넘게 소송을 벌이며 그녀의 죽음을 기다린 뒤끝 작렬의 소인배였습니다.
- 혁명군을 향해 총을 쏘라고 군인들을 도운 보수 반동주의자였습니다.
- 금욕을 설파하면서도 맛집과 여자를 탐닉한 모순덩어리였습니다.
하지만 바로 이 지점에서 쇼펜하우어의 위대함이 드러납니다. 그는 자신의 찌질함, 불안, 욕망, 그리고 공격성을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철학의 재료로 삼았습니다.
그가 말한 “인생은 고통이다”라는 명제는, 단순히 세상을 비관하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나는 이렇게 생겨먹었고, 세상은 저렇게 생겨먹었다. 그러니 헛된 희망으로 고문당하지 말고, 이 차가운 현실 위에서 나를 지키며 살아가자”는 처절한 생존 선언이었습니다.
그의 철학은 고상한 도덕 교과서가 아니라, 상처받은 영혼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쌓아 올린 ‘방어 기제’이자 ‘생존 매뉴얼’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자살로 물려받은 우울증, 어머니의 냉대로 생긴 애정 결핍, 세상의 무관심으로 생긴 열등감. 이 모든 ‘부실 자산’을 그는 끝까지 끌어안고, 그것을 녹여 ‘통찰’이라는 금으로 정제해냈습니다.
쇼펜하우어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찌질해도 괜찮다. 중요한 건, 자신을 속이지 않고 그 모습 그대로를 직시하며, 남은 인생을 손해 보지 않고 살아내는 것이다.”
이것이 마흔 살, 인생의 반환점을 돈 우리가 쇼펜하우어라는 괴짜 노인에게서 배워야 할 진짜 회계 장부의 결론입니다.
[전체 시리즈 최종 회계 감사]
<쇼펜하우어 인생 손익계산서>
- 자산 (Assets):
- 압도적인 통찰력 (지성)
- 두둑한 유산 (경제적 자유)
- 강철 같은 멘탈 (고독을 견디는 힘)
- 반려견 아트만 (무조건적 사랑)
- 부채 (Liabilities):
- 우울한 기질 (유전)
- 파탄 난 인간관계 (어머니, 연인)
- 사회적 부적응 (성격 파탄)
- 자본 (Equity):
- 자신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자존감 (Self-Affirmation)
[최종 의견]
귀하의 인생 장부는 현재 적자입니까, 흑자입니까?
쇼펜하우어는 부채(고통)가 아무리 많아도, 단 하나의 확실한 자산(나 자신)만 있다면 흑자 부도가 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이제 당신의 장부를 기록할 차례입니다. 부디, 남는 장사를 하십시오.
[보고서 종료]
사유의 출발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의 저술과 그 철학적 논점에서 출발한 설탕바른위로의 재해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