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줄 직접답변
-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조건은 무엇인가.
- 자책은 책임과 어떻게 다른가.
- 운명을 인정하는 일이 왜 포기가 아닌가.
차라리 팽이처럼 살걸 그랬습니다 · 7화
부제: 자유의지라는 환상에서 깨어나 ‘운명’과 쿨하게 악수하는 법
“노오력하면 된다고요? 천만에요. 유전자가 시키는 대로 살 뿐입니다.”
서점가 베스트셀러 코너에는 언제나 ‘노력’과 ‘성공’을 파는 자기계발서들이 쌓여 있습니다. “네가 지금 가난한 건 간절함이 부족해서야”, “네가 살이 찐 건 게을러터져서야”, “네가 공부를 못하는 건 엉덩이가 가벼워서야.”
이 말들은 채찍이 되어 우리의 등을 후려칩니다. 우리는 1부에서 말한 ‘박쥐’처럼, 내가 부족해서 무리에 끼지 못하는 것 같아 밤새 자책하며 괴로워합니다.
하지만 김영훈 교수는 아주 충격적이고도 해방적인 진실을 던집니다.
“당신에게는 자유의지가 별로 없다.”
우리가 선택했다고 믿는 수많은 결정들이 사실은 유전자와 환경의 정교한 조종이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성숙한 팽이가 되기 위한 일곱 번째 단계는, ‘무의미한 자책을 멈추고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1. 당신이 자장면을 먹은 진짜 이유 (선택의 착각)
오늘 점심 메뉴로 무엇을 드셨습니까? 자장면을 먹었다고 칩시다. 당신은 “내가 자장면이 땡겨서 선택했다”고 믿을 겁니다. 나의 ‘자유의지’로 말이죠.
하지만 김영훈 교수의 분석은 다릅니다. 당신이 자장면을 고른 이유는 어릴 때부터 먹어온 식습관(환경), 짠맛을 좋아하는 입맛(유전자), 혹은 동료가 무심코 던진 “오늘 중식 어때?”라는 말 한마디(점화 효과) 때문일 수 있습니다,.
1996년 존 바그(John Bargh) 교수의 실험을 봅시다. 피험자들에게 ‘노인’, ‘회색’, ‘지팡이’ 같은 단어로 문장을 만들게 했습니다. 실험이 끝난 뒤 그들은 평소보다 복도를 더 천천히 걸었습니다. 노인이라는 단어가 뇌를 자극해 행동을 조종한 것입니다. 정작 본인들은 “그냥 천천히 걷고 싶어서”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내가 내 삶의 핸들을 쥐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사실 우리는 수많은 ‘자율 주행 모드’ 속에 살고 있습니다. 내가 선택한 것 같지만, 실은 선택당한 것입니다. 그러니 제발 모든 결과에 대해 “내가 잘못 선택해서 망했어”라고 자책하지 마십시오. 당신은 그 상황에서 자장면을 먹을 수밖에 없었던 운명이었습니다.
2. 게으름도, 비만도, 이혼도 ‘유전’이다
자책의 끝판왕은 바로 ‘능력’과 ‘성격’에 대한 것입니다.
“나는 왜 저 친구처럼 끈기 있게 공부하지 못할까?”
“나는 왜 식욕 하나 참지 못해서 이 모양일까?”
여기 김영훈 교수가 제시하는 불편하지만 시원한 진실이 있습니다.
공부를 잘하는 핵심 요인인 ‘자기조절 능력(엉덩이 힘)’은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타고난 성격적 특성(유전)입니다. 안젤라 리 교수의 연구나 김영훈 교수의 연구 모두, 성실성과 노력조차 유전적으로 결정된 능력임을 보여줍니다.
비만은 더합니다. 뚱뚱한 사람을 보며 우리는 “자기관리를 안 해서 저래”라고 비난합니다. 하지만 날씬한 사람들은 뼈를 깎는 노력을 해서 날씬한 게 아닙니다. 애초에 음식에 대한 욕심이 적거나, 신진대사가 활발하게 태어난 경우가 90% 이상입니다. 비만은 의지 박약이 아니라, 식탐 유전자와 대사 능력의 문제입니다.
