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줄 직접답변
- 모두가 원한다는 일은 정말 모두가 원하는 일일까.
- 착함은 언제 나를 지우는 기술이 되는가.
- 눈치를 보지 않고도 관계 안에 남을 수 있을까.
차라리 팽이처럼 살걸 그랬습니다 · 1화
부제: 집단적 무지의 숲에서 길을 잃은 당신에게
"이번 주말에 결혼식이 세 건이야. 미치겠네."
금요일 오후가 되면 대한민국 직장인들의 단톡방에는 곡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황금 같은 주말, 꽉 막힌 도로를 뚫고 가서,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는 직장 동료의 사촌이나 거래처 대리의 결혼식에 참석해야 하니까요. 식장에 도착해서는 어떻습니까? 입구에서 봉투를 내밀며 '눈도장'을 찍습니다. "저 왔습니다. 저 사회성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는 뷔페 식당으로 직행하여 허겁지겁 국수를 말아 먹고 다시 차를 돌립니다.
이 기이한 행렬을 두고 김영훈 교수는 그의 저서에서 뼈 때리는 분석을 내놓습니다. 우리가 낸 축의금은 사실 축하의 의미보다는 '체면 유지비'이자 '관계의 벌금'에 가깝다고 말이죠.
계산기를 두들겨 볼까요? 지난 10년간 당신이 300번의 결혼식에 가서 10만 원씩 냈다고 칩시다. 3,000만 원입니다. 당신의 결혼식에 그 300명이 다 와서 똑같이 10만 원을 냈다고 쳐도, 식대와 대관료를 빼면 당신은 정확히 낸 돈만큼 손해를 봅니다. 경제적으로는 마이너스고, 시간적으로는 재앙입니다.
그런데 더 웃긴 건 뭔지 아십니까? 이 짓을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신랑 신부도 모르는 하객들 앞에서 웃느라 입에 경련이 일고, 하객은 주말을 반납해서 짜증이 납니다. 모두가 싫어하는데, 모두가 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우리는 왜 이러는 걸까요?
저는 이 슬프고도 기이한 21세기 현대인의 자화상을 '박쥐'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1. 아무도 원하지 않는데 모두가 달리는 이유
심리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집단적 무지(Pluralistic Ignorance)'라고 부릅니다. 쉽게 말해, "나만 싫어하고 남들은 다 좋아하는 줄 아는 착각"입니다.
김영훈 교수는 재미있는 원숭이 실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우리 안에 원숭이 다섯 마리가 있고 사다리 위에 바나나가 있습니다. 한 원숭이가 바나나를 집으려 하면 연구자가 모든 원숭이에게 찬물을 끼얹습니다. 몇 번 당하고 나면, 원숭이들은 바나나를 집으려는 녀석을 집단 구타하기 시작합니다. 찬물이 무서우니까요.
그런데 여기서 찬물을 경험한 원숭이들을 한 마리씩 새로운 원숭이로 교체합니다. 나중에는 우리 안에 찬물을 맞은 적이 없는 원숭이들만 남게 됩니다. 하지만 여전히 아무도 바나나를 건드리지 않습니다. 왜 먹으면 안 되는지도 모르면서, 남들이 안 먹으니까, 먹으면 맞을까 봐, 그냥 따르는 겁니다.
우리의 회식 자리도 이 원숭이 우리와 똑같습니다. 부장님은 "다들 단합을 원하지?"라며 삼겹살집으로 데려갑니다. 속으로는 '집에 가서 넷플릭스나 보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겉으로는 "역시 회식은 삼겹살이죠!"라며 건배사를 외칩니다.
부장님은 직원들이 좋아한다고 착각하고, 옆자리 김 대리가 웃고 있으니 그도 이 자리를 즐긴다고 착각합니다. 김 대리 역시 당신이 웃고 있으니 당신은 회식을 좋아한다고 착각합니다. 결국 아무도 원하지 않는 회식이, 모두의 '연기' 덕분에 영원히 지속됩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바보로 만들고 있는 셈입니다.
2. 낮에는 새, 밤에는 쥐: 박쥐의 비애
이솝 우화에 나오는 박쥐를 기억하시나요? 새와 짐승의 전쟁터에서 이쪽에도 붙었다 저쪽에도 붙었다 하며 눈치를 보던 그 기회주의자 말입니다. 하지만 제가 말하는 박쥐는 조금 다릅니다. 비열해서가 아니라, 너무 겁이 많고 착해서 슬픈 짐승입니다.
우리는 낮에는 화려한 '새'의 탈을 씁니다. 직장에서는 유능한 대리, 친구들 사이에서는 쿨한 친구, 부모님께는 효성스러운 자식인 척 날아다닙니다. 싫어도 웃고, 힘들어도 괜찮은 척합니다. 김영훈 교수의 말마따나 우리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동기"가 너무나 강하기 때문입니다. 남들에게 "사회성 없다", "이기적이다"라는 소리를 듣는 것은 죽기보다 싫으니까요.
