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 점수로 아이의 미래를 판단할 수 있을까: 평가의 범위와 자기한정

3줄 직접답변

  • 현재 성적은 학생의 현재 수행을 보여주는 중요한 정보지만 개인의 전체 능력과 미래 가능성을 그대로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 학업성취에는 유전·환경·발달·학교·가정·개인의 선택이 얽혀 있으며 한 점수만으로 이 요소를 분리할 수 없습니다.
  • 핵심은 평가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현재 수행을 평가하는 것과 그 수행으로 사람 전체와 미래를 확정하는 일을 구분하는 것입니다.

현재 성적은 무엇을 말해주나

한 학생이 수학 5등급을 받았다.

이 숫자는 분명한 정보를 준다. 적어도 지금 이 시험에서 이 학생의 수행이 어느 위치에 있었는지를 알려준다. 현재 진학 가능성을 판단할 때도 중요한 자료가 된다.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에게 이 숫자를 무시하라고 말할 수는 없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현재의 한 점은 어떻게 사람 전체로 번역되나

우리는 숫자 하나를 아주 빠르게 문장으로 바꾼다.

수학을 못한다.

공부를 못한다.

머리가 좋지 않다.

좋은 대학은 어렵다.

할 수 있는 일도 많지 않을 것이다.

학생 자신도 그 번역을 배울 수 있다.

“난 공부를 못하니까.”

뒤에 붙는 문장이 점점 늘어난다.

“이건 나랑 안 맞아.”
“나는 이런 건 못해.”
“나는 그냥 이 정도만 하면 돼.”

나는 성적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현재값은 중요하다.

다만 묻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현재의 한 점은 그 사람에 대해 어디까지 말해줄 수 있는가.

왜 현재의 한 점에는 긴 시간이 들어 있나

그 한 점이 왜 사람 전체가 될 수 없는지 보려면, 그 점이 만들어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지금의 성취에는 긴 시간이 들어 있다.

사람마다 정보를 받아들이고 저장하고 인출하는 속도도 다르고, 관심이 붙는 영역도 다르다. 발달의 속도도 같지 않다. 이런 학업성취의 개인차에는 유전적 요인도 관여한다.

환경도 다르다.

부모의 재력, 관심, 교육경험, 양육방식이 다르다. 어떤 학교와 교사를 만났는지, 어떤 또래와 지냈는지, 어떤 수업을 경험했는지, 어릴 때 어떤 활동에 노출되었는지도 다르다.

우연히 한 사람을 만나 자기 강점을 발견했을 수도 있고, 그런 경험을 한 번도 만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개인의 선택도 있다.

같은 환경에서도 누구는 공부하고 누구는 하지 않는다. 어떤 행동을 반복했는지도 현재의 결과를 만든다. 자기 행동의 책임을 모두 환경으로 돌릴 수는 없다.

왜 점수 하나로 원인을 분해할 수 없나

문제는 현재의 점수에 이 요소들이 분리돼 표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5등급은 5등급일 뿐이다.

그 안에 유전이 얼마나 들어갔는지, 가정환경이 얼마나 작용했는지, 교사의 영향이 무엇이었는지, 학생 자신의 선택이 어떤 몫을 했는지 한 숫자만 보고 분해할 수는 없다.

유전의 영향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유전의 영향도 실제로 중요하다. 학업성취의 개인차에 유전적 요인이 상당히 관여한다는 연구가 있다.

그러나 유전율은 한 개인의 점수 중 몇 퍼센트가 유전자로 결정됐다는 뜻이 아니다. 집단 수준의 개인차를 설명하는 통계다.

더구나 유전과 환경은 완전히 분리된 두 상자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부모의 특성은 교육수준이나 소득, 양육환경과 연결되고, 아이의 기질도 주변의 반응을 바꿀 수 있다. 그 반응은 다시 경험이 된다.

여기서 ‘서사’는 무엇을 뜻하나

그래서 여기서 `서사`라는 말을 조금 다르게 사용하고 싶다.

누군가의 사정을 알면 불쌍히 봐주자는 뜻이 아니다.

현재의 한 점을 만든 원인을 우리는 전부 알 수 없다는 뜻에 가깝다.

누가 그 사람을 정확하게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평가와 미래의 확정은 어떻게 다른가

물론 현실에서는 판단해야 한다.

학교는 학생을 평가하고, 대학은 선발하며, 회사는 사람을 뽑는다. 사회는 역할을 배분한다. 현재의 정보를 사용하지 않고 모든 가능성을 무한히 기다릴 수는 없다.

