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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교육을 다시 묻다

아이의 손에 세상에서 가장 친절한 해답지가 쥐어졌다

늦은 밤 11시, 고등학교 1학년 민우의 방은 고요하다. 책상 위에 펼쳐진 수학 문제집 여백에는 거친 연필 자국 대신 스마트폰 액정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르스름한 불빛이 내려앉아 있다.

민우가 마주한 문제는 2차함수의 최대·최소를 활용한 기하의 변형 문항. 연필을 쥐고 두어 줄 식을 끄적이다 막힌 민우는 자연스럽게 스마트폰을 켠다. 전용 인공지능 앱을 실행하고 문제집을 카메라 프레임에 맞춰 조준한 뒤, 가볍게 화면을 터치한다.

찰칵.

경쾌한 셔터 소리가 정적을 깨는 것과 동시에 화면 하단으로 완벽한 서술형 풀이 과정이 미끄러지듯 쏟아진다. 수식의 논리적 비약도 없고, 전개 과정은 눈부시게 깨끗하다. 민우는 아무런 말 없이, 그리고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없이 그 완벽한 기계의 사유를 문제집 하단 빈칸에 소리 내어 베껴 적는다. 그리고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다음 페이지로 문제집을 넘긴다.

민우의 숙제는 완벽하게 끝났다. 내일 아침 교실에서 민우는 숙제를 해오지 않아 벌을 받는 낙오자의 대오에 서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완벽하게 매끄러운 장면 뒤에서 무섭게 번져가는 한 인간의 '인지적 가사 상태'를 응시해야 한다. 민우의 뇌는 방금 수학을 배운 것인가, 아니면 인공지능의 화려한 지적 생산물을 전달하는 물리적 인터페이스(복사기)의 역할을 성실히 수행한 것인가.


정부는 소득 격차나 지역적 환경 때문에 최첨단 기술에서 밀려나는 아이들이 없도록 약 12만 명의 고등학생에게 유료 인공지능 계정과 사용법을 보급하는 단단한 정책을 발표했다. 지식의 격차가 가정을 통과해 아이들의 가능성을 먼저 옥죄지 않도록 하겠다는 이 따뜻한 취지에는 깊은 존경을 보낸다.

하지만 나는 매일 밤 책상 앞에서 기계의 눈부신 정답 배달을 조용히 받아 적으며 생각을 도구에 맡기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숨이 턱 막힌다. 인공지능은 우리가 상상했던 그 어떤 해설지보다 친절하고, 자상하며, 강력하다. 모르면 더 쉽게 설명해 주고, 길면 알아서 줄여주며, 오답을 고치며 다음 비책까지 건넨다.

바로 그 압도적인 친절함 때문에 역설적으로 배움은 무너진다.

인간의 생각은 마찰 속에서 태어난다. "어, 이게 왜 안 되지?", "내가 세운 식에 무슨 틈이 있었던 걸까?"라며 머리를 쥐어뜯고 가설을 짓이기고 다시 백지로 돌아가는 그 고독하고 불편한 '공백의 시간'이야말로 뇌가 지식을 구조화하고 장기 기억으로 인출해 내는 진짜 배움의 순간이다.

인공지능은 그 귀한 불편함을 '정보기술의 편리함'이라는 이름으로 너무도 매끄럽게 청소해 버린다. 아이들이 사유의 첫 마찰을 겪기도 전에 즉각적인 정답을 건네며, 스스로 생각의 근육을 기를 기회를 줄일 수 있다.


독일의 교육학 연구나 세계적인 디지털 교육 분석 보고서들이 경고하는 '인지 외주화(Cognitive offloading)'와 '메타인지적 나태(Metacognitive laziness)'는 멀리 있는 학술 용어가 아니다. 그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수학 문제집을 카메라로 찍어 넘기며 "난 오늘 성실하게 공부했다"고 안도하는 우리 아이들의 슬픈 자화상이다.

동일한 사물, 동일한 초거대 AI가 모두의 손에 쥐어졌지만, 세상은 결코 더 평등해지지 않는다. 도리어 격차는 더 정교하고 은밀하게 벌어진다. AI가 주는 답안의 오류를 칼날처럼 발라내어 자신의 지적 좌표를 확장하는 극소수의 아이들과, AI가 떠먹여 주는 부드러운 정답 배달에 길들어 질문하는 본능마저 거세당한 채 수동적 소비자로 내려앉는 대다수의 아이들.

이제 우리가 질문을 던져야 할 차례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답을 빨리 얻는 무기'를 쥐여주고 싶은 것인가, 아니면 '정답이 쏟아지는 세계 속에서도 스스로 멈춰 서서 질문을 조각해 내는 단단한 인간'을 선물하고 싶은 것인가. 배움의 진짜 가치는 편리한 답변의 획득에 있지 않다. 그것은 온전히 자기 손으로 생각의 공백을 통과하며 느끼는 그 정직한 마찰에 있다.

함께 읽은 자료

한국장학재단 (2026). AI 온이음 사업 안내.

OECD (2026). OECD Digital Education Outlook 2026: Exploring Effective Uses of Generative AI in Edu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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