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줄 직접답변
- 죽음을 두려워하는 마음은 무엇을 지키려는 마음일까.
- 끝이 있다는 사실은 삶을 가볍게 만드는가, 더 진하게 만드는가.
- 오늘을 미루지 않는 태도는 어디서 시작될까.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뗄 수 있는가 · 5화
우리는 지금까지 꽤 먼 길을 함께 걸어왔습니다. '이익과 손실'을 따지는 계산기를 부수고(1부), 성공의 절벽 끝에서 손을 놓았으며(2부), 어린아이처럼 춤을 추고(3부), 기꺼이 타인의 진흙탕 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4부). 이 정도면 이제 '인생의 주인공' 자격증을 따고도 남았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우리에게는 아직 처리하지 못한 가장 거대하고 두려운 '마지막 청구서'가 하나 남아 있습니다. 아무리 당당하게 살던 사람도 이 청구서 앞에서는 무릎을 꿇고 벌벌 떱니다. 내가 쌓아온 모든 이익을 '0'으로 만들어버리는 절대적인 손실, 바로 '죽음'입니다.
강신주 작가는 《무문관》 47칙 '도솔삼관'을 통해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죽음이라는 파산 선고 앞에서 쫄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까?"
오늘은 이 피할 수 없는 소멸 앞에서, 공포에 질린 채 끌려가는 '노예'가 아니라 웃으며 문을 닫고 나가는 '주인'으로 마감하는 법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1. 인생 최악의 손실? 죽음 공포라는 '보험 사기'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보험을 듭니다. 암 보험, 실비 보험, 연금 보험… 왜 그럴까요? 미래에 닥칠지 모르는 '손실'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하고 오래된 보험 상품이 있습니다. 바로 '사후 세계(내세)'라는 상품입니다.
많은 종교는 우리에게 이렇게 속삭입니다.
"죽으면 끝이 아니야. 영혼은 영원해(자산 보존)."
"착하게 살면 천국에 가서 영원한 복락을 누릴 거야(이익의 연장)."
"죄를 지으면 지옥 불에 떨어져(손실의 공포)."
이것은 죽음을 '나'라는 존재가 완전히 사라지는 '전면적 파산'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인간의 두려움을 이용한 마케팅입니다. 우리는 '나'라는 자아가 영원히 지속되기를(이익) 바랍니다. 그래서 죽음을 삶의 끝이 아니라, 다른 세상으로의 '이사' 정도로 생각하고 싶어 합니다. 그래야 덜 억울하니까요.
하지만 《무문관》 35칙 '천녀이혼'이나 47칙 '도솔삼관'의 가르침은 냉정합니다.
"육신이 흩어지면 정신도 흩어진다. 불이 꺼지면 불빛도 사라지는 것이다."
촛불을 생각해 보세요. 초(육체)와 섶(인연)이 만나 불꽃(정신/생명)이 타오릅니다. 초가 다 타서 불이 꺼졌습니다. 자, 그 불꽃은 어디로 갔을까요? 천국으로 갔을까요, 지옥으로 갔을까요? 어디로도 가지 않았습니다. 그저 조건이 다하여 '사라진 것'입니다.
이 명백한 '사라짐(Loss)'을 인정하지 않고 "내 영혼은 어딘가에 보관되어 있을 거야"라고 믿는 것은, 이미 부도난 회사의 주식을 붙들고 대박을 꿈꾸는 것과 같습니다. 이 집착이 죽음을 두려운 것으로 만듭니다.
2. 흩어지는 네 가지 요소 : "빌린 것은 돌려줘야 합니다"
죽음이 두려운 진짜 이유는 '내 것'을 잃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내 몸, 내 가족, 내 재산, 내 기억… 평생을 바쳐 모은 이 자산들이 압류당한다고 생각하니 억울해서 눈을 감을 수가 없는 것이죠.
하지만 불교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그게 원래 네 것이었니?"
《무문관》 47칙에서 도솔 종열 스님은 묻습니다.
"육신을 구성하는 네 가지 요소가 흩어질 때, 그대는 어디로 가는 것인가?"
여기서 네 가지 요소란 지(地, 땅), 수(水, 물), 화(火, 불), 풍(風, 바람)을 말합니다.
뼈와 살은 땅에서 빌려왔고, 피와 체액은 물에서, 체온은 불에서, 호흡은 바람에서 잠시 빌려온 것입니다. 이것들이 인연(조건)에 따라 잠시 뭉쳐서 '나'라는 형상을 이루고 있을 뿐입니다.
죽음은 강탈이나 파산이 아닙니다. 임대 기간이 끝나서 빌린 물건을 원래 주인(자연)에게 반납하는 '정산'의 과정일 뿐입니다.
겨울 내내 꽁꽁 얼어 있던 얼음(나)이 봄이 되어 녹습니다. 얼음이 물이 되어 사라졌다고 해서 슬퍼할 일인가요? 얼음은 죽어서 지옥에 갔나요? 아닙니다. 그저 인연(온도)이 변하여 원래의 모습인 물로 돌아갔을 뿐입니다.
"나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우주라는 거대한 창고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죽음은 '손실'이 아니라,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홀가분한 반납'이 됩니다. 내가 선택해서 반납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더 이상 상실이 아닙니다.
