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없는 것과 친구 무리에서 나만 빠지는 것은 왜 다른가
3줄 직접답변
- 친구가 없는 상태와 친밀한 소집단에서 고립되는 상태는 연구에서도 구분된다.
- 이미 속했던 집단에서 자신만 빠지는 경험은 친구뿐 아니라 소속·재미·일상의 상실로 느껴질 수 있다.
- 관계는 자신의 행동이 결과에 관여한다고 느끼기 쉬워 ‘내가 뭘 잘못했나’라는 자기귀인으로 이어질 수 있다.
친구 없음과 ‘격리’는 같은가
서너 명이 늘 함께 다닌다.
등교해서 만나고, 쉬는 시간이 되면 같이 움직인다. 화장실도 함께 간다. 급식을 먹으러 갈 때도 자연스럽게 붙는다. 교실 안에서는 몇 마디만 해도 서로 무슨 뜻인지 안다. 수업과 수업 사이의 짧은 시간이 이 아이들에게는 꽤 큰 생활이다.
그러다 어느 날 한 명만 빠진다.
친구들이 전학을 간 것도 아니다. 싸우고 내가 먼저 떠난 것도 아닐 수 있다. 어제까지 같이 다니던 아이들은 오늘도 같은 교실에 있다. 쉬는 시간이 되면 여전히 함께 나간다.
달라진 것은 하나다.
내가 그 안에 없다.
이 상태를 단순히 “친구가 없다”고 하면 중요한 것이 빠진다. 처음부터 혼자였던 것과 얼마 전까지 내 자리였던 곳에서 나만 빠지는 것은 같은 경험이 아니다. 나는 그래서 이것을 이탈보다 격리에 가깝다고 본다.
나간 것이 아니라 남겨진 것이다. 집단은 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계속 눈앞에 있다.
연구는 friendlessness와 clique isolation을 구분한다
청소년의 또래관계를 연구하는 학문에서도 친구가 없는 상태와 친밀한 소집단에 속하지 못하는 상태를 구분한다. 11세에서 14세까지 청소년 310명을 추적한 연구에서는 friendlessness, peer rejection, clique isolation을 따로 다뤘다. 초기 우울 수준과 또래거절, 친구 없음 등을 고려한 뒤에도 11~13세 동안 소집단에서 고립될 가능성이 높았던 아이들은 14세에 우울증상이 더 증가했다. 그 연결을 설명한 중요한 중간변수는 외로움이었다.
이 연구가 내가 말하는 장면을 그대로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연구의 clique isolation은 친밀 소집단에 속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은 그보다 조금 더 좁다. 이미 속해 있던 소집단의 생활은 그대로 계속되는데 자신의 참여만 사라지는 경험이다.
아이는 친구 말고 무엇을 잃는가
그래서 여기에는 고립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상실이 있다.
왜 이 상실이 단순히 친구 몇 명을 잃는 것보다 크게 느껴지는지를 보려면, 그 집단이 학교생활에서 어떤 기능을 맡고 있었는지 봐야 한다.
무엇을 잃었을까. 친구 한두 명만 잃었다고 하기 어렵다. 쉬는 시간과 같이 움직이던 동선, 별 뜻 없이 던지던 말, 자기들만 알아듣던 내부의 언어, 누군가를 기다리고 누군가가 나를 기다릴 것이라는 예상까지 흔들린다.
무엇보다 학교의 재미가 달라진다.
학교에서 공식적으로 주어지는 것은 대개 수업과 과제와 규칙과 평가다. 물론 학교마다, 교사마다 다르고 이것이 학교생활의 전부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많은 학생에게 쉬는 시간과 친구관계는 학교가 공식적으로 주지 않는 재미와 자율성을 만드는 공간이다.
그 관계가 단순한 친분을 넘어 생활단위가 될 수 있는 이유다.
친밀한 또래집단 자체를 문제라고 볼 이유도 없다. 아이들은 그 안에서 웃고 떠들고 자기편을 만들며 학교를 견딘다. 견딤과 재미는 반대가 아니다. 재미가 있으니 버티고, 같이 버티는 과정에서 다시 재미가 생긴다.
