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교육에서 진도보다 ‘학습동작’을 봐야 하는 이유

핵심 3줄 요약

  • 조기교육의 핵심 문제는 무엇을 얼마나 일찍 배우는가만이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배우는 행동을 반복하는가에 있다.
  • 직접 설명과 암기는 필요하지만, 학생이 먼저 예상·시도·실패·수정해보는 자리가 함께 있을 때 설명의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
  • 진도표와 정답률뿐 아니라 관찰·예상·생성·수정·재시도 같은 학습동작이 얼마나 반복되는지를 함께 봐야 한다.

조기교육에서 더 중요한 질문은 배우는 방식이다

조기교육을 이야기할 때 흔히 “너무 어려운 것을 너무 일찍 가르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내가 더 궁금한 것은 이것이다.

그 아이는 매일 어떤 방식으로 ‘배우는 연습’을 하고 있는가.

입력-재현형 학습

아이가 새로운 것을 배운다.

어른이 설명한다.

아이는 기억한다.

문제를 푼다.

맞으면 다음으로 넘어가고, 틀리면 다시 설명을 듣는다.

나는 편의상 이것을 ‘입력-재현형 학습’이라고 부르고 싶다.

누군가 정리한 지식이 들어오고, 그것을 이해하거나 기억한 뒤 요구된 상황에서 다시 꺼내는 방식이다.

이것은 나쁜 학습이 아니다.

구구단을 매번 발견할 필요는 없고, 한글의 체계를 아이가 처음부터 만들어낼 필요도 없다.

문제는 이 방식이 배움의 거의 전부가 될 때다.

생성-변형형 학습

다른 종류의 학습도 있다.

아이가 먼저 본다.

예상한다.

해본다.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방법을 바꾼다.

필요한 설명을 듣는다.

그리고 처음의 생각을 다시 수정한다.

나는 이것을 ‘생성-변형형 학습’이라고 불러보고 싶다.

여기에도 설명과 기억이 있다. 암기도 필요하다.

다만 순서가 다르다.

먼저 자기 안에서 무엇인가가 만들어지고, 새로 들어온 지식이 그것을 바꾼다.

몸의 활동보다 내부의 생각이 중요하다

이 차이를 ‘주입식 대 체험식’으로 단순화하면 곤란하다.

책을 읽는 아이는 몸은 가만히 있어도 머릿속에서 장면을 만들고, 다음을 예상하고, 앞의 내용과 지금을 연결한다.

반대로 손으로 열심히 쓰고 있어도 정해진 답을 그대로 옮기는 일만 반복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몸을 움직였는가가 아니라 아이의 내부에서 생각이 먼저 생성되었는가다.

직접교수와 탐색의 trade-off

어린아이의 탐색을 다룬 연구에서도 직접 가르침에는 이중성이 나타난다.

어른이 장난감의 특정 기능을 명확히 가르쳐주면 아이는 그 기능을 효율적으로 배운다. 동시에 이후 자유 탐색의 범위가 좁아질 수도 있다.

이것을 “가르치면 창의성이 죽는다”로 읽으면 과장이다.

더 정확한 뜻은 이렇다.

잘 가르쳐주는 것은 무엇이 중요한지를 알려주는 동시에, 무엇을 굳이 탐색하지 않아도 되는지도 알려줄 수 있다.

먼저 시도한 뒤 배우는 경험

수학에서도 비슷하다.

새 문제를 보자마자 풀이법을 설명하면 학생은 빠르게 방법을 익힌다.

반대로 먼저 해결을 시도하게 하면 처음에는 느리고 틀린 방법도 나온다.

하지만 수학·과학을 중심으로 한 ‘productive failure’ 연구에서는 적절하게 설계된 경우, 먼저 시도하고 실패한 뒤 설명을 배우는 과정이 이후의 개념 이해와 전이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결과가 축적되어 있다.

핵심은 가르치느냐 말느냐가 아니다.

언제 가르치는가. 그리고 가르치기 전에 아이가 자기 생각을 만들어볼 자리가 있는가.

좋은 설명은 탐색을 끝내는 설명이 아니라, 학생이 이미 해본 생각을 더 정교하게 바꾸는 설명일 수 있다. 먼저 자기 예상이 있었던 학생에게 교사의 설명은 외워야 할 정답이 아니라 ‘내 생각의 어디를 고쳐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정보가 된다.

같은 직접교수도 그 앞에 학생 자신의 생각이 있었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경험이 될 수 있다.

왜 조기교육은 입력-재현에 기울기 쉬운가

그런데 조기 인지교육은 이 균형을 입력-재현 쪽으로 밀기 쉽다.

이유는 단순하다.

성과가 빨리 보이기 때문이다.

어제 모르던 글자를 오늘 읽는다.

단어를 스무 개 외운다.

연산 속도가 빨라진다.

문제집 한 권이 끝난다.

부모도 확인할 수 있고 기관도 설명하기 쉽다.

반면 아이가 한 시간 동안 블록을 만들었다가 부쉈거나, 책을 읽다 엉뚱한 질문을 했거나, 실패한 것을 다시 만들었다면 무엇을 배웠는지 바로 점수로 보여주기 어렵다.

하지만 그 시간에는 관찰하고, 예상하고, 선택하고, 실패하고, 수정하고, 다시 시도하는 인지적 행동이 있었다.

진도와 함께 봐야 할 학습동작

그래서 조기교육을 볼 때 ‘얼마나 배웠는가’와 함께 어떤 인지적 행동을 많이 반복했는가를 봐야 한다.

설명을 듣는 일.

기억하는 일.

정답을 찾는 일.

필요하다.

하지만 함께 필요한 것도 있다.

관찰하는 일.

자기 생각을 만드는 일.

틀려보는 일.

방법을 바꾸는 일.

모르는 채로 조금 더 버텨보는 일.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어떤 동작을 많이 반복하면 다른 동작을 연습할 시간은 줄어든다.

기억이 수단이 아니라 성취가 될 때

나는 그래서 암기 자체를 비판하고 싶지 않다.

기억은 모든 학습의 기반이다.

문제는 기억이 수단이 아니라 성취 그 자체가 될 때다.

외웠다.

맞혔다.

다음으로 넘어갔다.

다시 외웠다.

이것이 반복되면 아이는 내용만 배우는 것이 아니다.

배움에는 이미 정답이 있고, 잘 배운다는 것은 그것을 빨리 받아들여 정확히 재현하는 일이라고 배울 수 있다.

반복되는 학습동작은 자기인식과도 연결된다

반대로 다른 경험도 반복될 수 있다.

궁금하다.

해본다.

잘 안 된다.

왜 그런지 찾아본다.

필요한 것을 배운다.

다시 한다.

이 과정에서 아이는 내 행동이 결과를 바꾸고, 실패하면 방법을 수정할 수 있다는 것을 함께 배운다.

관심과 질문, 자기효능감이 이런 학습동작과 따로 떨어져 있지 않은 이유다.

그런데 한 가지가 더 있다.

아이는 어떤 행동이 중요한지 혼자 판단하지 않는다.

어른들의 표정을 본다.

단어를 많이 외웠을 때 칭찬받고, 문제를 빨리 풀었을 때 인정받는다.

그러면 아이는 지식만 배우는 것이 아니다.

무엇을 해야 인정받을 수 있는지도 함께 배운다.

주요 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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