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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배움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AI 시대, 배움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늦은 밤, 어두운 방 안에서 모니터의 조명만이 고요하게 빛난다. 화면 위에는 AI 생성 창이 열려 있고, 주소창 옆 입력 칸에 “고등학생 수준의 인공지능과 교육 혁신 보고서 작성”이라는 한 줄이 적힌다. ‘생성’ 버튼을 누르자 마우스 딸각 소리와 함께 불과 3초 만에 완벽한 서론, 본론, 결론, 참고문헌까지 갖춰진 10페이지짜리 문서가 화면을 가득 채운다. 화면 앞의 학생은 감탄 섞인 한숨을 내쉬며 그대로 ‘제출’ 버튼을 누른다.

그러나 다음 날 수업 시간, 교사가 보고서의 세 번째 단락에 쓰인 개념을 지목하며 “이 문장은 어떤 의미니?”라고 묻자, 학생은 붉어진 얼굴로 모니터만 바라본 채 입을 다문다. 3초 만에 만들어진 완벽한 문장 뒤에, 아이의 사유는 단 한 줄도 남아있지 않았던 것이다.

AI 시대의 교육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흔히 ‘이 강력한 도구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라는 공학적 질문에 골몰하곤 한다. 그러나 진짜 질문은 그 도구 너머에 있다.

“우리는 무엇을 배우게 해야 하는가.”

질문은 이 오래되고 근본적인 물음으로 돌아와야 한다.


쉬운 길이 생겼다는 착시

사람의 선택은 자신이 속한 환경의 구조에서 자유롭지 않다. 같은 목적지로 가는 길 위에 쉬운 경로와 어려운 경로가 동시에 열려 있다면, 특별히 탐험심이 뛰어난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은 자연스럽게 더 적은 인지적 비용이 드는 쉬운 길을 선택하기 마련이다.

AI는 배움의 현장에도 그 강력한 쉬운 길을 깔아두었다. 문제를 읽고 무엇을 묻는지 해석하고, 어디에서 시작할지 고민하고, 첫 시도에서 실패하고, 다른 경로를 찾아 수정한 뒤, 마지막에 자신의 논리를 복기하던 그 모든 과정 사이에 AI가 침투할 수 있게 되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라고 묻는 순간 AI는 출발점을 제시하고, 중간 풀이와 오류를 대신 바로잡아주며, 요약까지 완벽히 마무리해준다.

이는 분명 엄청난 편리이자 기회다. 그러나 과제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과, 학습자 개인이 그 과제를 해결할 능력을 스스로 갖추게 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다.

과제 성과(Performance)와 실제 학습(Learning)은 분리될 수 있다. AI 이전에는 ‘잘 해낸 것’과 ‘배운 것’이 어느 정도 붙어 있었지만, AI는 둘을 가볍게 갈라놓는다. 과제는 완벽하게 제출되었지만, 아이의 내면에는 단 하나의 판단 구조도 형성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핵심은 AI라는 도구를 쓰느냐 마느냐라는 이분법에 있지 않다.

학생에게 어떤 통과의 과정을 남겨둘 것인가의 문제다.


기술이 지워내는 것과 사람이 통과해야 하는 것

사실 이 문제는 AI가 처음 만들어낸 완전히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어떤 분야든 오랜 시간 공부하고 숙련된 전문가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판단 경로가 이미 압축(abstraction)되어 있다. 전문가는 문제를 보자마자 어디서 시작해야 할지 직관적으로 알아차리고, 글을 읽는 순간 어색한 문장을 감지하며, 결과물을 보면 무엇을 고쳐야 할지 빠르게 파악한다.

그러나 아직 능력이 형성되지 않은 초보자에게 필요한 것은 전문가의 그 압축된 결론이 아니라, 결론에 도달하기까지의 ‘보이지 않는 중간’이다. 왜 하필 여기서 시작했는가. 왜 이 옵션을 버리고 저것을 선택했는가. 막혔을 때 무엇을 바꾸었는가.

AI는 바로 이 intermediate(중간) 과정의 상당 부분을 빠르게 대신해준다. 이미 머릿속에 자기만의 판단 기준과 구조를 가진 숙련자에게 AI의 인지적 외주화는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훌륭한 지름길이 된다. 그러나 아직 자기 구조를 형성하지 못한 초보자가 같은 지름길을 택할 경우, 그 지름길은 우회로가 아니라 자기 능력을 형성할 기회 자체를 끊어버리는 단절로가 되고 만다.

따라서 앞으로의 교육은 모든 어려움을 고집스럽게 보존하는 보수주의도, 모든 마찰을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지워버리는 기술만능주의도 아니어야 한다. 무엇은 도구에 맡기고, 무엇은 사람이 직접 통과해야 하는 ‘의도적 마찰(friction)’로 남겨둘 것인가를 정교하게 구별하는 일에 가까워져야 한다.


사유의 재료와 단단한 구조

기술의 발전은 ‘어떻게 할 것인가(execution)’의 비용을 지속적으로 낮출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한층 더 비싸고 희소해지는 가치는 그 앞과 뒤에 남는다. 무엇을 할 것인가. 왜 그것을 해야 하는가. 어떤 결과가 내가 의도한 목적에 부합하는가. 틀렸다면 어디를 수정해야 하는가.

무엇을 할지 올바르게 판단하려면 먼저 판단의 재료가 내면에 쌓여 있어야 한다. 여기에는 인간과 세상에 대한 방대한 간접경험이 요구된다. 내가 살아보지 못한 시대를 역사를 통해 만나고, 직접 경험할 수 없는 삶을 문학으로 접하며, 자연과 사회의 작동 메커니즘을 과학과 사회과학으로 익힌다.

그러나 간접경험이 풍부하다고 해서 판단력이 저절로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사실과 해석을 엄격히 나누고, 인과관계를 따지며, 여러 가능성을 비교하고, 자신만의 결론을 도출한 뒤, 다시 그 결론의 오류 가능성을 검토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사고 활동의 기저에 ‘논리적 사고’가 작동한다.

경험이 사고의 재료라면, 논리는 그 재료를 연결하는 구조다.

제출 버튼을 누르고 까맣게 꺼진 모니터 앞에 홀로 남겨진 학생의 머릿속에는 지금 무엇이 들어 있는가. 그 텅 빈 침묵을 건너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기 위해, 우리는 오랫동안 의심하지 않았던 고정관념 하나를 다시 꺼내어 물어야 한다.

우리는 앞으로 무엇을 ‘기초’라고 부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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