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저는 안 돼요, 라는 차가운 낙인
늦은 밤 11시, 고등학교 1학년 수민이의 방에는 수학 문제집을 펴놓고 5분째 연필 끝만 만지작거리며 멍하니 창밖을 응시하는 정적이 흐르고 있다. 선생님이 조심스럽게 지나가며 "수민아, 왜 안 풀고 있어? 막히는 부분이 있니?"라고 묻자, 수민이는 아무런 감정도 얹히지 않은 메마른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선생님, 저는 어차피 해도 안 돼요. 제가 머리가 나쁜가 봐요."
수민이에게 교실과 책상은 더 이상 새로운 지식을 채워나가는 탐험의 영토가 아니다. 그곳은 매일 아침 종소리가 울릴 때마다 자신이 '공부를 못하는 사람'이라는 판결문을 눈으로 확인하고 도장을 찍는 슬프고 가혹한 사법 재판소에 가깝다. 실패의 가시적인 경험이 몇 해 동안 단단하게 쌓이면서, 아이는 자신의 유능함을 완전히 상실하고 하나의 차가운 문장으로 스스로에게 낙인을 찍어버렸다.
"나는 원래 수학을 못하는 사람이다."
이 주문과도 같은 자기정의는 아이의 모든 시도를 원천 봉쇄한다.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으면 실패할 일도 없고, 시도하지 않아 내밀한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다면 자신의 지적 능력이 바닥이라는 점을 타인에게 다시 들키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스스로 가능성의 영토에서 완벽하게 철수해 버리는, 일종의 인지적 방어 메커니즘이다.
어른들은 이런 수민이에게 손을 얹으며 다정한 칭찬과 인위적인 격려를 건넨다. "수민아, 너는 할 수 있어. 네가 얼마나 소중하고 소질이 있는 아이인데 그래."
하지만 현실에서 증명되지 않은 공허한 위로는 아이들의 가슴에 닿지 못한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예상보다 훨씬 투명하고 눈치가 빠르다. 매일 나누어 받는 잔인한 일제식 등수와 성적표의 격차가 존재하는 물리적 환경 속에서, 아무런 무기도 주지 않은 채 내뱉는 다정한 위로는 어른들 스스로의 양심을 면피하기 위한 '착한 말'에 지나지 않음을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알아차린다.
여기서 우리는 아주 묘하고 이상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왜 수민이는 책상 앞에서는 단 20분도 버티지 못하고 온몸을 비틀며 괴로워하면서도, 플레이스테이션 패드를 손에 쥐고는 수십 번의 '게임 오버'와 가차 없는 캐릭터의 죽음을 마주하면서도 기어이 눈을 빛내며 두 시간 동안 몰입하는 것일까? 게임의 가혹한 실패는 아이를 포기하게 만들지 않지만, 수학 문제집 구석의 작은 비는 왜 아이의 전 생애적 가능성을 차갑게 닫아버리는 무서운 저주가 되는가?
진짜 자신감, 인지과학이 말하는 자기효능감은 마음을 다독이는 공허한 선언에서 피어나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의 주체적인 행동이 현실 세계에 직접 개입하여 결과를 마침내 뒤바꿔놓았다는 아주 생생하고 단단한 '사실의 증거'를 손에 거머쥐었을 때만 싹트는 단단한 근육이다.
내가 직접 시도하겠다고 결정했고, 그 길목에서 기분 좋게 꼬여있는 어려운 마찰과 마주쳤으며, 내 행동의 방식을 이리저리 수정하여 다시 부딪쳐 마침내 그 불완전한 상태를 완전히 바꾸어냈을 때. 아이의 뇌는 "어? 내 손으로 세상을 통제할 수 있네"라는 묵직한 실제 성공의 경험(mastery experience)을 짜릿하게 획득한다.
그동안 우리의 학교는 이 성공의 회로를 극단적으로 좁혀두었다. 수학의 복잡하고 기발한 탐구로 들어가기 위해서, 먼저 가로막고 있는 수개년치 지루한 단순 연산과 무조건적인 암기 지식이라는 진벽이 너무도 두꺼웠기 때문이다. 한 번 낙오한 아이들은 이 지식의 높은 문턱을 넘지 못해 배움의 기쁨 근처에도 도달해 보지 못한 채 평생을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자책 속에 살아야 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인공지능이라는 경이로운 도구의 역할을 완전히 다른 철학으로 다시 써야 한다. AI는 노력을 지워주는 자동 완성 기계가 아니다. 그것은 지식이 부족해 시도조차 해보지 못했던 아이들의 '첫 수행의 진입 장벽'을 완벽하게 붕괴시켜, 무기력한 아이를 실제 탐구와 창작의 드넓은 세계 한복판으로 성큼 밀어 넣어주는 강력한 행동 증폭기여야 한다.
연필 한 줄 대지 못하던 아이가 AI와 다정하게 이야기하며 나만의 이야기를 코딩으로 띄워내고, 수학 수식을 다 외우지 못했던 아이가 사직야구장의 좌석 비율을 함수로 피팅해 내며 눈을 반짝이는 극적인 순간. 아이가 마주한 것은 수학 공식의 암기가 아니라, 그 완고했던 무기력의 벽에 가해지는 눈부신 반례의 순간이다.
"도구를 쥐니까 나도 갈 수 있었구나. 나도 세상을 바꾸는 지적인 행위자였구나."
어차피 안 된다며 연필을 놓았던 아이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빈 껍데기 칭찬이 아니다. 도구를 부리며 생각의 끝까지 전력질주해 보는 그 거친 성공의 궤적을 단 한 번이라도 아이의 뇌 속에 선명하게 새겨주는 일, 그 경험은 아이가 무기력한 자기판단을 다시 움직이게 하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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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her, E. L.; Pajares, F. (2008). Sources of Self-Efficacy in School: Critical Review of the Literature and Future Direct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