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또래관계망을 넓히는 수업은 가능한가

학교에서 또래관계망을 넓히는 수업은 가능한가

3줄 직접답변

  • 학생들을 같은 모둠에 앉히는 것만으로 관계망이 넓어지지는 않는다.
  • 구조화된 협동학습은 실제 친구 네트워크와 또래관계에 변화를 줄 수 있다는 연구가 있다.
  • 이 글은 그 근거 위에 다양한 조편성, 교사의 활동 내부 참여, 유의미한 집단적 즐거움을 결합한 예방적 관계환경을 제안한다.

모둠활동이 왜 관계망을 넓히지 못할 수 있나

“오늘은 모둠활동을 하겠습니다. 너희끼리 조를 만들어보세요.”

학생들이 움직인다.

친한 아이들이 먼저 서로를 찾는다. 평소 같이 다니던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같은 조에 들어간다. 어느 쪽에도 먼저 들어가지 못한 학생은 잠시 주변을 본다. 결국 남은 사람끼리 모이거나 교사가 빈자리에 넣는다.

조별활동은 했지만 관계는 거의 그대로다.

경우에 따라서는 오히려 누가 누구와 친하고 누가 남는지가 더 선명해질 수도 있다.

그래서 학생들의 관계망을 넓히자는 말을 단순히 “모둠수업을 늘리자”로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친구관계는 학생의 사적 영역이다. 학교가 누구와 친구가 되어야 한다고 정할 수는 없고, 소집단을 없앨 필요도 없다. 친밀한 관계는 오히려 학교생활을 즐겁고 견딜 만하게 만드는 중요한 자산이다.

문제는 친밀집단이 아니라 관계의 독점성이다

문제는 한 관계가 너무 많은 것을 독점할 때다.

학교에서 내가 웃을 사람도 그 친구들뿐이고, 쉬는 시간을 같이 보낼 사람도 그 친구들뿐이고, 내 이야기를 아는 사람도 그 친구들뿐이라면 그 관계가 무너졌을 때 잃는 것이 너무 많아진다.

그렇다면 예방의 목표는 친밀집단을 약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관계가 생길 수 있는 경로를 늘리는 것이다.

여기서 학교가 할 수 있는 일이 생긴다.

관계에는 왜 ‘같이 할 이유’가 필요한가

학생에게 “친해져라”고 말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관계에는 이유가 필요하다.

같이 풀어야 할 문제가 있어서 말할 수 있다. 같은 편이어서 움직일 수 있다. 역할이 달라 서로의 도움이 필요할 수 있다. 경쟁을 하다가 웃을 수 있고, 뜻밖에 잘 맞는 순간이 생길 수 있다.

처음부터 친구여서 같이 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무엇인가 했기 때문에 서로를 새롭게 보게 되는 경험이다.

협동학습은 실제 친구 네트워크를 바꿀 수 있나

이 가능성이 단순한 희망만은 아니다.

15개 중학교, 학생 1,890명을 대상으로 한 무작위 협동학습 연구에서는 수업구조를 바꾼 학교의 친구 네트워크가 통제학교와 다르게 움직였다. 학생들이 비슷한 소속감 수준의 친구만 선택하는 경향이 약해졌고 네트워크의 위계성이 낮아졌다. 연구진은 구조화된 협동학습이 청소년의 또래 생태를 바꾸고 더 통합적인 친구 네트워크를 만드는 교실 기반 메커니즘이 될 수 있다고 해석했다.

같은 연구 프로젝트의 다른 분석에서는 협동학습이 상호적인 친구관계의 증가를 통해 또래피해 감소와 연결되기도 했다. 별도의 중학교 무작위 연구에서도 구조화된 협동학습은 또래관계감과 정서적 문제, 피해경험 등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보였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을 한데 모았다는 사실이 아니다. 이 연구들이 사용한 것은 carefully structured group-based learning, 즉 교사가 구조를 만드는 활동이다. 여기까지는 연구가 비교적 직접적으로 받쳐준다.

교사참여형 활동이란 무엇인가

이 다음부터는 내가 현장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세우는 가설이다.

교사가 조를 나눠주고 활동지를 던진 뒤 바깥에서 감독하는 정도로는 부족할 수 있다. 내가 말하는 교사참여형 활동에서 교사는 애초에 활동 내부에 있어야 한다. 흐름을 만들며 아이들과 같이 움직이고, 말하지 못하는 학생이나 주변부에 머무는 역할을 보고 조정하며, 특정한 두세 명이 활동을 독점하면 다른 학생이 들어올 통로를 만든다. 다음 활동에서는 조합도 바꾼다.