3. 자비를 실천한 자는 죽음이 두렵지 않다 : 촛불의 비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은 여전히 무섭습니다. 허무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사라질 거면 왜 그렇게 아등바등 살았나" 싶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심지어 "박장대소하며 떠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4부에서 이야기했던 '자비(이타)'를 실천한 사람들입니다.
강신주 작가는 이를 '등불'에 비유하여 설명합니다.
자신의 몸(초)을 태워 세상을 밝히는 등불(자비로운 삶)을 생각해 봅시다.
자신만을 위해 산 사람(이기적인 삶)은 초가 타들어가는 것이 아깝습니다. 줄어드는 몸집이 곧 나의 손실이니까요. 그래서 최대한 불꽃을 작게 줄이고 오래 버티려 합니다. 그러다 불이 꺼지면 "아직 덜 살았는데!" 하며 억울해합니다.
반면, 누군가의 어두운 길을 밝히기 위해, 타인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자신의 몸을 활활 태운 사람은 어떨까요? 그는 사는 것 자체가 치열한 노동이고 헌신이었습니다. 자신의 에너지를 다 쏟아부어 세상을 밝혔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불이 꺼지는 순간(죽음)은 공포가 아니라 '달콤한 휴식'입니다.
"아, 이제 할 일을 다 했다. 잘 태웠다."
그는 미련 없이, 후회 없이 눈을 감을 수 있습니다.
죽음이 두려운 것은 아직 '나'를 덜 썼기 때문입니다.
아껴둔 에너지가, 베풀지 못한 사랑이, 챙기지 못한 이기심이 남아 있어서 '재고'가 남은 것입니다. 삶을 남김없이 연소시킨 사람(완전 연소)에게 죽음은 재고 처리가 아니라 '완벽한 마감'입니다.
4. 죽음은 삶의 완성이다 : 지금, 여기의 불꽃
도솔 종열 스님이 "죽을 때 어떻게 할 거냐"고 묻는 이유는, 죽는 기술을 가르치려는 게 아닙니다.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죽으면 어떻게 되지?"(미래의 손실 걱정)
"전생에 내가 뭐였지?"(과거의 이익 탐구)
이런 고민들은 모두 현재를 갉아먹는 좀벌레들입니다. 내일 비가 올까 봐 걱정하느라 오늘의 햇살을 즐기지 못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인생을 낭비하는(손해 보는) 짓입니다.
"삶과 죽음은 둘이 아니다(생사일여, 生死一如)."
이 말은 죽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있다는 뜻입니다. 잘 죽는다는 것은 곧 잘 살았다는 뜻입니다.
마지막 순간에 "좀 더 베풀걸, 좀 더 사랑할걸, 좀 더 내 멋대로 살아볼걸" 하고 후회하지 않으려면, 바로 '지금, 여기'에서 그 일을 해야 합니다.
조주 스님은 "개에게 불성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무(無)!"라고 답했습니다.
이는 "죽은 뒤에 천국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기도 합니다.
"그런 건 없다(신경 쓰지 마라). 그런 망상 할 시간에 밥이나 먹고, 차나 마시고, 옆에 있는 사람 손이나 한 번 더 잡아줘라."
미래의 보상(천국, 극락)을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것은 가장 어리석은 투자입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주인으로 살고, 내가 사랑하며 사는 것. 그것만이 유일하게 남는 장사입니다. 우리가 죽음을 기억해야 하는(Memento Mori) 이유는, 역설적으로 오늘을 가장 뜨겁게 살기 위해서입니다.
5. 당신의 장례식에서 어떤 표정을 지을 건가요?
이제 우리는 계산기를 완전히 덮을 때가 되었습니다.
태어날 때 우리는 빈손으로 왔습니다(초기 자본 0). 살면서 얻은 모든 것은 덤으로 얻은 이익(Plus)이었습니다. 그러니 갈 때 다 놓고 간다고 해서 손해 볼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본전치기만 해도 성공인데, 우리는 사랑도 했고, 맛있는 것도 먹었고, 춤도 췄으니 이미 엄청난 흑자를 본 셈입니다.
마지막 순간, 저승사자(혹은 소멸의 순간)가 당신에게 "이제 갑시다"라고 할 때, 당신은 어떤 표정을 지으시겠습니까?
"잠깐만요, 짐 쌀 시간 좀 주세요"라며 구질구질하게 매달리시겠습니까?
아니면 47칙의 가르침처럼 "아, 잘 놀았다! 이제 푹 쉬러 가자!"라며 박장대소하고 쿨하게 따라나서시겠습니까?
주인공은 무대에서 내려올 때를 압니다. 그리고 그 뒷모습마저 아름답습니다.
당신이 떠난 자리에 슬픔 대신, 당신이 태웠던 뜨거운 열기와 환한 빛의 기억이 남기를 바랍니다. "나는 다 썼다. 그래서 나는 이득을 보았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당신의 죽음은 비극이 아니라 해피엔딩입니다.
오늘의 질문
만약 오늘 밤이 당신의 마지막 밤이라면, 당신은 무엇을 가장 후회할 것 같나요? 그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지금 당장 저질러야 할 일(혹은 해야 할 말)은 무엇인가요?
출발점이 된 책
강신주,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뗄 수 있는가? : 무문관, 나와 마주 서는 48개의 질문』, 동녘, 2014. 이 글은 책과 『무문관』의 화두에서 출발한 설탕바른위로의 재해석이다. 책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