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했는데도 허무한 이유

3줄 직접답변

  • 나는 누구의 기준을 위해 열심히 살고 있는가.
  • 노력은 언제 나를 살리고 언제 소진시키는가.
  • 행복의 리모컨을 다시 가져오려면 무엇을 멈춰야 할까.

차라리 팽이처럼 살걸 그랬습니다 · 2화

부제: 타인의 시선이라는 감옥과 통제감의 상실

"열심히 살았는데, 왜 마음은 텅 빈 것 같죠?"

혹시 이런 생각을 해보신 적 있나요? 남들보다 일찍 출근하고, 싫은 소리 한 번 안 하고, 회식 자리에서는 분위기 메이커 노릇까지 자처했습니다. 주말에는 경조사를 챙기느라 쉬지도 못했죠. 그런데 이상합니다. 몸은 녹초가 되었는데, 마음 한구석에서는 찬바람이 휑하니 붑니다.

우리는 1부에서 우리 자신을 ​'박쥐'​라고 정의했습니다. 낮에는 사회가 원하는 '좋은 사람(새)'인 척 날아다니고, 밤에는 '지친 나(쥐)'로 돌아와 거꾸로 매달려 후회하는 존재들 말입니다.

그런데 더 슬픈 사실이 뭔지 아십니까? 이 박쥐들이 ​게을러서 불행한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오히려 너무 성실해서, 너무 착해서 병들어가고 있습니다. 김영훈 교수의 연구 데이터들은 충격적인 진실을 말해줍니다. 우리가 믿어왔던 '노력'과 '긍정'이 사실은 우리를 배신하고 있었다는 것을요.

1. 행복의 외주화: 내 행복의 리모컨을 남에게 쥐여주다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 박쥐가 되기를 자처합니다. 남들에게 인정받으면 행복해질 거라고 믿으니까요. 그런데 김영훈 교수는 한국인(동양인)의 행복 메커니즘이 서양인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실험으로 증명했습니다.

교수는 대학생들에게 '친구가 몇 명인가?'를 묻는 실험을 했습니다. 서양 학생들은 "내가 친구가 많다"고 느낄 때 행복해했습니다. 남들이 뭐라 하든 내가 만족하면 그만이었습니다. 그런데 한국 학생들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내가 친구가 많다고 생각할 때" 행복도가 올라갔습니다.

이게 무슨 말일까요? 한국인의 행복은 '내 마음'에 있는 게 아니라 ​'남의 눈'​에 있다는 겁니다.
"나는 이 정도면 만족해"라는 내면의 목소리는 힘이 없습니다. 대신 "남들이 보기에 내가 성공한 것처럼 보일까?", "남들이 보기에 내가 행복한 가정처럼 보일까?"가 내 행복을 결정합니다.

이것이 바로 박쥐의 비극입니다. 박쥐는 자신의 날개로 날면서도, 비행 점수는 남에게 매겨달라고 애원합니다. 내 행복의 리모컨을 타인의 손에 쥐여준 셈이죠. 타인이 "좋아요" 버튼을 누르면 웃고, "싫어요"를 누르면 웁니다. 그러니 아무리 열심히 날아다녀도 내 삶의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주인은 리모컨을 쥔 '남들'이니까요.

2. 긍정의 배신: "할 수 있다"는 주문이 독이 될 때

"긍정적으로 생각하세요. 다 잘 될 겁니다."
지칠 때마다 듣는 이 위로가 사실은 당신을 더 깊은 수렁으로 밀어 넣고 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우리는 박쥐 생활이 힘들 때마다 '거짓 긍정'이라는 마약을 투여합니다. "나는 괜찮아. 상사에게 깨졌지만 이건 성장의 밑거름이야. 나는 인싸니까 회식이 즐거워." 하지만 김영훈 교수는 단호하게 말합니다. "현실에 기초하지 않은 긍정적 자아 평가는 우리 인생에 배신을 안겨줄 뿐이다."

실험 결과, 자신의 실력을 냉정하고 현실적으로 파악한 학생이, 막연히 "나는 잘할 거야"라고 믿었던(과대평가한) 학생보다 성적도 높았고 심지어 ​더 행복하고 우울증도 적었습니다​.
왜일까요? '근거 없는 긍정'은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히는 순간 와장창 깨져버리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박쥐 흉내를 내며 "나는 사회성이 좋아, 나는 쿨한 사람이야"라고 최면을 걸 때, 우리 내면은 병들어갑니다. 싫은 걸 좋다고 말하는 것은 긍정이 아니라 ​'자기 기만'​입니다. 억지로 웃는 박쥐의 입꼬리는 경련을 일으키고 있는데, 뇌한테는 "행복하다"고 신호를 보내니 인지부조화가 옵니다.

