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3줄 요약
- AI가 기술적 실행의 진입장벽을 낮추면서 ‘기초’는 특정 결과를 만들기 위해 반드시 먼저 익혀야 하는 기술이라는 의미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 앞으로의 기초는 목적에 따라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배우되, 도구가 바뀌어도 문제를 구조화하고 결과를 판단할 수 있게 하는 내부 사고 구조까지 포함해야 한다.
- 따라서 AI 시대의 기초교육은 전통적 기초를 단순 폐기하거나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공통 기반이고 무엇이 목적별 전문 기술인지 다시 구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 무언가를 배우려면 기초부터 해야 한다. 너무 익숙한 말이라 우리는 거의 의심하지 않는다. 피아노를 배우려면 악보를 읽어야 하고, 그림을 그리려면 소묘를 해야 하고, 프로그램을 만들려면 코딩 문법부터 익혀야 한다. 수학이라면 연산부터 시작해 방정식과 함수로 올라간다.
- 우리는 그것을 ‘기초’라고 불러왔다.
- 그런데 AI가 이상한 질문을 던진다.
- 그것들은 정말 기초였던 걸까.
- 아니면 원하는 곳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지나야 했기 때문에 기초라고 불렀던 것일까.
과거의 기초는 왜 기초였을까?
과거의 기초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을 통과하지 않으면 결과물에 접근하기 어려웠다. 악보를 읽지 못하면 복잡한 음악을 다루기 어려웠고, 소묘와 원근법을 익히지 않으면 원하는 장면을 정확하게 그려내기 어려웠다. 프로그래밍 언어를 모르면 컴퓨터에게 원하는 일을 시킬 방법 자체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생산에 진입하기 위한 선행 기술을 기초라 불렀다. 그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이제 그 전제가 바뀌었다.
예전에는 대체로
아이디어 → 기술 습득 → 실행 → 결과
의 순서를 거쳤다면, 이제 어떤 영역에서는
아이디어 → AI를 통한 실행 → 결과
에 가까운 경로가 생겼다.
중요한 변화는 단순히 일이 빨라졌다는 데 있지 않다.
접근권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충분한 기술을 배우기 전에는 시도조차 어려웠던 사람이 이제는 먼저 만들어보고 그다음에 배울 수도 있다. 배움의 순서 자체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AI가 있다면 기존 기초는 버려도 될까?
여기서 논의는 쉽게 두 극단으로 갈린다. 한쪽에서는 AI가 계산하니 계산을, 그림을 그리니 그림을, 코드를 쓰니 코딩을 배울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반대쪽에서는 “그래도 기초는 기초다. 예전과 똑같이 먼저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둘 다 질문을 너무 빨리 끝낸다고 생각한다. 기초가 필요한가 아닌가보다 먼저 무엇을 기초라고 부를 것인가를 다시 정해야 한다.
기술의 변화는 교육과정보다 빠르다. 오늘 필수로 정한 기술을 몇 년 동안 가르쳐도 학생이 사회에 나갈 무렵에는 그 상당 부분을 기계가 수행하고 있을지 모른다. 코딩 문법도, 지금 중요하다고 말하는 프롬프트 기술도 얼마나 오래 독립된 필수 기술로 남을지는 알 수 없다.
그렇다면 기초는 특정 시대의 도구보다 더 아래에서 찾아야 한다.
코딩의 더 깊은 기초는 무엇일까?
프로그램 하나를 만든다고 생각해보자. AI가 코드를 작성하고, 다른 시스템이 테스트하고, 오류가 나면 다시 수정하는 과정이 점점 자동화된다면 사람이 직접 코드 한 줄 한 줄을 다루는 일은 줄어들 것이다.
그런데 그보다 앞선 문제가 남는다.
무엇을 만들고 누가 사용할 것인가. 어떤 정보가 들어오면 어떤 조건을 거쳐 어떤 결과가 나와야 하는가. 예외와 충돌이 생기면 무엇을 우선할 것인가.
이것을 설명하지 못하면 AI가 아무리 완벽한 코드를 만들어도 엉뚱한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하는 프로그램이 나올 수 있다.
