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줄 직접답변
- 우리는 정말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가.
- 가까운 관계일수록 왜 설명이 필요한가.
- 오해를 없애려다 관계를 망치고 있지는 않은가.
차라리 팽이처럼 살걸 그랬습니다 · 5화
부제: 기본적 귀인 오류의 늪에서 빠져나와 ‘건강한 무관심’으로 사랑하는 법
“우리는 너무 이해하려다 서로를 미워하게 되었다.”
우리가 ‘박쥐’처럼 살았던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요? 1부에서 말했듯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였고, 2부에서 확인했듯 타인의 시선을 행복의 척도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4부에서 우리는 드디어 ‘Not-To-Do List’를 통해 불필요한 노력을 쳐내고 나만의 좌표를 찍는 ‘팽이’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아주 현실적인 난관에 부딪힙니다. 내가 팽이처럼 혼자 잘 돌겠다고 선언하는 순간,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발목을 잡습니다. 배우자, 연인, 가족, 오랜 친구들입니다.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우리가 남이야?”, “너 변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이라면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소울메이트’라는 환상적인 단어에 속아, 너와 내가 한 몸처럼 생각하고 느끼기를 강요합니다. 하지만 김영훈 교수의 차가운 진단서(MRI)를 보면, 이 믿음이야말로 관계를 파국으로 몰고 가는 암 덩어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성숙한 이기주의자가 되기 위한 다섯 번째 단계는 ‘이해하려는 노력을 멈추는 것’입니다.
1. 당신은 나를 모른다, 나도 당신을 모른다 (기본적 귀인 오류)
김영훈 교수는 그의 수업에서 아주 흥미로운 ‘상식 게임’을 진행합니다.
청중 중 한 명(질문자)에게 자신이 잘 아는 분야에서 아주 어려운 문제 10개를 내게 하고, 다른 한 명(답변자)에게 맞히게 합니다. 당연히 답변자는 거의 맞히지 못합니다. 이 광경을 본 청중들에게 두 사람의 상식 수준을 평가하라고 하면, 대부분은 “질문자는 똑똑하고 답변자는 무식하다”고 평가합니다.
이것이 바로 심리학에서 말하는 ‘기본적 귀인 오류(Fundamental Attribution Error)’입니다. 우리는 타인의 행동을 볼 때 그 사람이 처한 ‘상황’은 무시하고, 그 사람의 ‘성격(기질)’ 탓을 합니다.
질문자가 문제를 낼 수 있었던 건 ‘자기가 아는 분야를 낼 수 있는 유리한 상황’ 덕분인데, 우리는 그저 “저 사람 똑똑하네”라고 착각합니다. 반대로 답변자가 틀린 건 ‘문제가 너무 어려운 불리한 상황’ 때문인데, 우리는 “저 사람 멍청하네”라고 단정 짓습니다.
이 오류를 우리의 관계에 대입해 볼까요?
남편이 기념일을 깜빡했습니다. 아내는 생각합니다.
‘저 인간은 사랑이 식었어. 원래 무심한 성격이야.’ (성격 탓)
하지만 남편의 상황은 회사에서 전쟁 같은 프로젝트를 막 끝내고 뇌가 방전된 상태였을지도 모릅니다.
반대로 내가 약속에 늦었습니다. 나는 생각합니다.
‘차가 너무 막혔어. 오늘따라 배가 아팠어.’ (상황 탓)
하지만 기다리던 친구는 생각합니다.
‘쟤는 원래 게을러. 나를 무시하는 거야.’ (성격 탓)
우리는 박쥐처럼 상대방의 마음을 다 안다고 착각하며 매달려 있지만, 사실 우리는 서로의 ‘상황’을 전혀 모릅니다. 김영훈 교수는 단언합니다. “인간에게는 다른 사람의 환경과 상황을 고려할 수 있는 능력 자체가 없다.”
우리는 타인의 행동(결과)만 보고 판단하는 뇌 구조를 가졌습니다. 그러니 “네가 나를 이해해야지”라는 요구는 애초에 불가능한 미션을 강요하는 폭력입니다.
