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줄 직접답변
- 실패는 왜 때로 자신의 언어를 만드는 시간인가.
- 인정받지 못한 세월은 무엇을 남기는가.
- 자존심은 언제 고독의 방어막이 되는가.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 생애편 2화
“누구도 나를 보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거인이다”
1818년, 서른 살의 쇼펜하우어는 자신의 인생을 건 역작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탈고하며 출판사 브로크하우스에 편지를 씁니다. 그 편지에는 오만할 정도의 자신감이 넘쳐흐르고 있었습니다.
> “이 책은 지나가 버릴 당대의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훗날 이 책은 모든 도서관에 비치되어 인류의 지성사에 길이 남을 기념비가 될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칸트의 진정한 후계자이며, 자신의 책이 출간되는 순간 세상이 뒤집힐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하지만 세상의 반응은 차가운 침묵뿐이었습니다. 초판은 거의 팔리지 않았고, 대부분은 폐지 처분되어 이면지로 쓰이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어머니 요한나 쇼펜하우어가 쓰는 통속 연애 소설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는 동안, ‘인류의 스승’을 자처한 아들의 책은 창고 먼지 속에 묻혔습니다.
이 철저한 ‘무관심’은 쇼펜하우어의 내면에 거대한 분노를 일으켰습니다. 2부는 그가 세상으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몸부림치다 처참하게 깨지고, 결국 타인을 ‘지옥’으로 규정하며 고립을 선택하게 된 비극적 투쟁의 기록입니다.
1. 베를린 대학의 대참사: 헤겔을 향한 무모한 전쟁
1820년, 쇼펜하우어는 베를린 대학교의 강사(Privatdozent) 자격을 얻습니다. 당시 베를린 대학의 철학과는 ‘절대정신’을 설파하며 독일 철학계를 지배하던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Hegel)의 독무대였습니다.
쇼펜하우어는 헤겔을 철학자가 아닌 “궤변을 늘어놓는 엉터리 사기꾼(charlatan)”으로 경멸했습니다. 그는 헤겔이 어려운 말로 사람들을 현혹하여 국가 권력에 아부하고, 진리를 왜곡한다고 믿었습니다. 자신의 철학이 헤겔의 허상을 깨부술 것이라 확신한 쇼펜하우어는 자살행위에 가까운 결정을 내립니다. 자신의 강의 시간을 헤겔의 강의 시간과 정확히 겹치게 편성한 것입니다.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헤겔의 강의실에는 수백 명의 학생이 몰려들어 발 디딜 틈이 없었지만, 쇼펜하우어의 강의실에는 고작 5명의 학생만이 앉아 있었습니다. 그마저도 학기 도중에 중단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쇼펜하우어에게 씻을 수 없는 모멸감을 안겼습니다. 그는 “진리는 다수의 지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며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내심 뼈저린 패배감을 맛보았습니다. 이후 그는 강단 철학자들을 ‘월급쟁이 철학자’라고 비난하며 대학 사회와 완전히 담을 쌓게 됩니다. 그의 철학에서 나타나는 ‘고독한 천재’와 ‘어리석은 대중’이라는 이분법은, 이 시기 베를린 대학 강의실의 텅 빈 풍경에서 완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2. 캐롤라인 마르케 사건: 타인은 지옥이다
쇼펜하우어의 대인관계 능력, 특히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의 부재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건이 1821년 베를린에서 발생했습니다. 바로 ‘재봉사 마르케 사건’입니다.
47세의 독신녀이자 재봉사였던 캐롤라인 마르케는 쇼펜하우어의 아파트 현관 복도에서 이웃들과 수다를 떨곤 했습니다. 예민하고 청각이 발달했던 쇼펜하우어는 이 소음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어느 날 격분한 그는 그녀에게 나가라고 소리쳤고, 그녀가 거부하자 완력을 사용하여 그녀를 밖으로 밀어내 버렸습니다.
마르케는 그 과정에서 넘어져 팔을 다쳤고, 영구적인 마비가 왔다며 쇼펜하우어를 고소했습니다. 5년에 걸친 지루한 법정 공방 끝에 법원은 쇼펜하우어의 유죄를 인정하고, 마르케가 사망할 때까지 매년 15탈러(나중에 60탈러로 인상)의 연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이 판결은 쇼펜하우어에게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신성한 평온’을 방해한 ‘어리석은 타인’에게, 도리어 평생 돈을 바쳐야 한다는 사실은 그를 미치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일기장에 “노파가 죽어야 짐이 사라진다(Obit anus, abit onus)”라는 라틴어 문구를 적어놓고 그녀의 죽음을 기다렸습니다. 1842년, 마침내 그녀가 사망했을 때 쇼펜하우어는 사망 진단서에 쿨하게 “해방!”이라고 적었습니다.
이 사건은 쇼펜하우어가 주창한 ‘고슴도치 딜레마’의 실사판이었습니다. 타인은 따뜻함을 주는 존재가 아니라, 나를 찌르는 가시이자 소음 덩어리였습니다. 그는 타인에게 상처받지 않기 위해, 그리고 타인에게 상처 주지 않기 위해(혹은 배상금을 물지 않기 위해) 철저한 거리두기와 예의범절을 강조하는 처세술을 정립하게 됩니다.