그래서 관계가 무너질 때 잃는 것도 커진다.
이것을 어른이 구조로 분석하면 “소속감의 상실”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왜 ‘내가 뭘 잘못했나’가 되는가
하지만 당사자에게 처음부터 그런 말로 오지는 않는다. 속상하고, 이유를 모르겠고, 답답하고, 학교가 재미없고, 슬프다. 그러다 한 문장으로 들어간다.
내가 뭘 잘못했나.
여기에서 또래관계는 다른 스트레스와 조금 달라진다.
아이에게 경쟁은 큰 부담일 수 있다. 부모의 기대도 숨 막힐 수 있다. 사회가 끊임없이 비교하고 평가하는 것도 힘들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대개 내가 당장 바꾸기 어렵다.
시험제도를 학생 한 명이 바꿀 수 없다. 부모의 욕망도 아이가 마음먹는다고 없어지지 않는다. 사회의 경쟁도 마찬가지다. 힘들더라도 그것은 비교적 쉽게 “나 밖에 있는 조건”으로 볼 수 있다.
관계는 다르다.
관계는 내가 관여한다고 느낀다.
내가 말을 잘못했나. 그때 왜 그렇게 했지. 먼저 사과했어야 하나. 내가 재미없는 사람인가. 너무 들이댔나, 아니면 너무 무심했나.
실제로 관계는 둘 이상이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한 사람이 통제할 수 없다. 그런데도 자신의 행동이 결과에 영향을 준다고 느끼는 영역이기 때문에 관계가 깨지면 이유를 자기 안에서 찾기 쉽다.
그래서 또래관계의 충격은 단순한 외부 스트레스가 아니라 자기평가로 들어올 수 있다. 나는 바로 이 점 때문에 또래관계를 청소년 마음문제의 중요한 원인축으로 본다. 다른 원인과 영향의 크기를 숫자로 순위화할 근거는 없지만, 관계가 학생의 자기해석 안으로 직접 들어오는 경로에는 근거가 있다.
자기비난과 마음문제의 연결
이 연구는 소집단 격리 자체를 다룬 것은 아니다. 다만 관계에서 벌어진 일을 자기 행동의 문제로 돌리는 해석이 마음문제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보여주는 주변근거는 있다.
한국 청소년과 미국 청소년의 또래피해 귀인을 비교한 연구에서도 이 지점이 눈에 띈다. 한국 청소년에게서는 “내가 한 행동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행동적 자기비난이 우울, 사회불안, 낮은 자기존중감과 각각 연결됐다.
누군가와 멀어졌다고 모두 우울해지는 것은 아니며, 반대로 우울한 학생이 관계에서 더 어려움을 겪는 경로도 있을 수 있다. 관계와 마음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그럼에도 친밀 소집단에서의 고립이 이후 우울증상과 연결되고 그 사이에 외로움이 놓였다는 종단연구는 이 생활장면을 가볍게 볼 수 없게 한다.
나는 여기서 특히 “내가 뭘 잘못했나”라는 문장을 중요하게 본다.
그 순간 아이에게 문제는 친구만이 아니다.
자기 자신이 문제의 후보가 된다.
감정을 이해하면 현실도 바뀌나
어른이 “너는 상실감을 느끼는 거야”, “외로울 수 있어”, “그건 네 마음이 이상한 게 아니야”라고 감정의 이름을 알려줄 수 있다. 이런 말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상담과 치료가 필요한 상태라면 전문적 도움은 더 중요하다.
그러나 다음 쉬는 시간이 오면 현실은 다시 온다.
친구들은 여전히 같이 나간다.
나는 여전히 그 자리에 남는다.
감정을 이해했다고 관계가 바뀌지는 않는다.
마음의 튼튼함은 해결책보다 완충재다
그래서 마음의 강함도 정확한 위치를 찾아야 한다.