핵심은 필요할 때 밖에서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경험이 실제로 발생하는 공간 안에 교사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것은 학생의 친구관계를 관리한다는 뜻이 아니다. 누구와 친해질지는 여전히 학생의 몫이다. 교사가 만드는 것은 친구가 아니라 접촉할 이유와 함께할 경험이다.

재미는 왜 활동의 부가요소가 아닌가

그리고 여기에서 한 가지가 더 필요하다.

재미다.

교육에서 재미라는 말을 꺼내면 공부를 가볍게 만들거나 학생의 비위를 맞춘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기 쉽다. 내가 말하는 재미는 다르다.

아이들의 감정에서 유의미한 긍정적 반응을 집단적으로 만들어내는 활동설계다.

같이 웃을 수도 있다. 이기고 싶어서 몰입할 수도 있다. 역할을 맡아 예상보다 잘해냈을 때 기분이 좋아질 수도 있다. 같은 팀이 가까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나서 서로를 보는 눈이 달라질 수도 있다.

핵심은 재미 그 자체보다 여러 학생이 같은 활동 안에서 유의미한 긍정적 감정을 함께 경험하게 만드는 것이다. 조편성을 섞는 것만으로 유대가 생기지는 않는다.

평소 말하지 않던 학생과 같은 책상에 앉혀놓고 지루한 과제를 시킨다면 “안 친한 아이와 지루한 일을 같이 했다”는 경험만 남을 수 있다.

반대로 활동 안에서 유의미한 즐거움이 생기면 상대는 조금 다른 사람이 된다.

그저 같은 반이었던 아이가 같이 이겨본 아이, 같이 웃었던 아이, 내가 막혔을 때 도와준 아이, 뜻밖에 잘하는 것을 본 아이가 된다.

‘친한 애가 아닌 사람’에서 ‘같이 뭔가 해본 사람’으로 바뀌는 것이다.

그 경험이 곧 친구관계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재미가 있으면 관계망이 자동으로 넓어진다는 직접 인과도 아직 없다.

하지만 구조화된 협동활동이 실제 친구 네트워크를 바꾸고 상호적 친구관계를 늘릴 수 있다는 연구는 있다. 그 근거 위에서 나는 다양한 조편성 + 반복되는 공동활동 + 교사의 내부 참여 + 집단적으로 유의미한 즐거움이 결합하면 기존 친밀집단 밖에서도 새로운 유대가 형성되고 관계망이 확대될 여지가 크다고 본다. 앞부분은 연구가 받치고, 이 조합 전체는 아직 실천적 메커니즘 가설이다.

관계망 다원화는 무엇을 예방할 수 있나

여기서 예방의 의미도 달라진다.

교사참여형 활동이 우울증을 치료하거나 친구 갈등을 대신 해결한다는 말이 아니다. 문제가 생기기 전의 환경을 말하는 것이다.

학생 A에게 절친집단 하나만 있었다고 해보자.

그 집단이 학교에서의 재미, 소속, 대화, 이동을 거의 모두 담당한다면 그 관계의 붕괴는 학교생활 전체의 붕괴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A에게 다른 경험이 있었다면 상황은 조금 달라질 수 있다.

수학활동에서 같이 문제를 풀어본 B가 있다.

체육에서 한 팀으로 뛰어본 C가 있다.

학급행사에서 역할을 함께 맡았던 D가 있다.

그리고 자신을 이름과 성적으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같이 무엇인가 해본 교사가 있다.

절친과의 갈등은 여전히 아프다.

그 상실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학교의 관계세계가 동시에 0이 되지는 않을 가능성이 있다.

내가 말하는 관계망의 다원화는 여러 명과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라는 도덕적 요구가 아니다. 하나의 관계가 흔들려도 삶 전체의 관계가 함께 끊어지지 않도록 서로 다른 종류의 접촉과 공동경험이 존재하는 상태다.

학교가 이 환경을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은 중요하다.

부모를 학생이 선택할 수는 없다. 경쟁사회를 교실 하나가 없앨 수도 없다. 사회적 압박 역시 하루아침에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학교가 학생의 사적인 친구관계를 통제해서도 안 된다.

그러나 수업과 활동의 구조는 바꿀 수 있다.

