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받는 법부터 배운 아이
교실 구석에 앉은 초등학교 4학년 민성이의 손끝에는 동그라미로 가득한 수학 문제집이 들려 있다. 백 점이라는 붉은색 글씨가 선명하게 박혀 있지만, 민성이의 얼굴에는 성취의 기쁨이나 호기심의 미소가 없다. 대신 아이는 기쁜 숨을 고르지도 못한 채 바쁘게 교사의 얼굴을 쳐다본다.
“선생님, 저 이거 다 맞았어요! 우리 엄마한테 전화해서 엄청 칭찬해 달라고 해주시면 안 돼요?”
아이가 맞히고 싶었던 것은 수학이라는 학문의 흥미진진한 비밀이 아니었다. 단지 문제집을 백 점으로 가득 채웠을 때만 안전하게 허락되던 어른들의 따뜻한 칭찬, 즉 세상에서 가장 매력적이고도 잔인한 ‘사랑의 보상’을 선점하고 싶었을 뿐이다. 민성이의 뇌는 지금 수학을 배운 것인가, 아니면 어른들의 칭찬 주파수를 맞추기 위해 자신의 순수한 호기심을 제물로 바치는 가련한 인지 학습을 반복하고 있는 것인가.
기성세대의 교육과 양육 담론은 언제나 “칭찬은 아낌없이 해야 한다”, “칭찬이 아이의 자존감을 기른다”는 눈부신 격언들을 쏟아낸다. 하지만 이 따뜻해 보이는 칭찬이 때로는 아이의 사유를 옥죄고, 내면에 불안으로 가득 찬 강박의 사슬을 설계한다는 사실을 정면으로 들여다보는 이들은 드물다.
심리학에서 자녀가 좋은 성적을 내거나 부모가 원하는 학업적 도달점에 다다랐을 때만 조건적으로 인정과 애정을 더 베푸는 양육 태도를 ‘학업적 조건부 긍정적 인정(Conditional Positive Regard)’이라고 부른다. 겉으로 보기에 이 인정 시스템의 지배를 받는 아이들은 훌륭하게 기능한다. 남보다 성실하고, 숙제도 제시간에 완수하며, 성적 지표도 매끄럽게 상승한다. 부모들은 “칭찬의 힘이 통했다”며 흡족해한다.
하지만 이 눈부신 결과물들의 심장부를 뜯어보면, 그곳에는 무서운 인지적 비용이 청구되고 있다. 아이는 배움이 좋아서가 아니라 성적이 무너지면 부모의 우산에서 밀려날지 모른다는 참혹한 내적 강박과 불안에 시달린다. 그들의 자존감은 성취도에 크게 흔들리는 '조건부 자존감'으로 굳어질 수 있다.
아이들은 공부를 잘하게 된 것이 아니다. 단지 ‘칭찬을 획득하기 위한 조건부 성과 재현 기계’로 완벽하게 훈련되었을 뿐이다.
진짜 파국은 이 따뜻했던 사회적 보상의 밀도가 학년이 오르며 정직하게 말라붙는 청소년기 무대에서 발생한다.
유아기 시절에는 한글 자모음만 깨쳐도, 초등 시절에는 간단한 연산지만 통과해도 온 우주가 자신을 향해 칭찬 세례를 쏟아냈다. 보상의 획득 비용이 지극히 낮았던 셈이다. 하지만 고등학교 무렵의 가혹한 평가대로 올라서는 순간, 칭찬의 진입 장벽은 한없이 치솟는다. 아무리 밤을 새워 공부해도 등수는 굳은 표정으로 고정되어 있고, 부모의 눈빛에는 만족 대신 낙오를 걱정하는 초조함이 서린다.努力해도 칭찬을 얻을 수 없고, 오히려 자신의 한계만 확인받는 고통의 영토에서 아이의 뇌는 아주 합리적인 생존을 선택한다.
“공부라는 경기장에서 완전히 도망치는 것.”
공부에서 자아를 완전히 철수하고, 자신의 선택과 손가락 끝 움직임에 단 0.1초 만에 유능감과 정직한 성장 신호를 되돌려주는 컴퓨터 게임의 영토로, 혹은 또래들의 무조건적인 소속감과 피드백이 넘실거리는 단단한 관계망의 영토로 자신의 욕망을 주저 없이 이전해 버리는 것이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칭찬을 갈구하라고 가르쳤다. 그리고 성적이 떨어지는 날, 아이가 스마트폰 뒤로 숨는 모습을 보며 참을성이 없고 나태하다며 혀를 찬다. 이것은 아이의 도덕적 해이가 아니라, 어른들이 잘못 설계한 외적 인정 회로가 남긴 정직하고 서글픈 청구서다.
인공지능이 3초 만에 모든 숙제의 모범 답안을 눈앞에 쏟아내는 이 흔한 정답의 세계에서, 외적 칭찬과 백 점짜리 동그라미에만 목메고 있던 아이들은 사유를 가장 먼저 포기한다. 그들에게 AI는 내 사유를 증폭하는 거대한 날개가 아니라, 생각하는 고통을 완벽히 마취하고 부모의 칭찬을 위장 획득해 줄 ‘가장 자상한 대리 사유 기계’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배움의 주도권은 이제 타인의 칭찬대에서 단호히 내려와야 한다. 아이가 백 점을 맞았을 때가 아니라, 문제를 푸는 과정에서 스스로 모순을 감지하고 “어? 근데 이건 왜 곱해야 돼요?”라며 눈빛을 반짝이는 그 시도의 공백을 발견해 줄 때, 진짜 배움은 시작된다. 칭찬을 향했던 무력한 뇌의 주파수를 내면의 유능감으로 되돌려놓지 않는다면, 미래의 배움은 그저 텅 빈 동그라미의 복제에 불과할 뿐이다.
함께 읽은 자료
Roth, G.; Assor, A.; Niemiec, C. P.; Ryan, R. M.; Deci, E. L. (2009). The Emotional and Academic Consequences of Parental Conditional Regard: Comparing Conditional Positive Regard, Conditional Negative Regard, and Autonomy Support as Parenting Practi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