2. 100%의 아내와 0%의 남편 (자기중심적 편향)
관계의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내가 한 노력은 4K 초고화질 영상처럼 생생하게 기억하지만, 남이 한 노력은 저화질 흑백 사진처럼 흐릿하게 봅니다.
김영훈 교수가 인용한 리 로스(Lee Ross)의 부부 연구를 봅시다. 맞벌이 부부에게 가사 분담 기여도를 물었습니다. 아내는 “내가 요리, 설거지, 청소 다 했다. 내 기여도는 100%다”라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남편에게 물으니 “아내가 요리할 때 내가 아이들 봤고, 쓰레기 버렸고, 강아지 밥 줬다. 내 기여도는 최소 25%는 된다”고 억울해합니다.
아내가 거짓말쟁이일까요? 남편이 양심 불량일까요? 둘 다 아닙니다.
아내는 자신이 요리하며 겪은 번거로움과 손목 통증(상황)을 생생하게 느낍니다. 하지만 남편이 아이와 놀아주며 겪은 피로감(상황)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남편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쓰레기를 버리러 나갈 때의 추위는 기억하지만, 아내가 설거지할 때의 지루함은 모릅니다.
그래서 싸움은 영원히 평행선을 달립니다.
“내가 이렇게 고생하는데 너는 뭐 했어?”
“나도 나름대로 힘들었어!”
이것은 ‘이기심’의 문제가 아니라 ‘시점(Point of View)’의 문제입니다. 1인칭 시점으로 사는 인간은 타인의 1인칭 시점을 죽었다 깨어나도 체험할 수 없습니다. 이것을 인정하지 않고 “우리가 사랑한다면 내 맘을 알아야지”라고 덤비는 순간, 우리는 서로의 날개를 뜯어먹는 괴물 박쥐가 됩니다.
3. 가족이라는 이름의 정글 (유산 다툼의 진실)
이 오해의 끝판왕은 가족 간의 유산 다툼에서 드러납니다.
김영훈 교수는 3남매의 유산 전쟁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 큰아들: “장남인 내가 3등분하자고 양보했으면 고마워해야지.” (자신이 장남으로서 겪은 부담감과 양보를 과대평가)
- 작은아들: “지난 15년간 병원비랑 생활비 내가 다 댔어. 내가 50%는 가져야 해.” (자신의 경제적 희생만 기억)
- 막내딸: “돈만 내면 다야? 몸으로 때우며 간병한 건 나야. 오빠들은 코빼기도 안 비췄잖아.” (자신의 육체적 노동과 감정 소모만 기억).
제3자가 보면 다들 돈 욕심에 눈이 먼 것처럼 보이지만, 각자의 좌표 안에서는 모두가 ‘희생자’이고 ‘피해자’입니다. 아무도 서로의 사정을 모릅니다. 막내딸이 병원에서 겪은 밤샘의 고통을 큰아들은 모르고, 작은아들이 병원비를 대기 위해 회사에서 겪은 수모를 막내딸은 모릅니다.
가족이니까 다 알 거라고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가족이야말로 서로의 좌표를 가장 모르는, ‘가장 가까운 타인’입니다.
4. 팽이의 거리두기: 이해하려 하지 말고 ‘오해’를 멈춰라
자, 진단은 끝났습니다. 우리는 뇌 구조적으로 타인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사랑과 관심으로 극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고독한 우주에서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할까요?
여기서 다시 ‘팽이의 기술’이 필요합니다.
팽이 두 개가 같이 돌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딱 붙어 있으면 됩니까? 아닙니다. 붙으면 마찰 때문에 둘 다 멈추거나 튕겨 나갑니다. 함께 돌기 위해서는 ‘적당한 거리’가 필수입니다. 서로의 회전(자아)을 방해하지 않을 만큼의 거리, 그러나 부딪히면 톡 하고 튕겨주며 자극을 줄 수 있는 거리.
