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팽이처럼 살걸 그랬습니다 · 4 / 9
나를 살리는 것은 더 하는 일이 아니라
읽기 전에
- 지금 나를 가장 많이 갉아먹는 일은 무엇인가.
- 거절은 왜 죄책감보다 먼저 와야 하는가.
- 나만의 좌표를 찍는다는 것은 어떤 선택인가.
부제: 무작정 노력하는 당신에게 권하는 ‘멈춤’의 기술과 단독자의 탄생
“그래서, 이제 뭘 더 노력하면 되죠?”
1부에서 3부까지 우리는 숨 가쁘게 달려왔습니다. 우리는 남들의 눈치를 보느라 거꾸로 매달린 ‘박쥐’였고, 그 박쥐 짓을 그만두고 중심을 잡는 ‘팽이’가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여기까지 읽으신 독자 분들 중 십중팔구는 다시 습관적으로 다이어리를 펼치며 이렇게 물으실 겁니다.
“좋아요, 팽이가 되겠습니다. 그럼 팽이가 되기 위해 저는 오늘부터 뭘 더 하면 되나요? 새벽 기상? 명상? 아니면 ‘나는 나다’라고 백 번 쓰기?”
잠깐만요. 제발 그 펜을 내려놓으십시오.
우리가 불행한 이유는 무언가를 ‘안 해서’가 아닙니다. 이미 너무 많은 것을, 그것도 ‘남이 원하는 것’을 하느라 에너지가 방전되었기 때문입니다. 김영훈 교수의 책 제목을 다시 한 번 볼까요? 《차라리 이기적으로 살걸 그랬습니다》입니다. 《차라리 노력을 더 할걸 그랬습니다》가 아니란 말입니다.
성숙한 이기주의자가 되기 위한 마지막 단계는 ‘더하기(To-Do)’가 아니라 ‘빼기(Not-To-Do)’입니다.
1. 현대판 전족을 끊어내는 가위: ‘안 하기’의 혁명
김영훈 교수는 책에서 중국의 ‘전족’ 풍습을 이야기합니다. 천 년 동안 여자들의 발을 묶어 기형으로 만들었던 이 끔찍한 고문이 왜 유지되었을까요? 여자들이 그걸 원해서였을까요? 아닙니다. “남들이 다 하니까”, “안 하면 결혼을 못 할까 봐”라는 공포, 즉 집단적 무지 때문이었습니다,.
놀라운 건 이 천 년의 악습이 사라지는 데는 불과 30년도 걸리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어떻게 사라졌을까요? 거창한 법이 제정되어서가 아닙니다. 소수의 사람들이 “나는 내 딸의 발을 묶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하고 행동(Not-To-Do)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하지 않는 것을 보고서야 사람들은 깨달았습니다. “아, 안 해도 하늘이 무너지지 않는구나.”
우리는 지금 마음의 전족을 하고 있습니다. ‘좋은 사람 콤플렉스’, ‘완벽한 직장인’, ‘효성스러운 자식’이라는 전족 말입니다. 발이 으스러지는 고통을 참으며 억지 웃음을 짓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건 더 예쁜 전족 신발을 신는 노력(To-Do)이 아니라, “나는 오늘부터 발을 묶지 않겠다”라고 선언하는 가위(Not-To-Do)입니다.
2. 당신을 살리는 ‘Not-To-Do List’ 작성법
우리는 어릴 때부터 ‘해야 할 일 목록(To-Do List)’을 적는 데 중독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팽이처럼 중심을 잡고 돌기 위해서는, 회전력을 방해하는 불필요한 마찰력을 줄여야 합니다. 제가 제안하는 것은 <Not-To-Do List>입니다. 이것은 게으름을 피우자는 게 아니라, 내 에너지를 엄한 곳에 쓰지 않겠다는 ‘에너지 보존의 결단’입니다.
김영훈 교수는 “노력이 인생의 만병통치약이 아니다”라고 단언합니다. 재능이 없거나 맞지 않는 일에 쏟는 노력은 배신당할 확률이 높고, 오히려 패배감만 안겨준다고 경고합니다,. 싫은 사람에게 잘 보이려 애쓰는 ‘감정 노동’도 마찬가지입니다.
자, 지금 당장 종이를 꺼내 적어보십시오. 거창할 필요 없습니다. 아주 사소하고 뻔뻔한 목록일수록 좋습니다.
[작가의 추천: 초보 팽이를 위한 Not-To-Do List]
1. 싫은 사람에게 억지로 웃어주지 않기: 상사의 썰렁한 농담에 자지러지게 웃어주는 ‘박쥐 연기’를 멈추십시오. 무표정도 괜찮습니다. 당신은 코미디 방청객 알바가 아닙니다.