3. 사랑의 실패: 성욕이라는 덫과 여성 혐오의 강화
쇼펜하우어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지만, 금욕주의자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베네치아, 로마, 베를린 등지에서 여러 여성과 관계를 맺었고, 하녀나 여배우들과의 사이에서 사생아를 낳기도 했습니다(아이들은 모두 일찍 사망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 어떤 여성과도 깊은 정신적 유대를 맺지 못했습니다.
그의 연애사 중 가장 진지했던 대상은 베를린 오페라 극장의 가수 캐롤라인 메돈(Caroline Medon)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약 10년간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했습니다. 쇼펜하우어는 그녀를 사랑했지만, 그녀에 대한 불신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메돈에게는 다른 남자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가 있었고, 건강도 좋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쇼펜하우어는 결혼이라는 제도가 “남자의 권리를 반으로 줄이고 의무를 두 배로 늘리는” 불공정 계약이라고 믿었습니다.
결정적인 파국은 1831년 베를린에 콜레라가 창궐했을 때 찾아왔습니다. 쇼펜하우어는 전염병을 피해 도시를 떠나자고 메돈에게 제안했지만, 그녀는 두고 갈 수 없는 가족(다른 아이)이 있다며 거절했습니다. 결국 쇼펜하우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혼자 프랑크푸르트로 도망쳤습니다. 생존 본능이 사랑을 압도한 순간이었습니다.
말년의 쇼펜하우어(43세)는 17세 소녀 플로라 바이스에게 반해 보트 파티에서 포도를 건네며 구애했습니다. 하지만 소녀는 늙고 못생긴 철학자의 구애를 혐오하며 그가 준 포도를 물속에 던져버렸습니다. 그녀의 일기에는 쇼펜하우어가 “고슴도치 같은 늙은이”로 묘사되었습니다.
이러한 거절과 실패의 경험은 어머니 요한나로부터 받은 상처와 결합하여 악명 높은 에세이 《여성에 대하여(On Women)》를 탄생시켰습니다. 그는 여성을 “지적으로 근시안적이며, 유치하고, 오직 종족 보존을 위한 자연의 덫”이라고 깎아내렸습니다. 이는 객관적 철학이라기보다, 어머니에게 버림받고 연인들에게 거절당한 한 남자의 ‘지적인 복수’에 가까웠습니다.
2부 결론: 고통을 납득하기 위한 철학적 요새화
40대의 쇼펜하우어는 철저히 패배한 인간처럼 보였습니다.
- 학문적 실패: 헤겔에게 참패하고 대학에서 쫓겨났으며 저서는 팔리지 않았습니다.
- 사회적 실패: 이웃 폭행으로 전과자가 되고 연금을 뜯기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 관계적 실패: 어머니와 의절했고, 연인과는 헤어졌으며, 친구는 없었습니다.
그의 삶은 그가 주장한 대로 ‘고통과 권태의 시계추’ 그 자체였습니다. 그는 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위해 자신의 철학을 더욱 날카롭게 다듬었습니다.
“세상은 본래 의지의 투쟁터이며, 타인은 나의 의지를 꺾으려는 적대적 존재다. 행복은 쾌락을 얻는 것이 아니라 고통이 없는 상태일 뿐이다.”
그는 자신의 실패를 세상 탓, 타인 탓, 그리고 ‘맹목적인 삶의 의지’ 탓으로 돌림으로써 자아를 방어했습니다. 자신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이 천재를 담기에 너무 천박하다’고 믿어버린 것입니다.
이제 그는 세상 속으로 들어가 인정받기를 포기하고, 프랑크푸르트라는 은신처로 숨어들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자신만의 규칙, 자신만의 시간표, 그리고 반려견 ‘아트만’과 함께 완벽하게 통제된 고독의 왕국을 건설합니다.
이어지는 제3부에서는 프랑크푸르트의 은둔자가 어떻게 말년에 이르러서야 기적 같은 명성을 얻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가 완성한 ‘행복 없는 행복론’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 그의 죽음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독자를 위한 2부 회계 감사]
- Q1. 손익분기점 점검: 당신은 쇼펜하우어처럼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해 무모한 경쟁(헤겔과의 대결)을 벌이다가 자존감이라는 자산을 탕진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 Q2. 리스크 관리: 당신의 인간관계 장부에는 ‘캐롤라인 마르케’ 같은 악성 부채(감정적 소모를 일으키는 관계)가 없습니까? 쇼펜하우어처럼 극단적인 손절이 아니더라도, 어떻게 리스크를 헤지(hedge)하고 있습니까?
[다음 제3부 예고]
<프랑크푸르트의 성자 혹은 구두쇠: 늦게 온 월계관과 평온한 죽음>
: 27년간의 규칙적인 은둔 생활, 반려견과의 산책, 그리고 칠순에 터진 '소품과 부록'의 대박. 평생을 괴롭히던 의지의 고통을 끄고 마침내 열반(Nirvana)에 든 노철학자의 마지막 대차대조표를 정산합니다.
#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라는 인간을 심층 분석하는 3부작 시리즈의 마지막 제3부를 시작합니다.
이전 2부에서 인정 투쟁에 실패하고 세상과 담을 쌓은 40대의 쇼펜하우어를 보았습니다. 3부에서는 그가 프랑크푸르트에서 구축한 '완벽하게 통제된 고독'의 시스템과, 인생의 황혼기에 터진 '늦깍이 대박(명성)'에 대한 정산, 그리고 그의 죽음이 남긴 마지막 대차대조표를 분석합니다.
사유의 출발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의 저술과 그 철학적 논점에서 출발한 설탕바른위로의 재해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