나는 마음이 튼튼해지는 데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실패를 겪었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는 경험. 한 번 무너졌지만 다른 재미가 생겼고, 다른 사람을 만났고, 다시 움직일 수 있었다는 경험은 다음 실패를 견디는 힘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조차 지금 벌어진 또래관계 문제의 해결책은 아니다.
마음이 튼튼하다고 나를 다시 그 집단에 넣어주는 것은 아니다.
달라질 수 있는 것은 그 사건이 삶 전체의 끝이 되느냐, 아니면 아프지만 지나갈 수 있는 한 사건이 되느냐다.
그래서 마음의 강함은 해결책보다 완충재에 가깝다.
후속 가설: 관계를 다시 여는 외부 매개
여기서 본론과 완전히 같은 문제는 아니지만, 이 구조를 따라가며 성별 차이에 관한 하나의 후속 가설도 남는다. 여학생의 높은 스트레스와 우울 보고를 보며 이런 질문을 해볼 수 있다. 평균적으로 남학생의 친밀관계에서는 게임·운동·팀활동 같은 관계 밖의 공동대상이 접촉의 이유가 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클 수 있다. 꼭 친해서가 아니라 재미있어서, 이기고 싶어서, 같은 팀이어서 만나는 것이다.
반대로 관계 자체가 결속의 중요한 매개인 경우에는 관계가 끊길 때 접촉의 이유까지 함께 사라질 수 있다. 핵심은 “여학생이 더 약하다”가 아니다. 같은 clique isolation이 여학생에게 더 큰 우울을 만든다는 직접 근거도 현재 없다. 내가 남기는 질문은 하나다. 관계가 깨진 뒤 다른 관계로 들어가게 만드는 외부의 이유가 얼마나 남아 있는가. 게임·운동·공동활동은 관계 자체가 목적이 아니어도 다른 사람과 만날 작은 이익동기가 될 수 있다. 아직은 가설이다.
하지만 이 가설은 다음 질문으로 이어진다.
한 학생의 학교생활이 친밀한 소집단 하나에 너무 많이 걸려 있다면, 학교는 그 관계를 대신 해결하지 않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친구를 만들어줄 수는 없다.
누구와 친해지라고 명령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적어도 학생이 다른 사람과 만나고, 같이 무엇인가를 하고, 또 다른 관계가 생길 수 있는 이유를 학교 안에 더 많이 만들 수는 없을까.
관계 하나가 깨졌을 때 학교생활 전체가 함께 사라지지 않도록 말이다.
출처 및 근거
- Witvliet et al. (2010), Early Adolescent Depressive Symptoms: Prediction from Clique Isolation, Loneliness, and Perceived Social Acceptance, Journal of Abnormal Child Psychology, DOI 10.1007/s10802-010-9426-x.
- 11~14세 310명 종단 추적.
- 초기 우울, peer rejection, friendlessness를 고려한 뒤에도 지속적 clique isolation이 이후 우울증상 증가와 연결.
- loneliness가 매개.
- clique isolation→우울 연결에서 성차 없음.
- Yang, McDonald & Seo (2022), Attributions about Peer Victimization in US and Korean Adolescents and Associations with Internalizing Problems, PMID 35523925.
- 한국 청소년에서 behavioral self-blame이 depression, social anxiety, self-worth와 유의한 관련.
- 성별 관계 매개에 관한 논의는 평균적 연구경향과 SOURCE의 가설을 결합한 해석이며, ‘여학생의 clique isolation 효과가 더 크다’는 결론은 사용하지 않는다.
※ ‘격리’, ‘생활세계의 상실’은 이번 SOURCE의 작업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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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Q
친구가 없는 것과 소집단에서 빠지는 것은 같은가요?
같다고 보기 어렵다. 연구에서도 friendlessness와 clique isolation을 구분한다. 특히 이미 속했던 생활집단에서 자신만 빠지는 경험에는 기존 소속의 상실이 함께 들어갈 수 있다.
또래관계가 청소년 우울의 가장 큰 원인인가요?
그렇게 순위화할 근거는 없다. 이 글은 여러 원인 가운데 또래관계가 청소년 생활에서 비중이 크고 자기귀인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을 중요한 원인축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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