하지만 밤이 되어 혼자 방에 남으면, 우리는 초라한 '쥐'로 돌아옵니다. 날개를 접고 거꾸로 매달려 생각합니다.
"아, 아까 그 말은 하지 말걸."
"나만 호구 잡힌 거 아닌가?"
"저 사람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이불을 뻥뻥 차며 후회하지만, 다음 날 아침이 되면 다시 새의 날개를 달고 현관문을 나섭니다. 이쪽 세계(나의 욕망)와 저쪽 세계(타인의 시선) 그 어디에도 온전히 발붙이지 못한 채, 경계선에 위태롭게 매달려 눈치만 보는 삶. 이것이 바로 우리가 겪는 '박쥐의 비극'입니다.
3. 우리는 '전족'을 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천 년 동안 여자의 발을 묶어 기형으로 만드는 '전족'이 유행했습니다. 뼈를 부러뜨리는 고통을 감수하면서까지 전족을 했던 이유는 단 하나, "남들이 다 하니까"였습니다. 전족을 안 하면 시집을 못 가고, 천한 취급을 받았으니까요. 그 당시 엄마들은 딸을 사랑해서, 딸이 무시당하지 않게 하려고 울면서 발을 묶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어떤가요? 발은 묶지 않지만, 마음을 묶고 있습니다.
"좋은 대학 못 가면 사람 취급 못 받아."
"남들 다 하는 결혼, 너만 안 하면 하자 있는 줄 알아."
"이 나이쯤 되면 차는 있어야 무시 안 당해."
이런 말들은 현대판 전족입니다. 김영훈 교수는 우리가 '회피 동기(실패하지 않으려는 마음)'에 지배당하고 있다고 진단합니다. 성공해서 행복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남들만큼은 살아야 욕을 안 먹으니까" 아등바등 살아갑니다.
그 결과 우리는 늘 피곤합니다. 박쥐처럼 거꾸로 매달려 세상을 보느라 머리에 피가 쏠립니다. 타인의 기준에 맞추느라 정작 내가 뭘 좋아하는지, 내가 누구인지는 잊어버렸습니다. 김영훈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한국인은 "나는 행복하다"고 느낄 때조차 "남들이 보기에 내가 행복해 보일까?"를 검열한다고 합니다.
내 행복조차 남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삶, 이거 너무 비참하지 않습니까?
4. 진단: 당신은 이기적인 게 아니라, 통제감을 잃은 것이다
혹시 지금 "내가 너무 예민한가?", "그냥 남들처럼 둥글게 살면 되는데 내 성격이 문제인가?"라고 자책하고 계신가요?
아닙니다. 당신의 고통은 성격 문제가 아니라 '위치'의 문제입니다.
심리학 실험 결과, 요양원의 노인들에게 화분에 물을 줄 권리(통제감)를 주었느냐, 아니면 간호사가 알아서 다 해줬느냐(통제감 상실)에 따라 사망률이 두 배나 차이가 났습니다. 인간은 내 삶을 내 마음대로 조종할 수 없을 때, 즉 '통제감'을 잃었을 때 시들어 죽습니다.
우리가 박쥐처럼 사는 게 힘든 이유는, 내 날개로 날고 싶을 때 날고, 쉬고 싶을 때 쉬는 게 아니라, 남이 박수 칠 때 날아야 하고 남이 멈추라고 할 때 멈춰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착한 사람이 되려다, 나를 죽이고 있습니다.
자, 이제 진단서는 나왔습니다.
우리는 집단적 무지의 숲에서, 타인의 시선이라는 나무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겁쟁이 박쥐들입니다. 이 숲을 빠져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냥 숲을 불태워버릴까요? 아니면 나 혼자 동굴로 숨어버릴까요?
김영훈 교수의 책은 "타인의 시선을 무시하라"고 조언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직장에서, 가족 안에서 타인의 시선을 완전히 무시하고 살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산속 자연인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저는 조금 다른 처방을 내리려 합니다.
도망칠 수 없다면, 무시할 수 없다면, 우리는 박쥐가 아니라 '이것'이 되어야 합니다.
타인의 시선과 부딪히면서도 쓰러지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동력 삼아 우아하게 돌아가는 기술.
다음 장에서 소개할 '팽이의 기술'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제 거꾸로 매달린 세상에서 내려와, 땅을 딛고 설 시간입니다.
출발점이 된 책
김영훈, 『차라리 이기적으로 살걸 그랬습니다』, 21세기북스. 이 글은 책에 소개된 사회심리학적 논점에서 출발한 설탕바른위로의 재해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