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각과 보이지 않는 중간
유튜브 숏폼 화면 속에서 매끄러운 수트를 입은 크리에이터가 자신 있게 외친다.
“이제 디자인 공부에 수년씩 쓸 필요 없습니다. 마우스 딸각 몇 번이면 미려한 상용 이미지가 쏟아지고 월 천만 원을 법니다!”
화면에는 프롬프트 한 줄에 수초 만에 출력되는 화려한 일러스트들이 펼쳐지고 댓글창은 감탄으로 도배된다.
그러나 현실의 한 작은 디자인 외주 사무실, 화면 속 크리에이터의 말을 믿고 ‘딸각’ 생성기로 고객의 프로젝트 초안을 만들어 보낸 초보 프리랜서는 모니터 앞에서 식은땀을 흘리고 있다.
“3번 시안 좋은데요, 캐릭터의 시선 처리만 오른쪽으로 바꾸고 조명을 좀 더 따뜻한 톤으로 수정해 주세요.”
고객의 간단한 수정 요청이 도착했지만, 초보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생성 버튼을 수십 번 다시 눌러봐도 전혀 다른 이미지들만 산발적으로 튀어나올 뿐, 고객이 요구한 ‘그 특정 조건’만 정확히 고쳐낼 재현가능성이 그에게는 없기 때문이다.
딸각이 감추고 있는 것
‘딸각’이라는 유쾌한 단어는 생산의 폭발을 약속한다. 기술적으로는 틀린 말이 아니다. 몇 줄의 프롬프트와 클릭 몇 번으로 그럴듯한 결과물이 손에 쥐어진다.
그러나 결과물이 실제 현실 세계와 부딪히는 순간, 질문은 서늘하고 차갑게 바뀐다.
- 단순히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과 잘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은 같은가?
- 그 결과물이 시장에서 진짜 가치를 인정받고 선택받을 수 있는가?
- 그리고 그 결과를 내 의지대로 반복해서 재현해낼 수 있는가?
딸각 담론은 화려한 결과물은 보여주지만, 그 결과를 가능하게 만든 수많은 ‘보이지 않는 중간 과정’을 깨끗이 소거해버린다.
전문가의 직관과 초보자의 착시
어떤 분야를 오래 다루어 온 전문가는 수많은 판단 과정이 지극히 자연스럽고 직관적이다. 글을 오래 쓴 작가는 문장 하나에서 호흡의 결을 감각하고, 베테랑 디자이너는 시안의 조화로움을 즉각 구별한다. 그래서 전문가는 초보자에게 쉽게 말하곤 한다.
“이건 그냥 이렇게 하면 당연히 되잖아.”
전문가 자신에게는 정말 당연하다. 수천 번의 실패와 수정, 비교의 경험이 머릿속에 ‘압축(abstraction)’되어 직관이라는 형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내면 기준이 없는 초보자가 AI라는 지름길을 통해 결과만 손에 쥐었을 때, 초보자는 자신이 그 전문가와 같은 능력을 갖게 되었다고 오해한다.
AI가 건너뛰어 준 것은 지루한 단순 노동이 아니라, 판단 능력 자체가 만들어지는 필연적인 형성 과정이다.
재현가능성: 한 번의 우연과 진짜 전문성
AI 시대에는 누구나 한 번쯤 우연히 기가 막힌 글, 음악, 이미지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한 번의 성공은 우연일 수 있다.
진짜 전문성의 핵심 기준은 재현가능성(Reproducibility)에 있다.
전문가는 항상 최고의 결과만 내는 사람이 아니다. 좋은 결과가 나올 확률을 높이고, 실패했을 때 원인을 읽어내며, 조건을 바꾸어 목적한 결과를 통제된 상태로 반복해서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이다.
‘딸각’의 가장 큰 착시는 생산비용의 하락을 전문성 비용의 하락으로 오해하게 만든다는 점에 있다.
생산이 흔해지고 결과물이 폭증할수록 시장에서는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노동보다, 무엇을 만들고 무엇을 버릴 것인가를 결정하는 인간 이해와 판단의 가치가 극적으로 상승하는 역설이 발생한다.
그렇다면 초보자에게 이 보이지 않는 중간 과정, 즉 조건에서 출발해 판단을 거쳐 결론에 다다르는 사고의 단단한 사슬을 가장 오점 없이 훈련시킬 수 있는 장소는 어디인가.
책상 위, 하얀 수학 시험지 앞 카메라가 천천히 줌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