2. 타인의 감정을 책임지려 하지 않기: 남편이 기분 나빠 보인다고 내 탓인가 전전긍긍하지 마십시오. 그건 그 사람의 인생이고 그 사람의 감정입니다. 감정의 ‘월권’을 멈추세요.
3. 없는 빈말 하지 않기: “언제 밥 한번 먹자”, “네가 최고야” 같은 영혼 없는 칭찬은 그만두세요. 김영훈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거짓 칭찬은 오히려 상대방의 성취동기를 떨어뜨리고 관계를 망칩니다,. 침묵이 차라리 낫습니다.
4. 모든 카톡에 즉시 답장하지 않기: 당신은 24시간 대기 중인 콜센터 직원이 아닙니다. 내 중심축이 흔들릴 때는 알림을 꺼두십시오.
이 목록을 적고 실천하는 순간, 당신은 불안해질 겁니다. “저 사람이 나를 싸가지 없다고 생각하면 어쩌지?”
축하합니다. 그 불안감이야말로 당신이 지금 ‘타인의 기준’에서 ‘나의 기준’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당신은 지금 막 당신의 발을 묶고 있던 전족의 끈 하나를 잘라낸 것입니다.
3. 단독자(Singularity): 나만의 좌표를 찍는 순간
우리가 이 모든 과정을 통해 도달하고자 하는 최종 목적지는 어디일까요?
김영훈 교수의 행복 실험 결과는 충격적입니다. 한국인(동양인)은 “남들이 나를 행복하다고 봐줄 때” 행복해하고, 미국인(서양인)은 “내가 나를 행복하다고 느낄 때” 행복해합니다.
우리의 불행은 내 행복의 좌표를 남의 지도 위에서 찾으려 했기 때문에 시작되었습니다. 남들이 좋다는 대학,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 남들이 인정하는 배우자… 그 좌표를 따라가느라 우리는 평생을 헤맸습니다.
이제 당신만의 좌표를 찍어야 할 때입니다.
그 좌표가 화려한 강남 한복판이 아니면 어떻습니까?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변두리라도 상관없습니다. 그곳에 내가 깃발을 꽂고 “여기가 내 자리다. 나는 이쯤에서 만족한다”라고 선언하는 순간, 그곳은 우주의 중심이 됩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말하는 ‘단독자(Singularity)’입니다.
단독자는 고립된 외톨이가 아닙니다. ‘대체 불가능한 고유성을 가진 존재’입니다. 팽이가 스스로 중심을 잡고 돌 때 비로소 꼿꼿하게 서 있을 수 있듯이, 내가 내 삶의 단독자가 되어야 타인에게 기대지 않고 온전히 사랑할 수 있습니다. 내가 바로 서야, 옆에 있는 팽이와 부딪혀도 쓰러지지 않고 함께 춤을 출 수 있는 법입니다.
4. 이 정도면 되었다: 심각해지면 지는 거다
글을 마치며 여러분께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은, 제발 이 모든 과정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반드시 팽이가 되어야 해!”, “완벽한 Not-To-Do List를 짜야 해!”라며 또다시 눈에 불을 켠다면, 그것 또한 또 다른 형태의 강박이자 전족입니다.
그냥 좀 뻔뻔해지십시오.
돌다가 비틀거려도 “어, 좀 어지럽네?” 하고 웃어넘기십시오. 오늘 상사 눈치를 좀 봤다면 “아직 박쥐 습성이 남았네, 찍찍!” 하고 퇴근길에 치킨이나 한 마리 사 들고 가면 그만입니다.
김영훈 교수는 말합니다. “과도한 긍정도, 과도한 노력도 우리를 배신한다”고요. 우리를 구원하는 건 대단한 성취나 타인의 박수갈채가 아닙니다.
“오늘 하루, 남에게 휘둘리지 않고 내 맘대로 커피 한 잔 마셨으니 이 정도면 되었다.”
이 소박하고 뻔뻔한 자기 긍정. 바로 이 마음이 험한 세상에서 우리를 지켜줄 가장 단단한 갑옷입니다.
여러분, 이제 박쥐처럼 거꾸로 매달려 세상을 보느라 피 쏠리는 고통을 감내하지 마십시오.
땅을 딛고 서십시오.
그리고 팽이처럼, 당신만의 리듬으로, 당신만의 좌표 위에서,
빙글빙글,
신나게 돌아버리십시오.
심각해지면 지는 겁니다.
출발점이 된 책
김영훈, 『차라리 이기적으로 살걸 그랬습니다』, 21세기북스. 이 글은 책에 소개된 사회심리학적 논점에서 출발한 설탕바른위로의 재해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