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줄 직접답변
- 흔들림 없이 살겠다는 목표는 가능한가.
- 내 중심은 무엇으로 확인할 수 있을까.
- 타인의 압박을 내 동력으로 바꿀 수 있을까.
차라리 팽이처럼 살걸 그랬습니다 · 3화
부제: 도망칠 수 없는 관계의 숲에서 중심을 잡는 '성숙한 이기주의'
"지옥은 타인이다(L'enfer, c'est les autres)."
프랑스의 철학자 사르트르가 남긴 이 유명한 말은, 대한민국 직장인의 월요일 아침 출근길 풍경을 가장 정확하게 묘사한 문장일지도 모릅니다.
1부와 2부에서 우리는 확인했습니다. 우리는 남들의 시선이 두려워 싫은 내색도 못 하고(박쥐), 남들에게 행복해 보이기 위해 거짓 긍정으로 자신을 소진(노력의 배신)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김영훈 교수의 진단대로라면,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목매는 삶은 우리를 필연적으로 불행하게 만듭니다.
그렇다면 이제 결론은 하나로 모이는 듯합니다.
"다 끊어내라. 이기적으로 살아라. 남의 시선 따위 신경 끄고 마이웨이를 가라!"
서점가의 수많은 자기계발서들이 외치는 구호입니다. 듣기만 해도 속이 시원합니다. 당장이라도 사직서를 던지고, 시댁이나 처가와의 인연을 끊고, 진상 친구들을 차단하고 산속으로 들어가 '자연인'이 되고 싶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심각해지면 지는 거다'라는 우리의 모토를 다시 떠올려봅시다. 현실적으로 그게 가능합니까? 우리는 산속의 도인이 아닙니다. 월급을 받아야 대출금을 갚고, 싫은 상사 비위를 맞춰야 승진을 하고, 주말에는 경조사를 챙겨야 사회적 평판이 유지되는, 지극히 현실적인 '관계의 동물'입니다.
완벽한 단절은 고립이자 사회적 죽음입니다. 도망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박쥐처럼 매달려 있자니 머리에 피가 쏠려 죽을 것 같습니다. 이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제3의 길은 없는 걸까요?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팽이(The Spinning Top)의 기술'이라고 부릅니다.
1. 채찍이 없으면 팽이는 돌지 않는다
어릴 적 팽이치기를 해보신 분들은 아실 겁니다. 팽이가 힘차게 돌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합니까? 바로 '채찍'입니다. 채찍으로 때려주지 않으면 팽이는 몇 번 돌다가 비틀거리며 쓰러지고 맙니다. 팽이에게 외부의 타격은 아픔이 아니라 '회전의 동력'입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김영훈 교수는 책에서 "인간은 타인의 시선 때문에 불행하다"고 했지만, 역설적으로 "타인의 자극이 없으면 인간은 성장하지 않는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 상사의 잔소리(채찍)가 없었다면 우리가 그토록 치열하게 보고서를 수정했을까요?
- 라이벌의 승진(채찍)이 없었다면 우리가 새벽에 일어나 영어 학원을 끊었을까요?
- "살 좀 쪘네?"라는 친구의 무례한 한마디(채찍)가 없었다면 우리가 헬스장 등록을 했을까요?
우리를 힘들게 하는 그 모든 외부의 압박, 타인의 시선, 사회적 요구… 이것들을 '나를 괴롭히는 고문 도구'로 인식하면 우리는 상처받은 박쥐가 됩니다. 하지만 이것들을 '나를 돌게 만드는 연료'로 인식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나를 화나게 하는 김 부장님은 오늘 내게 강력한 '회전력'을 선물한 고마운(?) 분입니다. 시어머니의 잔소리는 나를 정신 차리게 하는 타격감 있는 채찍질입니다. 피할 수 없다면, 그 힘을 이용해 돌아버리는 겁니다. (물론 '돌아버린다'는 게 미친다는 뜻은 아니지만, 가끔은 미친 척하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2. 흔들리는 것은 당연하다, 중요한 건 '중심축'이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전제가 있습니다. 채찍을 맞는다고 모든 나무토막이 팽이가 되는 건 아닙니다. 중심이 없는 나무토막을 때리면 그냥 날아가 버리거나 부서집니다. 팽이가 채찍을 맞고도 튕겨 나가지 않고 제자리에서 우아하게 도는 이유는 단 하나, 단단한 '중심축(Center)'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중심축이 바로 제가 제안하는 '성숙한 이기주의'의 핵심입니다.
김영훈 교수는 <행복의 조건> 실험에서 서양인과 동양인의 결정적 차이를 발견했습니다.
서양인은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내적 기준)"가 행복의 기준인 반면, 한국인은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외적 기준)"가 행복의 기준이었습니다. 즉, 한국인은 중심축이 내 안에 있는 게 아니라 밖에 있습니다. 그러니 채찍(타인의 말)이 날아오면 팽이처럼 도는 게 아니라, 박쥐처럼 휘청거리고 떨어지는 것입니다.
'성숙한 이기주의'란, 외부의 힘으로 돌더라도 그 회전의 목적과 중심은 철저히 '나'에게 두는 태도입니다.
