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을 포기했더니 삶이 다시 움직였다

핵심 3줄 요약

  • 위로와 방어는 필요하지만, 그 안에만 머물면 삶은 정지한다.
  • 대충의 기술·작은 루틴·솔직한 기록은 다시 움직이기 위한 생존 기술이다.
  • 결핍을 없애는 대신, 결핍을 자기 서사의 재료로 바꾸는 일이 다음 단계다.

「소진된 우리를 위한 생존의 계보학」 · 3부 · 연재 목차

『대충의 자세』와 『어른의 품위』가 말하는 ‘움직이는 개인’의 탄생

1. 멈춰 선 자들의 딜레마: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는 앞선 시기(1~2부)를 통해 ‘멈춤’과 ‘방어’를 배웠습니다. “열심히 살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에 위로받았고, “상처받지 않기 위해 거리를 둔다”는 말로 안전해졌습니다. 하지만 방공호 속에 오래 머물다 보니 우리는 또 다른 문제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무기력’‘정체’입니다.

상처받지 않는 대신, 성취의 기쁨도 사라진 삶. 하완 작가는 자신의 신작 『대충의 자세』에서 이 딜레마를 정확히 고백합니다. 그는 “완벽하지 못할 거라면 안 하는 게 낫다”는 생각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상상만 하다가 포기해버리는 자신의 모습을 ‘게으른 완벽주의자’라고 진단합니다.

“나는 그들의 마음을 너무 잘 알 것 같다. 내가 바로 게으른 완벽주의자이기 때문이다. (…) 잘하려고 하지 마. 틀려도 괜찮아. 최선을 다할 필요도 없어. 대충 하면 되는 거야. (…) ‘잘하지 않을 거면 안 하는 게 낫다’가 아니라 ‘대충이라도 하면 다행’이라는 마음가짐이 나를 나아가게 한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작정 쉬는 ‘위로’가 아니라, 다시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만드는 구체적인 ‘기술(Technique)’입니다. 그것은 비장한 각오가 아니라, 힘을 빼고 툭 던지는 ‘대충의 기술’입니다.

2. 첫 번째 기술: ‘힘 빼기’와 ‘가볍게 쥐기’ (하완)

과거의 우리가 ‘노력’이라는 단어에 짓눌려 번아웃되었다면, 새로운 세대의 생존법은 ‘지속 가능성’에 방점이 찍혀 있습니다. 하완 작가는 그림을 그릴 때 연필을 꽉 쥐면 오히려 선이 삐뚤어지듯, 인생도 너무 잘하려고 애쓰면 망친다고 말합니다.

“힘이 들어간다는 건 경직된다는 것, 유연하지 않다는 것, 자연스럽지 않다는 것, 욕심을 내고 있다는 것, 겁을 먹고 있다는 것이다. (…) 내 인생을 대단하게 만들어보겠다는 욕심을 이제 조금 내려놓았다. 자, 우리 힘내지 말고 힘을 빼자.”

이것은 포기가 아닙니다. ‘대충’은 아무렇게나 사는 것이 아니라 “완벽하게 하려 하지 말고, 너무 애쓰지 말고,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얼추 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이는 거창한 성공 신화를 좇다 지쳐 떨어져 나가는 대신, 나만의 호흡으로 오래도록 굴러가겠다는 ‘실용적인 선언’입니다.

3. 두 번째 기술: ‘루틴’으로 나를 대접하기 (최서영)

힘을 뺐다면, 이제 나를 단단하게 만드는 ‘루틴’이 필요합니다. 거대한 세상은 내 맘대로 되지 않지만, 내 아침 시간과 내 몸은 내 맘대로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최서영 작가는 『어른의 품위』에서 일상의 작은 루틴들이 어떻게 자존감을 지켜주는지 증명합니다.

“눈을 뜨면 가장 먼저 공복 혈당을 체크한 뒤, 오일풀링으로 입안을 헹구고 따뜻한 물 한 잔을 마시며 몸을 깨운다. (…)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의 흐름에 나를 내맡길 때보다 내 몸을 의식적으로 정돈했을 때 하루의 리듬이 훨씬 나답게 흘러감을 느낀다.”

이것은 보여주기 위한 삶이 아닙니다. “내가 나를 아끼고 있구나”라는 감각을 스스로에게 선물하는 행위입니다. 내가 나를 함부로 대하지 않을 때, 세상도 나를 함부로 대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소진되는 시대에 나를 지키는 가장 확실한 ‘태도의 기술’입니다.

4. 세 번째 기술: 고통의 ‘의미화’와 ‘솔직함의 연대’ (백세희)

마지막으로 우리는 고통을 피하는 것을 넘어, 고통을 내 삶의 고유한 서사로 만드는 ‘의미화’의 단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백세희 작가의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는 자신의 가장 어두운 면, 구질구질한 감정, 모순적인 욕망을 있는 그대로 기록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충격과 해방감을 동시에 주었습니다.

“어두운 면을 드러내는 건 내가 자유로워지는 하나의 방법이다. 이것 또한 나라는 걸 내 소중한 사람들이 꼭 알아주면 좋겠다.”

그녀는 자신의 상처와 결핍을 숨기지 않고 드러냄으로써, 그것을 ‘부끄러움’이 아닌 ‘나만의 이야기’로 바꿨습니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라는 안도감은 타인과의 깊은 연대를 가능하게 합니다. 최서영 작가 역시 질투심이나 열등감을 부정하지 않고 “질투심이 곧 내가 어떤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표지판”이라며 자신의 욕망을 긍정하는 방식으로 감정을 의미화합니다.

결론: “관계지향적 단독자”로 살아가기

우리는 이제 ‘위로(과거)’와 ‘방어(현재)’를 지나 ‘자신만의 기술과 서사(미래)’를 가진 개인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 하완처럼: 힘을 빼고 ‘대충’ 굴러가며 삶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고,
  • 최서영처럼: 나만의 루틴과 취향으로 삶의 질서를 세우며,
  • 백세희처럼: 나의 어둠과 고통조차 솔직하게 드러내어 타인과 연결되는 삶.

이것은 더 이상 성공한 타인을 부러워하거나(모방), 세상이 두려워 숨는(도피) 삶이 아닙니다. 나의 한계와 결핍을 인정하고, 그것을 재료 삼아 나만의 고유한 궤도를 만드는 ‘성숙한 개인주의자’, 즉 ‘관계지향적 단독자’의 모습입니다.

이제 우리는 묻습니다.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가 아니라, “오늘 나를 위해 어떤 따뜻한 물 한 잔을 마셨나요?”, “당신의 결핍은 당신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나요?” 라고 말이죠. 이것이 바로 소진되는 시대를 건너는, 가장 우아하고 실질적인 생존법입니다.

인용·참고

  • 하완, 『대충의 자세』
  • 최서영, 『어른의 품위』
  • 백세희,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