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기초라고 부르던 것들
오래된 음악 학원의 작은 방, 초등학생 아이가 피아노 의자에 앉아 나무 연필로 악보 위 음표를 하나씩 짚아가며 삐걱거리는 바이엘 연주를 수백 번 되풀이한다. 손가락 마디에 쥐가 나도록 계면조와 화성학을 외우고 나서야 비로소 자기가 원하는 노래를 연주할 자격이 주어진다.
그러나 바로 옆방, 태블릿 PC를 든 한 아이가 생성형 음악 앱에 “비 내리는 가을밤에 어울리는 쓸쓸한 로파이 피아노 곡”이라는 몇 단어를 입력한다. 단 5초 만에 완벽한 코드 진행과 감각적인 멜로디의 곡이 출력되어 스피커를 채운다.
이 광경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속에는 아득한 질문 하나가 떠오른다.
“무언가를 배우려면 기초부터 해야 한다.”
우리는 아주 오랫동안 이 문장을 신봉해왔다. 피아노를 배우려면 악보부터 읽어야 하고, 그림을 그리려면 데생과 소묘를 거쳐야 하며, 프로그램을 만들려면 프로그래밍 언어의 문법부터 달달 외워야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AI라는 도구가 배움의 현장에 들어선 지금, 질문은 근본적인 뿌리부터 흔들린다.
그것들은 과연 진짜 기초였던 걸까.
아니면 우리가 원하는 결과물로 가기 위해 기술적으로 반드시 통과해야만 했던 ‘선행 장벽’이었기 때문에 기초라는 이름으로 불려왔던 것일까.
선행 장벽의 무너짐과 배움의 역전
과거에 우리가 기초라 불렀던 기술들에는 한 가지 명확한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해당 분야의 결과물 근처에도 접근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악보를 읽지 못하면 음악을 다룰 수 없었고, 소묘를 모르면 화폭을 채울 수 없었으며, 코딩 문법을 모르면 컴퓨터에 명령을 내릴 수 없었다.
따라서 과거의 기초는 ‘생산 행위에 진입하기 위한 필수적인 선행 기술’이었다. 그리고 그 환경에서는 그 판단이 지극히 타당했다.
그러나 AI의 등장으로 이 선형적 경로가 파괴되었다. 예전에는
아이디어 → 기술 습득 → 실행 → 결과
의 순서를 거쳐야 했다면, 이제는
아이디어 → AI를 통한 실행 → 결과
라는 새로운 우회로가 열렸다.
중요한 변화는 접근권(Accessibility)이 달라졌다는 데 있다. 과거에는 수년의 선행 기술을 훈련받기 전에는 시도조차 할 수 없었던 초보자가, 이제는 먼저 결과물을 만들어보고 그 과정에서 거꾸로 배움을 일으킬 수 있게 되었다. 배움의 순서 자체가 역전된 것이다.
기초 무용론과 기초 보수주의를 넘어
이 변화 앞에서 교육적 담론은 흔히 두 가지 오류에 빠진다.
한쪽에서는 “AI가 다 해주니 이제 소묘도, 연산도, 코딩 문법도 배울 필요가 없다”며 ‘기초 무용론’을 주장한다. 다른 한쪽에서는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악보를 읽고 코딩 문법을 외우는 것이 진짜 기초다”라며 기존 과목 목록을 고수한다.
그러나 두 주장 모두 기초라는 단어의 의미를 깊게 묻지 않는다. 도구의 변화 속도가 교육과정 개정 속도보다 훨씬 빠른 시대에, 특정 시대의 손기술을 고정된 기초로 삼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렇다면 기초는 특정 시대의 도구보다 더 깊은 밑바닥에서 다시 정의되어야 한다.
도구가 바뀌어도 남는 최소한의 내부 구조
프로그램 하나를 만드는 과정을 생각해보자. AI가 코드를 짜고, 오류를 검증해주는 시대에 코딩의 기초는 더 이상 Python 문법의 철자를 외우는 데 있지 않다.
- 무엇을 만들고 누가 사용할 것인가?
- 어떤 조건이 들어오면 어떤 판단을 거쳐 무슨 결과가 나와야 하는가?
- 예외와 충돌이 생기면 무엇을 우선할 것인가?
이것을 설명하지 못하면 AI는 엉뚱한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하는 유용한 쓰레기를 만들어낼 뿐이다. 따라서 코딩의 더 깊은 기초는 특정 언어의 문법이 아니라 “현실의 문제를 조건과 관계의 구조로 바꾸는 능력”이다.
음악과 미술도 마찬가지다. 악보를 읽지 못하더라도, 출력된 결과물이 내가 원한 감정을 만드는지, 어느 부분이 지루한지, 왜 A보다 B 시안이 시각적 안정감을 주는지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제 기초의 위치는 바뀐다. 예전의 기초가 내 손으로 직접 결과물을 만들기 위한 ‘선행 기술’이었다면, 앞으로의 기초는 “원하는 것을 정의하고, 관계를 구조화하며, 결과를 판단하기 위해 학습자가 내면에 가지고 있어야 하는 최소한의 내부 구조”다.
태블릿 PC에서 흘러나오는 미려한 음악을 들으며 아이는 기뻐하지만, 뒤이어 들어온 친구가 “중간 부분 음색이 좀 지루한데 어떻게 고칠 거야?”라고 묻자 아이는 멈칫하며 앱의 생성 버튼을 무작위로 다시 누르기 시작한다. 결과는 손에 쥐었지만, 그것을 수정하고 다시 만들어낼 판단 구조가 내면에 없기 때문이다.
이 머뭇거림의 현장 뒤에 숨은 또 하나의 거대한 착시를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수많은 ‘딸각’ 뒤에 감춰진 보이지 않는 중간의 실체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