그러므로 결론은 “사람을 평가하면 안 된다”가 아니다.

내가 구분하고 싶은 것은 두 문장이다.

현재의 수행을 평가한다.

그리고,

그 수행으로 사람 전체와 미래를 확정한다.

이 둘은 같은 일이 아니다.

5등급 학생이 지금 수학을 잘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목표를 잡을 때도 현재 수준을 봐야 한다.

그런데 지금 수학을 못한다는 사실에서 바로 “이 학생은 생각하는 능력이 낮다”, “무언가를 생산할 능력도 낮다”, “앞으로 선택할 수 있는 길도 적다”로 넘어가려면 다른 증거가 필요하다.

아직 다른 환경에서의 수행을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선택과 자기한정은 어떻게 다른가

이 지점에서 학생이 자기 미래를 너무 일찍 줄이는 장면이 중요해진다.

“난 공부 못하니까 편의점 알바나 해야지.”

이 문장이 문제인 이유는 편의점에서 일하는 것이 낮은 삶이라서가 아니다.

그 일을 충분히 알고 선택하고, 자기가 원하는 삶과 맞아서 선택하며, 그 결과를 책임진다면 그것은 자기 선택이다.

하지만,

“나는 이것밖에 못해.”

라는 결론 때문에 다른 길을 보기도 전에 그곳으로 밀려간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선택과 자기한정은 다르다.

자기의 가능성을 모두 열어둘 수는 없다. 사람은 결국 무엇인가를 포기하고 선택한다.

그러나 현재의 낮은 평가를 자기 전체의 한계로 받아들여 가능성을 탐색하기도 전에 스스로 닫아버리는 것과, 실제로 여러 경험을 통과한 뒤 자기 한계를 알고 선택하는 것은 다르다.

환경과 도구가 달라지면 수행도 달라질까

이전 글에서 AI를 다룬 이유도 여기에 닿아 있다.

기술이 바뀌면 이전에는 구현하지 못했던 능력이 결과물로 나타날 수 있다. 이것이 누구나 성공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환경과 도구가 달라지면 같은 사람이 보여주는 수행도 달라질 수 있다는 사례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에게 숨겨진 특별한 재능이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찾아도 특별한 강점이 없을 수 있다. 어떤 영역에는 정말 한계가 있을 수 있고, 한 계단을 넘고 나면 더 높은 벽을 만날 수도 있다.

그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그 한계를 실제로 만나보기 전에 현재의 한 점으로 자기 자신을 먼저 포기할 이유도 없다.

교육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그래서 앞서 말한 작은 수행의 반례가 여기서 다시 중요해진다.

나는 교육이 모든 아이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적어도 한 가지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의 성취가 자기 전체의 설명이 되지 않도록 실제 반례 하나를 만들어주는 것.

수학을 못했던 학생이 어느 순간 자기 힘으로 문제를 풀어본다. 질문을 못하던 학생이 어느 날 먼저 묻는다. 자기 생각을 말하지 않던 학생이 “나는 이렇게 생각했는데요”라고 말한다.

그 경험 하나가 인생을 바꾼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

라는 문장을 조금 덜 확신하게 만들 수는 있다.

이 관점은 왜 모든 사회화된 개인에게 필요한가

이 관점은 저성취 학생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에게 필요할 수 있다.

우리는 타인을 너무 쉽게 현재로 판단한다.

직업을 보고, 말투를 보고, 학벌을 보고, 한 번의 실패를 보고, 지금 가진 돈을 보고 그 사람의 과거와 미래까지 거의 다 안다고 느낀다.

나 역시 잘 되지 않는다.

사람을 오래 봐도 모르겠는데 몇 개의 정보만 보고는 이상하게 확신이 생긴다.

결론: 평가가 말해주는 범위를 넘지 않는 태도

그래서 마지막에 남는 것은 평가를 없애자는 말이 아니다.

평가가 말해주는 범위를 넘지 않는 태도다.

현재는 현재다.

중요하고 현실적이며, 때로는 냉정하게 봐야 한다.

그러나 현재가 미래의 판결문은 아니다.

현재의 점수는 현재의 수행을 말해준다.

현재의 직업은 현재의 위치를 말해준다.

현재의 실패는 지금까지의 결과를 말해준다.

그 이상을 말하려면 더 많은 경험과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는 누군가의 현재를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현재만으로 그의 미래까지 다 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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