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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교육을 다시 묻다

아무도 먼저 뛰어내리지 못하는 이상한 경주차

매주 일요일 밤 9시 50분이 되면, 서울 대치동이나 부산 사직동의 대형 학원가 골목은 한 치의 양보도 없는 거대한 차량 무덤으로 변한다. 비상등을 켠 수백 대의 노란 학원 버스들과 수입 세단들이 도로 양쪽을 빈틈없이 포위한다. 밤 10시 정각, 회색 빌딩 숲에서 쏟아져 나오는 초등학교 4, 5학년 아이들의 하얀 이마에는 굵은 식은땀이 맺혀 있다. 아이들의 터질 듯한 백팩 안에는 고등학교 1학년 수학 수학상, 수학하 기출 문항들이 단단히 박혀 있다.

대규모 진학 설명회장, 한 어머니가 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떨리는 목소리를 낸다.

"우리 아이는 이제 초등학교 6학년인데, 어쩌다 보니 이제야 중학교 1학년 수학을 들어가게 됐어요. 많이 늦은 거겠죠? 어떡하면 좋죠?"

그 묵직한 공간을 메운 다른 학부모들의 시선에는 얕은 동정과 가차 없는 안타까움이 어른거린다. 그들의 세계에서 '제 나이에 맞춰 수학을 공부하는 것'은 정상적이고 정직한 성장이 아니다. 이미 경쟁의 거대한 대오에서 완전히 낙오해 버린, 도무지 회생하기 어려운 심각한 전과처럼 취급되는 셈이다. 출발선은 더 이상 사람의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저 멀리 앞으로 팽팽하게 당겨졌고, 일찍 진도를 빼지 않으면 아이가 뒤처질 것이라는 불안이 많은 가정의 선택을 압박하고 있다.

우리는 언론과 방송, 양심적인 대학교수들의 입을 통해 이런 훈계를 지겹도록 듣고 자랐다. "조기 사교육과 선행학습은 아이들의 말랑말랑한 상상력을 조기에 질식시키고 뇌 발달에 심각한 독이 되며, 부모의 왜곡된 과시욕이 낳은 비도덕적 만행일 뿐이다."

하지만 그 준엄한 도덕적 명령을 법관처럼 내뱉는 교육 관료와 먹물 전문가들조차, 막상 자녀의 고교 입시 전표 앞에서는 은밀한 고액 사교육 대기 라인에 이름을 적는다.

대한민국의 평범한 학부모들은 결코 바보가 아니다. 그 미친 선행이 아이들의 정서적 영혼을 갉아먹고 가계의 재정적 안전망을 위태롭게 만든다는 것을 그들 역시 매 순간 눈물 흘리며 절감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들은 이 폭주하는 경주차에서 먼저 스스로 발을 내딛지 못하는 것일까?

이 멈추지 않는 경주의 본질은 한 가문의 뒤틀린 과욕 따위가 아니다. 그것은 이탈했을 때 마주할 도태의 공포가 생생하게 작동하는 제도의 게임 규칙 하에서, 참여자 전원이 생존을 위해 부지런히 질주할 수밖에 없는 가혹한 '합리적 도망'이자 잔인한 집단적 딜레마이다.

게임 이론의 거대한 공식인 '죄수의 딜레마'는 이 아픈 경주를 설명하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정직한 틀이다. 참여자 개인 하나하나에게는 너무도 영리하고 '합리적인 최선의 수'가 모여, 사회 전체적으로는 가장 참혹하고 비인간적인 멸망을 불러오는 메커니즘이다.

내가 내 자녀를 위해 선행 경쟁에서 과감히 빠져나와 8살 입학 전까지 자연과 책을 만지게 하는 낭만적인 선택은 참으로 아름답다. 그러나 나를 제외한 이웃의 모든 가정이 아이를 7살에 영어 유치원에 집어넣고 수학 초등 연산을 마스터시켜 입학시킨다면, 내 아이가 마주할 첫 번째 교실은 친절하고 느린 시작의 공간이 아니다.

선행 지식을 당연한 기본 장착물로 감지한 교과 수업은 사소한 설명의 비계를 전부 생략한 채 무서운 속도로 달려가 버린다. 그 사이에서 내 아이는 일찍이 "난 원래 수학을 못하는 낙오자"라는 낙인을 또래의 차가운 시선 속에 학습한다.

이 참혹한 영토 한가운데서 이탈한다는 것은 양육의 평화가 아니라, 내 자녀에게 쏟아질 조기 낙인의 위험과 평생 지속될 학업 패배감의 독배를 부모 스스로의 전적인 책무로 외롭게 안아야 하는 극단적 모험일 뿐이다. 그리하여 선행 질주는 경쟁 우위를 차지하려는 달콤한 탐욕이 아니라, 그 보장된 나락을 피하기 위해 대오에서 어떻게든 이탈하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집단적 생존의 딜레마'로 거듭난다.

2025년 한 해 동안 이 나라 학부모들이 선행학습 학원가에 쏟아부은 사교육비가 무려 27조 5천억 원에 달하고, 고등학생 한 명당 매달 평균 80만 원에 육박하는 돈을 사교육에 지불하는 이 가혹한 통계 수치는 부모의 욕심이 만든 숫자가 아니다. 그것은 낙오하기 싫어 비상등을 켠 채 도로 위를 질주하는 우리들의 간절하고도 슬픈 생존 증거다.

우리 모두가 소중한 아이들의 어린 시절, 정직한 웃음과 바꿀 수 없는 시간을 이 참혹한 영토 전쟁에 모조리 갈아 넣었지만, 그 어떤 부모도 자녀의 장기적 승리를 확답받지 못했다. 영토는 팽창한 것이 아니라 모두가 마모되었을 뿐이다.

"늦으면 모든 기회가 사라진다"는 슬픈 집단 불안의 궤적은, 마침내 아이들의 가장 풍요롭고 눈부셔야 할 10대의 우주를 온통 획일화된 컨베이어 벨트 위에 박제해 버렸다.

하지만 우리가 이 거친 속도전에서 진짜 응시해야 할 무서운 질문은 학원비 결산액이나 선행의 진도라는 피상적 외피가 아니다. 정작 두려워하며 도려내야 할 날카로운 칼날은 이것이다.

"그 미친 질주의 경주 속에서, 지식을 머리에 무작성 구겨 넣던 그 무수한 날 동안, 아이의 머릿속 뇌 회로는 어떤 '망가진 인지 동작'을 반복하며 익숙해지고 길들고 있었는가?"

함께 읽은 자료

교육부·국가데이터처 (2026). 2025년 초중고 사교육비조사 결과.

교육부 (2026). 아동 발달권 보호를 위한 영유아 사교육 대응 방안.

김은영·구자연·김지원·김혜진·김재철·김종근·조숙인 외 (2024). 영유아기 사교육 경험과 발달에 관한 연구.

OECD (2025). Education Policy Outlook i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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