누구와 같이 해볼 것인지, 무엇을 함께 할 것인지, 그 안에서 각자 어떤 역할을 가질 것인지, 한 번으로 끝낼지 반복할지는 교육의 영역이다.

마음교육과 관계환경은 어떻게 함께 갈 수 있나

이것은 마음교육과 반대되는 길도 아니다.

학생이 자기 감정을 이해하고, 힘들 때 도움을 요청하고, 감정을 조절하는 기술을 배우는 것은 도움이 될 수 있다.

다만 그와 동시에 학교가 묻기를 바란다.

그 마음이 매일 살아가는 관계환경에는 무엇이 있는가.

학생에게 마음을 돌보는 법을 알려주는 것과 여러 관계 속에서 실제로 살아볼 수 있게 하는 것은 서로 다른 층의 예방이다. 전자는 아이 내부에 대응할 힘을 만들고, 후자는 한 번의 관계충격이 아이의 세계 전체를 차지하지 않도록 바깥의 경로를 늘린다.

학교의 역할은 친구를 만들어주거나 친구가 되라고 가르치는 데 있지 않다. 대신 이런 일을 할 수 있다.

평소 말해보지 않았던 사람과 함께 움직여볼 이유를 만드는 것.

함께 성공하고 실패해볼 일을 만드는 것.

그리고 그 경험이 ‘또 시키는 일’로 끝나지 않도록, 아이들이 실제로 즐거워할 수 있는 활동을 만드는 것.

누가 누구와 친구가 될지는 그 다음이다.

학교가 친구를 만들어줄 수는 없다. 하지만 친구가 생길 이유는 만들 수 있다.

그 이유가 여러 개일수록, 한 관계가 무너졌을 때 학생의 세계 전체가 같이 무너질 가능성도 줄어들 수 있다.

나는 마음문제의 예방을 그런 곳에서도 찾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출처 및 근거

  • Low, Kornienko & Van Ryzin (2026), Cooperative Learning Intervention Predicts Changes in Patterns of Friendship Networks Related To Peer Belonging and Cross-Group Ties, Journal of Youth and Adolescence, DOI 10.1007/s10964-025-02280-y.
  • 15개 중학교, n=1,890 cluster randomized trial.
  • intervention 학교에서 peer belonging 유사성에 따른 친구선택 경향이 작고, 네트워크가 덜 위계적인 방향.
  • Van Ryzin et al. (2022), Reciprocated Friendship as a Mediator of the Effects of Cooperative Learning on Peer Victimization in Middle School, PMCID PMC9894378.
  • cooperative learning → reciprocated friendship 증가 → victimization 감소 경로.
  • Van Ryzin & Roseth 관련 중학교 협동학습 연구(2019), Cooperative Learning in Middle School: A Means to Improve Peer Relations and Reduce Victimization, Bullying, and Related Outcomes, PMID 30911200.
  • carefully structured group-based learning, peer relatedness 및 정서·피해 관련 결과.
  • 교사참여형 활동의 ‘교사가 활동 내부의 리더/참여자로 존재해야 한다’는 정확한 형태는 SOURCE의 실천적 가설이며 위 연구가 직접 비교검증한 독립변수는 아니다.
  • ‘다양한 조편성 + 교사 내부참여 + 유의미한 즐거움 → 새로운 유대 → 관계망 확대’의 전체 경로 역시 단일 연구의 결과가 아니라, 네트워크 개입 연구와 SOURCE의 교육경험을 연결한 메커니즘 가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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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Q

모둠활동을 많이 하면 친구관계가 좋아지나요?

그 자체로는 보장되지 않는다. 자유 조편성이나 단순 그룹활동은 기존 친밀집단을 그대로 재생산할 수 있다. 연구가 뒷받침하는 것은 구조화된 협동학습이 또래 네트워크에 변화를 줄 수 있다는 점이다.

교사가 학생 친구관계에 개입해야 하나요?

누구와 친구가 될지 정하는 방식의 개입은 아니다. 이 글에서 말하는 교사의 역할은 다양한 학생이 함께 움직이고 긍정적 공동경험을 만들 수 있도록 활동 안에서 관계의 조건을 설계하는 것이다.

재미가 있으면 관계망이 넓어진다는 연구가 있나요?

그 전체 인과가 직접 입증된 것은 아니다. 구조화된 협동활동이 친구 네트워크를 바꿀 수 있다는 연구 위에서, 다양한 조편성·교사 내부참여·유의미한 즐거움이 새로운 유대 형성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실천적 메커니즘 가설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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