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3줄 요약
- 반복된 실패는 “이 문제를 못 풀었다”를 “나는 못하는 사람이다”라는 자기판단으로 바꿀 수 있다.
- 학생 자신의 선택·시도·수정이 결과에 기여했다고 느끼는 실제 수행경험은 자기효능감의 중요한 원천이 될 수 있다.
- AI는 대신 해주는 도구보다, 이전에는 진입하기 어려웠던 일을 먼저 시도하고 필요한 지식을 다시 배우게 하는 도구로 사용할 때 교육적 의미가 커진다.
반복된 실패가 자기판단으로 바뀔 때
학생을 오래 보다 보면 성적보다 먼저 굳어지는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자기 자신에 대한 판단이다.
“저는 원래 수학을 못해요.”
처음에는 한 문제를 못 풀었다는 말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실패가 반복되면 문장의 주어가 바뀐다.
“이 문제를 못 풀었다”가 아니라
“나는 못하는 사람이다.”
이 변화는 크다.
어려운 문제를 만나기 전에 이미 결과를 안다고 믿게 되기 때문이다.
“한번 봐.”
“어차피 못 풀어요.”
이 학생에게 문제는 생각해볼 대상이 아니라 자신이 못한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는 시험이 된다.
반대로 어떤 학생은 모르는 문제를 만나도 일단 적어본다. 틀리면 다른 방법을 찾는다. 힌트를 주면 다시 해본다.
반드시 더 똑똑해서가 아니다.
내 행동이 결과를 바꿀 수 있다는 경험이 더 많이 남아 있을 수 있다.
자기효능감에서 실제 수행경험이 중요한 이유
심리학의 자기효능감은 막연한 자신감보다 이런 판단에 가깝다. 특정 상황에서 내가 필요한 행동을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이다. 학업 자기효능감 연구에서도 실제로 해낸 경험, 즉 mastery experience는 중요한 원천으로 다뤄진다. 다만 그 영향은 과목과 학생의 경험, 맥락에 따라 다르다.
성공 경험은 쉬운 문제를 많이 맞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너는 할 수 있어.”라는 말보다
“어? 내가 이걸 했네.”라는 경험이 더 강할 때가 있다.
물론 아무 성취나 자기효능감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너무 쉬운 일을 대신 해주고 성공했다고 말하면 학생도 그 성공이 자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중요한 것은 약간의 도움을 받더라도 자신의 선택과 시도가 결과를 바꿨다고 느끼는 성공이다.
그래서 교육에서 ‘성공 경험을 주자’는 말을 단순히 쉬운 문제를 많이 맞히게 하자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곤란하다. 해볼 만하지만 그냥 되지는 않는 일을, 도움을 이용해 끝까지 완성해보는 경험이 필요하다.
AI가 첫 시도를 가능하게 할 때
나는 여기에서 AI의 교육적 가능성을 본다.
AI는 흔히 생산성의 언어로 설명된다. 글을 빨리 쓰고, 자료를 정리하고, 코드를 만들어준다.
학생에게는 조금 다른 의미가 있을 수 있다.
예전에는 시작조차 하기 어려웠던 일을 일단 해보게 만드는 것.
“나는 글을 못 써.”
“영어는 아예 안 돼.”
“코딩은 배운 적도 없어.”
이런 문장은 때로 능력의 정확한 측정보다 아직 진입해보지 못한 세계에 대한 자기판단일 수 있다.
코딩을 모르는 학생이 자기가 좋아하는 게임 기록을 분석하고 싶다고 해보자.
예전에는 프로그램을 배우는 데서 시작해야 했다. 관심은 있어도 첫 결과물을 보기까지 너무 멀었다.
AI와 함께라면 원하는 것을 설명하고, 코드를 실행해보고, 오류를 수정하며 작은 결과부터 볼 수 있다.
그러다 묻게 된다.
“여기를 바꾸면 왜 결과가 달라지지?”
“이 기능도 넣을 수 있을까?”
이 순간 배움의 순서가 달라진다.
기존에는 흔히
배운다 → 숙달한다 → 언젠가 사용한다
였다.
AI와 함께라면 어떤 영역에서는
해본다 → 결과를 본다 → 더 잘하고 싶어진다 → 배운다
가 가능해진다.
이 순서가 중요한 이유는 공부에서 이미 여러 번 실패한 학생에게 ‘나중에 도움이 된다’는 약속이 너무 멀기 때문이다.
먼저 작더라도 실제 결과를 만들어보고, 그것이 자기 삶에서 쓰이는 것을 본다면 배움의 이유가 달라진다.
AI의 결과와 학생의 성취를 구분해야 한다
다만 AI가 대신 과제를 해주는 것은 다르다.
AI가 쓴 에세이를 제출해 좋은 점수를 받았다고 자기효능감이 생기지는 않는다. 학생 자신도 안다.
‘AI가 한 거니까.’
중요한 것은 학생이 목표를 정하고, 결과를 보고, 틀린 부분을 판단하고, 수정하고, 필요한 것을 다시 배우는 과정에 남아 있는 것이다.
AI의 도움을 받았더라도
도구를 이용해 무언가를 해낸 사람도 나다.
우리는 원래 도구와 함께 능력을 확장해왔다. 계산기를 썼다고 계산 결과가 계산기의 성취라고만 하지는 않는다. 카메라를 썼다고 사진의 주인이 카메라가 되는 것도 아니다.
AI 역시 그런 도구가 될 수 있다.
도구를 이용해 현실에 결과를 만드는 것도 능력이다
그렇다면 능력의 정의도 조금 넓어져야 한다.
혼자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뿐 아니라,
무엇을 원하는지 정하고,
필요한 도구를 찾고,
결과를 판단하고,
부족한 것을 배우면서,
결국 현실에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
이것도 능력이다.
지금 중요한 것은 학생 자신의 경험이다.
AI 교육의 목표를 ‘AI를 잘 쓰게 하는 것’으로만 잡고 싶지 않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에게 자기 능력의 경계를 다시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나는 못해.” 뒤에 “그러니까 할 수 없어.”가 따라붙지 않게 하는 것이다. 대신 “지금은 방법을 모르지만 찾아볼 수 있다.”가 남게 하는 것.
“나는 못하는 사람”과 “아직 방법을 모르는 사람”은 전혀 다른 사람이다.
첫 번째 문장은 행동을 멈추고, 두 번째 문장은 방법을 찾게 한다.
행동 가능성의 평등
나는 이런 가능성을 행동 가능성의 평등이라고 부르고 싶다.
모두에게 같은 도구를 주는 것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가, 지금 가진 기술과 환경 때문에 아예 시도하지 못했던 세계에 들어가볼 수 있게 하는 것.
AI는 아이의 노력을 없애는 도구가 아니라 노력과 실제 성취 사이의 연결을 복구하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경험은 다시 한 가지 질문을 남긴다.
도구가 행동의 범위를 이렇게 넓힌다면, 앞으로 많이 안다는 것은 어떤 힘이 되는가.
이 질문은 ‘기술이 없어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처음 결과를 본 뒤부터 진짜 실력 차이가 생긴다. 더 좋은 결과를 만들고 싶으면 결국 개념을 이해해야 하고, 오류를 판단해야 하고, 더 깊은 기술을 배워야 한다.
다만 진입 순서가 달라질 수 있다. 지식을 모두 갖춘 뒤에야 행동할 수 있었던 세계에서, 먼저 행동해보고 그 행동이 요구하는 지식을 다시 배우는 세계로 이동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