- 상사가 일을 시켜서 야근을 합니다(외부 자극).
- 박쥐: "아, 김 부장 때문에 내 인생 망했어. 저 인간한테 잘 보여야 하는데…" (중심축이 상사에게 있음 → 고통)
- 팽이: "오케이, 이 프로젝트를 끝내면 내 포트폴리오에 한 줄이 더 생긴다. 김 부장은 나를 훈련시키는 트레이너일 뿐이다." (중심축이 나의 커리어에 있음 → 성장)
- 시댁/처가에 가서 설거지를 합니다(외부 자극).
- 박쥐: "남들은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는데 나는 이게 뭐야. 밉보이면 안 되니까 해야지." (중심축이 시댁의 평가에 있음 → 억울함)
- 팽이: "빠르게 해치우고 집에 가서 맥주 한잔해야지. 내가 움직여서 잡음을 없애는 게 나의 평화에 이득이다." (중심축이 나의 평화에 있음 → 효율)
행동은 똑같습니다. 야근하고, 설거지합니다. 하지만 '누구를 위해서', '누구의 기준(좌표)으로' 하느냐에 따라 그것은 노동이 되기도 하고, 팽이의 역동적인 회전이 되기도 합니다.
3. 통제감 회복: 내가 돌기로 '결정'했다
2부에서 언급했던 앨런 랭어 교수의 '요양원 화분 실험'을 기억하십니까? 자신이 물을 줄지 말지 결정했던 노인들만 오래 살았습니다. 인간에게 가장 치명적인 독은 '일의 고됨'이 아니라 '통제감 상실'입니다.
팽이 이론의 핵심은 이 통제감(Control)의 회복입니다.
남이 시켜서 억지로 도는 게 아닙니다. "그래, 이 상황에서는 도는 게 나한테 이득이야"라고 내가 '선택'하는 것입니다.
김영훈 교수는 보상(칭찬, 돈)이 주어지면 오히려 내적 동기가 떨어진다고 경고했습니다. "돈 때문에 한다", "칭찬받으려고 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일은 지겨운 의무가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팽이는 다릅니다. 팽이는 보상을 바라고 도는 게 아니라, 도는 것 자체가 자신의 존재 방식(Being)입니다.
"상사가 지시해서"가 아니라 "내가 이 조직에서 살아남기로 결정했으니까" 하는 것입니다. "아내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내가 가정의 평화를 지키기로 선택했으니까" 하는 것입니다. 주어를 '그들'에서 '나'로 바꾸십시오. 그 순간, 지겨운 의무는 주체적인 전술로 바뀝니다.
4. 뻔뻔해져라, 심각해지면 쓰러진다
팽이가 돌 때를 자세히 보십시오. 가만히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엄청난 속도로 돌고 있습니다. 그리고 살짝 건드리면 툭 하고 튕겨냅니다. 이것이 바로 '외유내강'의 자세이자, '뻔뻔함의 미학'입니다.
김영훈 교수는 한국 사회가 '회피 동기(실패하지 않으려는 마음)'로 가득 차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욕먹으면 안 돼", "실수하면 끝장이야"라는 공포가 우리를 굳게 만듭니다.
하지만 팽이는 말합니다. "넘어지면 다시 감으면 그만이야."
성숙한 이기주의자는 약간의 뻔뻔함을 필수 장착해야 합니다.
남들이 "너 요즘 좀 변했다?", "이기적이다"라고 수군대면 기뻐하십시오. 그것은 당신이 지금 힘차게 돌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당신의 회전력이 강해져서, 함부로 간섭하려던 그들의 손이 튕겨 나간 것입니다.
심각해지지 마십시오. 우리가 돌다가 비틀거리는 건,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중심을 잡으려고 애쓰는 과정일 뿐입니다. 비틀거림조차 춤사위로 만들어버리는 것, 그것이 팽이의 여유입니다.
5. 당신의 좌표는 어디입니까?
이제 우리는 박쥐의 동굴에서 나와야 합니다. 거꾸로 매달려 세상을 보느라 피 쏠리는 고통을 감수할 필요가 없습니다.
당신은 어디에 서 있습니까? 그리고 어디에 중심축을 꽂으시겠습니까?
그 자리가 비록 화려한 무대 중앙이 아니라 구석진 바닥이라도 상관없습니다. 당신이 당신의 욕망과 기준에 굳건히 발을 딛고 서 있다면, 그곳이 바로 우주의 중심입니다.
하지만 팽이로 살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기술이 필요합니다. 마음만 먹는다고 중심이 잡히지는 않으니까요. 무작정 "더 열심히 돌라(To-Do)"고 강요하는 세상에서, 어떻게 내 중심을 지킬 수 있을까요?
그 비결은 무엇을 '할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데 있습니다. 4부에서는 당신의 에너지를 갉아먹는 가짜 노력들을 쳐내고, 진짜 중심을 잡게 해주는 <Not-To-Do List> 작성법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이제, 쓸데없는 짐을 버릴 시간입니다.
(4부에서 계속)
출발점이 된 책
김영훈, 『차라리 이기적으로 살걸 그랬습니다』, 21세기북스. 이 글은 책에 소개된 사회심리학적 논점에서 출발한 설탕바른위로의 재해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