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에 질문하는 능력이 중요한 이유

핵심 3줄 요약

  • 좋은 질문은 질문 문장을 외운다고 생기기보다, 자신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경계를 알아차릴 때 생기기 쉽다.
  • 프롬프트 작성 기술과 질문하는 사고는 다르며, AI가 즉시 답을 줄수록 생각이 질문으로 바뀌는 시간을 의도적으로 남길 필요가 있다.
  • 질문하는 능력은 지식·관심·생각할 시간이 함께 있을 때 더 잘 자란다.

질문은 질문 기술만으로 생길까

AI 시대에는 질문하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나는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조금 이상하다.

질문은 질문하는 법을 배운다고 생기는 것일까.

수업에서 같은 설명을 들은 두 학생이 있다고 해보자.

한 학생은 묻는다.

“그런데 이 조건이 없으면 답이 달라지는 거 아니에요?”

다른 학생은 묻는다.

“이거 시험에 나와요?”

둘 다 질문이다. 하지만 출발점은 다르다.

첫 번째 학생은 방금 배운 내용과 자기가 알고 있던 것을 연결하다가 맞지 않는 부분을 발견했다. 두 번째 학생은 자신에게 요구되는 행동을 확인하고 있다.

어느 쪽이 더 성실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질문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다.

질문하려면 먼저 무언가 보여야 한다. 그리고 보이려면 어느 정도 알아야 한다.

질문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경계에서 생긴다

수학을 전혀 모르는 사람은 좋은 수학 질문을 하기 어렵다. 오히려 조금 알기 시작했을 때 빈틈이 보인다.

‘나는 이렇게 알고 있었는데 이건 왜 다르지?’

‘여기까지는 이해했는데 그다음이 연결되지 않네.’

질문은 완전한 무지에서 바로 튀어나오기보다 내가 알고 있는 세계와 아직 설명되지 않는 세계가 맞닿는 경계에서 생긴다.

그래서 질문이 적은 학생에게 무조건 ‘적극성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질문할 만큼 이해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반대로 수업이 너무 익숙해서 아무런 충돌이 생기지 않았을 수도 있다. 좋은 질문은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학습 상태를 보여주는 신호일 때가 많다.

교사가 “질문 있는 사람?”이라고 물었을 때 손이 들리지 않는 이유가 모두 같지는 않은 것이다.

호기심 연구에서 말하는 ‘정보 격차’도 이 생각과 닿아 있다.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모르는 상태보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 사이의 빈칸을 알아차릴 때 궁금증이 생기기 쉽다.

그래서 “질문해봐”라는 말만으로는 질문을 만들기 어렵다.

프롬프트 기술과 질문하는 사고는 다르다

그런데 AI 교육은 종종 이 순서를 거꾸로 세운다.

“AI 시대에는 질문하는 능력이 중요합니다.”

그러고는 곧바로 프롬프트 작성법을 가르친다. 역할을 지정하고, 조건을 구체적으로 적고, 원하는 출력 형식을 명시하라고 한다.

물론 필요한 기술이다.

하지만 그것은 질문하는 법이라기보다 AI에게 일을 잘 시키는 법에 가깝다.

“중학생도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줘.”라고 쓰는 능력과 “두 설명이 서로 모순되는 것 같은데 전제가 어디에서 다른 거지?”라고 묻는 능력은 다르다.

앞의 것은 사용법이고, 뒤의 것은 사고다.

AI는 여기서 또 하나의 문제를 만든다.

모르겠으면 바로 설명해준다. 어려우면 더 쉽게 바꿔준다. 글이 길면 요약해준다.

AI는 사람이 질문을 만들기 직전에 느끼던 불편함을 너무 빨리 없앨 수 있다.

“뭔가 이상한데.”

“왜 안 되지?”

“내가 뭘 모르고 있는 거지?”

질문은 종종 그 시간을 통과하면서 생긴다.

정답을 늦게 알려주는 것 자체가 교육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생각이 질문으로 바뀔 만큼의 틈을 남겨두는 것이다.

질문을 만들기 위해 지식이 필요한 이유

그래서 AI 시대에는 역설적으로 지식도 더 중요해질 수 있다.

많이 외워 남보다 우월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다. AI의 답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보기 위해서다.

“잠깐, 이건 아닌 것 같은데.”라고 말하려면 내 안에 이미 다른 설명과 기준이 있어야 한다.

지식은 정답을 생산하기 위한 저장물에서 질문을 만들고 답을 판단하기 위한 내부 기준으로 역할이 달라질 수 있다.

그렇다면 교육은 좋은 질문 문장을 외우게 하기보다 질문이 생길 만큼 세상을 보게 해야 한다.

조금 알게 하고, 예상하게 하고, 틀려보게 하고, 자기가 알고 있던 것과 다른 것을 만나게 해야 한다.

질문보다 앞에 있는 관심

그런데 세상의 모든 빈칸이 궁금한 것은 아니다.

어떤 빈칸은 보여도 그냥 지나친다.

왜 어떤 것은 붙잡고 어떤 것은 지나칠까.

결국 질문보다 앞에 또 하나가 있다.

관심이다.

하고 싶은 것이 없는 사람에게 좋은 질문을 요구할 수는 없다.

질문 교육이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질문은 하나의 독립된 기능이 아니다. 배경지식이 있어야 빈틈이 보이고, 그 빈틈이 나와 관련 있다고 느껴야 붙잡게 된다. 그리고 바로 답을 얻지 않고 조금 더 생각해본 경험이 있어야 그 빈틈을 자기 문장으로 만들 수 있다.

따라서 좋은 질문을 만드는 교육은 ‘질문 목록’을 가르치는 일이 아니라 지식과 관심과 생각할 시간을 함께 설계하는 일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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