그러니 코딩의 더 깊은 기초는 특정 언어의 문법보다
현실의 문제를 조건과 관계의 구조로 바꾸는 능력
에 가깝다.
직접 만들지 않아도 무엇을 판단할 수 있어야 할까?
음악도 비슷하다. 악보를 읽지 못해도 음악을 만들 수 있다고 해서 아무것도 몰라도 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 나온 음악이 내가 원하는 감정을 만드는지, 어느 부분이 지루한지, 두 결과 가운데 무엇이 더 적합한지를 판단해야 한다.
그림 역시 직접 소묘하지 않더라도 구도와 빛, 시선의 흐름이 어떤 효과를 만드는지 구별할 수 있다면 AI를 전혀 다르게 사용한다.
그러면 기초의 위치가 달라진다. 예전의 기초가 내 손으로 결과물을 만들기 위한 선행 기술에 가까웠다면, 앞으로의 기초는 원하는 것을 정의하고 구조화하며 결과를 판단하기 위해 내부에 가지고 있어야 하는 최소한의 구조에 가까워진다.
여기에는 지식도 필요하다. 아무것도 모르면 판단할 수 없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같은 깊이의 지식을 가질 필요도 없다.
전문 작곡가가 되려는 사람과 자신의 영상에 들어갈 음악을 만들려는 사람이 같은 화성학을 배워야 할 이유는 없다. AI 연구자가 되려는 사람과 자기 일을 자동화하려는 사람이 같은 깊이의 컴퓨터과학을 배워야 할 이유도 없다. 목적에 따라 필요한 기술의 깊이는 달라진다.
다만 그 아래에는 공통된 구조가 남는다. 무엇을 원하는지 정하고, 문제를 나누고, 조건과 관계를 찾는다. 가능성을 비교하고 결과를 판단하며, 틀렸다면 다시 수정한다.
그 밑바닥에는 논리적 사고가 있다.
OECD와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의 2026년 AI 리터러시 프레임워크 역시 AI 사용 능력뿐 아니라 결과를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정보에 근거해 판단하는 능력을 포함한다. 이는 특정 도구 사용법보다 판단의 내부 구조가 중요해진다는 이 글의 문제의식과 연결된다.
AI 시대의 기초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그래서 AI 시대의 기초를 나는 이렇게 정의하고 싶다.
기초란 도구 없이 모든 일을 직접 해낼 수 있게 하는 기술의 목록이 아니다. 도구가 바뀌어도 목적을 정하고, 관계를 구조화하고, 결과를 판단할 수 있게 하는 최소한의 내부 구조다.
교육이 새로운 기술이 나올 때마다 그것을 하나씩 추가하는 방식만으로는 기술의 속도를 따라가기 어렵다. 오히려 새로운 도구가 나왔을 때 스스로 배우고, 무엇을 맡길지 결정하고, 결과를 검토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또 하나의 문제가 생긴다. 그 내부 구조는 언제 만들어지는가.
이미 충분한 판단 기준을 가진 사람에게 AI는 지름길이다. 문제는 아직 그 기준이 없는 사람에게도 같은 지름길이 열려 있다는 데 있다.
결과에 접근할 수 있게 된 것과, 그 결과를 다시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은 같은 일이 아니다.
기초를 다시 정의하고 나면, 이제 보이지 않던 ‘중간’을 봐야 한다.
관련 교빛 글
- [연재 1부] AI 시대 교육의 목적은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 [연재 3부] AI가 학습의 중간 과정을 대신하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
- [연재 4부] AI 시대에도 수학을 배워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참고한 자료
- OECD & European Commission (2026), Empowering Learners for the Age of AI: An AI Literacy Framework for Primary and Secondary Education
https://www.oecd.org/en/publications/empowering-learners-for-the-age-of-ai_65cd27d4-en.html
- OECD (2026), OECD Digital Education Outlook 2026: Exploring Effective Uses of Generative AI in Education
https://www.oecd.org/en/publications/oecd-digital-education-outlook-2026_062a7394-en.html
- OECD (2024), Mathematics for Life and Work — 절차 암기보다 새로운 상황에서의 추론과 전략 선택을 다룬다.
https://www.oecd.org/en/publications/mathematics-for-life-and-work_26f18d39-en.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