저는 이것을 ‘건강한 무관심(Healthy Indifference)’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1) 이해의 포기: “나는 너를 모른다”고 선언하라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애쓰지 마십시오. 대신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당신의 상황을 100%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십시오. 이것은 차가운 포기가 아니라, 상대를 내 식대로 난도질하지 않겠다는 ‘겸손한 존중’입니다.
남편이 설거지를 안 했을 때, “게을러빠진 인간”이라고 단정 짓는(귀인 오류) 대신, “내가 모르는 피곤한 상황이 있겠지”라고 판단을 유보하십시오. 이해가 안 되면 이해하지 마십시오. 그냥 ‘인정’하면 됩니다.
(2) 설명의 의무: 텔레파시는 없다
우리는 박쥐 시절,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기를 바랐습니다. “내가 이렇게 뚱한 표정을 짓고 있으면 알아서 기분을 풀어줘야지!”
하지만 이제 팽이가 된 당신은 알아야 합니다. 말하지 않으면 신도 모릅니다.
김영훈 교수는 말합니다. “열심히 하면 언젠가는 타인이 이해해줄 것이라는 기대는 당신을 철저히 배신할 것이다.”
남편이 내 수고를 몰라주는 건 나쁜 놈이라서가 아니라, 내가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생색내십시오. “나 오늘 이런이런 일 때문에 힘들었어. 위로가 필요해.” 좌표를 정확히 찍어줘야 상대방도 당신에게 다가올 수 있습니다.
(3) 뻔뻔한 계약: 사랑에도 계약서가 필요하다
사랑하니까 모든 걸 다 해준다? 그건 노예계약입니다. 3부에서 말했듯, 희생은 결국 보상 심리를 낳고 관계를 망칩니다.
차라리 쿨하게 역할을 나누십시오. “설거지는 내가 할 테니, 쓰레기는 네가 버려.” “명절에는 각자 부모님 챙기자.”
미리 정해두지 않은 기대는 실망으로 바뀝니다. 뻔뻔하게 요구하고, 쿨하게 합의하십시오. 그것이 성숙한 팽이들의 연애법입니다.
5. 사랑은 ‘오해’를 견디는 힘이다
우리는 흔히 “사랑하니까 이해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렇게 고쳐 말하고 싶습니다.
“사랑하니까, 이해 못 해도 곁에 있는다.”
당신이 팽이처럼 당신의 좌표 위에서 힘차게 돌고 있다면, 타인의 오해 따위에 쉽게 쓰러지지 않습니다. 남들이 나를 “이기적이다”, “독하다”고 오해해도 상관없습니다. 그건 그들의 시선일 뿐, 나의 회전과는 무관하니까요.
그리고 내 옆에서 돌고 있는 또 다른 팽이(타인)를 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저 사람이 왜 저렇게 비틀거리는지, 왜 저런 궤적을 그리는지 나는 알 수 없습니다. 그저 “아, 저 사람도 자기만의 중심을 잡으려고 치열하게 돌고 있구나”라고 바라봐 주는 것. 섣불리 손을 대서 멈추려 하지 않고, 그저 옆에서 같이 돌아주는 것.
이것이 ‘단독자(Singularity)’들이 나누는 진짜 사랑입니다.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해서가 아니라, 서로의 ‘불가해함(이해할 수 없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우리는 외롭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제 관계의 짐을 좀 내려놓으십시오.
당신은 누구를 완벽하게 이해할 필요도, 누구에게 완벽하게 이해받을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당신의 궤도를 도십시오. 가끔 부딪히면 “어이쿠!” 하고 다시 중심을 잡으면 그만입니다.
(6부에서 계속)
[부제] 타인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우아하게 도는 성숙한 이기주의의 기술
출발점이 된 책
김영훈, 『차라리 이기적으로 살걸 그랬습니다』, 21세기북스. 이 글은 책에 소개된 사회심리학적 논점에서 출발한 설탕바른위로의 재해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