이것은 노력이 아닙니다. ​'감정 노동'이라는 이름의 자해​입니다. 김영훈 교수는 차라리 "내 실력은 이것밖에 안 돼", "나는 저 사람이 싫어"라고 현실을 직시하는 사람이 훨씬 건강하다고 말합니다. "심각해지면 지는 거다"라는 제 모토처럼,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힘을 빼는 것이 오히려 생존율을 높입니다.

3. 통제감 상실: 우리가 시들어가며 죽어가는 진짜 이유

왜 우리는 이렇게까지 남의 눈치를 보며 착한 박쥐로 살아야 할까요? "안 그러면 도태될까 봐"라는 공포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공포 때문에 순응하며 사는 것이야말로 우리를 가장 빠르게 죽이는 길입니다.

심리학 역사상 가장 유명하고도 섬뜩한 실험 하나를 소개합니다. 1976년, 엘렌 랭어 교수는 요양원 노인들을 두 그룹으로 나눴습니다.
A그룹에게는 ​"화분에 물을 줄지 말지, 어떤 영화를 볼지 당신이 결정하세요"​라며 통제권을 주었습니다.
B그룹에게는 ​"간호사들이 알아서 화분에 물을 주고 다 챙겨줄 겁니다. 그냥 계세요"​라며 통제권을 주지 않았습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18개월 뒤, 스스로 화분을 관리했던 A그룹은 15%만 사망했지만, 모든 것을 케어 받았던(통제권이 없던) B그룹은 무려 ​30%가 사망했습니다​.

인간은 밥만 먹고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내 삶을 내 뜻대로 휘두르고 있다"는 '통제감(Control)'​이 없으면 인간은 시들어 죽습니다. 스트레스의 가장 큰 원인은 일이 많은 게 아니라,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없을 때' 발생합니다.

이 실험을 우리의 '박쥐 인생'에 대입해 봅시다.
부장님이 회식 메뉴를 정하고(내 뜻 아님), 결혼 적령기라며 친척들이 압박하고(내 뜻 아님), 남들 다 하니까 억지로 명품백을 사고(내 뜻 아님)…
우리는 B그룹 노인들처럼 살고 있지 않나요? 겉으로는 편안해 보이고 사회화된 것처럼 보이지만, 내 삶의 핸들을 남에게 넘겨준 채 뒷좌석에 앉아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우울한 진짜 이유입니다. 우리가 착한 사람 콤플렉스에 걸려 남의 비위를 맞추는 동안, 우리의 ​'생존 본능(통제감)'​은 서서히 질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4. 진단: 착한 척하다가 '나'를 잃어버렸다

이제 진단은 명확해졌습니다.
우리가 힘든 이유는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쓸데없는 곳에 너무 많은 노력을 했기 때문'​입니다.

  • 타인의 인정이라는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노력.
  • 싫은 사람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한 가식적인 노력.
  • 불안한 현실을 덮으려는 거짓 긍정의 노력.

이 모든 노력은 김영훈 교수의 말대로 '배신'으로 돌아옵니다. 왜냐하면 이 노력의 방향이 '나'를 향한 게 아니라 '타인'을 향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거꾸로 매달린 박쥐처럼, 세상이 뒤집힌 줄도 모르고 피가 쏠리는 고통을 참아내고 있습니다.

"이타적인 척하는 것은 자해다."
저는 이 말을 꼭 해드리고 싶습니다. 남을 위해(사실은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나를 희생하는 것은, 내 영혼을 갉아먹는 행위입니다.

자,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산속으로 들어가 자연인이 되라는 말이 아닙니다. 직장 때려치우고 제멋대로 살라는 무책임한 조언도 아닙니다. 우리는 여전히 관계 속에 살아야 하고, 월급을 받아야 하니까요.

도망칠 수 없다면,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박쥐처럼 매달려 눈치만 보는 삶을 끝내고, 땅을 딛고 서서 치열하게 돌아가는 것.
타인의 시선과 부딪히면서도 결코 쓰러지지 않는 기술.

저는 이것을 ​'팽이(The Spinning Top)의 기술'​이라고 부릅니다.
이제 슬픈 박쥐의 가면을 벗고, 단단한 팽이가 되는 법을 알아볼 차례입니다. 3부에서 그 구체적인 방법을 공개합니다.

(3부에서 계속)

출발점이 된 책
김영훈, 『차라리 이기적으로 살걸 그랬습니다』, 21세기북스. 이 글은 책에 소개된 사회심리학적 논점에서 출발한 설탕바른위로의 재해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