심지어 이혼도 유전됩니다. 연구에 따르면 이혼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가 이혼할 확률이 높은데, 이는 가정환경 때문이 아니라 생물학적 부모에게 물려받은 ‘부정적 정서’와 ‘낮은 참을성’이라는 유전자 때문이었습니다,.
당신이 지금 겪고 있는 실패, 뚱뚱한 몸매, 관계의 파탄… 이것들이 온전히 당신의 탓일까요? 아닙니다. 당신은 그저 그런 유전자와 환경을 ‘지급받았을’ 뿐입니다.
3. 땅을 탓하지 않는 팽이: 래디컬 억셉턴스(Radical Acceptance)
자,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어차피 유전자 빨이니 막 살자”라며 포기해야 할까요?
아니면 “내 탓이 아니야, 부모 탓이야, 사회 탓이야”라며 원망만 해야 할까요?
여기서 다시 ‘팽이의 기술’이 빛을 발합니다.
팽이는 자신이 돌고 있는 ‘바닥(지형)’을 선택할 수 없습니다. 어떤 팽이는 매끄러운 대리석(금수저, 좋은 유전자) 위에서 돌고, 어떤 팽이는 울퉁불퉁한 자갈밭(흙수저, 나쁜 유전자) 위에서 돕니다.
박쥐는 자갈밭에 떨어진 자신을 비관하며 “나는 왜 대리석이 아니냐”고 울부짖으며 거꾸로 매달립니다.
하지만 성숙한 팽이는 ‘지형을 탓하지 않습니다.’
그저 “아, 내 바닥은 좀 거칠구나”라고 인정(Acceptance)하고, 그 위에서 중심을 잡는 데 집중합니다.
이것이 바로 심리학에서 말하는 ‘수용(Acceptance)’이자, 제가 말하는 ‘운명과의 쿨한 악수’입니다.
- “그래, 나는 끈기가 부족한 유전자를 가졌다. 그러니 짧게 끊어서 일하자.”
- “나는 살이 잘 찌는 체질이다. 그러니 남들보다 더 움직이거나, 뚱뚱하지만 건강한 팽이가 되자.”
내 탓이 아님을 아는 순간, 우리는 ‘자책’이라는 무거운 배낭을 벗어던질 수 있습니다. 에너지를 ‘후회’에 쓰지 않고 ‘균형’에 쓸 수 있게 됩니다.
4. 무지의 베일: 오만하지 말고, 비굴하지 말라
자유의지의 배신을 깨닫고 나면, 타인을 보는 눈도 달라져야 합니다.
김영훈 교수는 존 롤스의 ‘무지의 베일(Veil of Ignorance)’ 개념을 가져옵니다. 내가 어떤 환경, 어떤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날지 모르는 상태라면, 우리는 가장 불리한 상황에 처한 사람도 살 만한 세상을 설계하려 할 것입니다,.
이 관점을 가지면 우리는 ‘겸손한 팽이’가 됩니다.
당신이 지금 잘 돌고 있다면, 그건 당신이 잘나서가 아니라 ‘운 좋게 매끄러운 바닥에 놓였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그러니 넘어진 팽이를 보고 “노력이 부족해”라고 비웃지 마십시오. 그곳은 진흙탕일지도 모릅니다.
반대로 당신이 지금 비틀거리고 있다면, 기죽지 마십시오. 당신의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이번 생의 맵(Map) 난이도가 헬(Hell)’이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맵에서 버티고 있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이미 대단한 팽이입니다.
5.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자유: ‘도는 태도’를 결정하라
빅터 프랭클은 나치 수용소에서도 인간의 마지막 자유는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유전자도, 환경도, 바닥의 상태도 우리는 선택할 수 없습니다. 김영훈 교수의 말대로 자유의지는 거의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딱 하나, ‘어떻게 돌 것인가’는 우리의 몫입니다.
- 자갈밭이라고 징징대며 누워 있을 것인가(박쥐).
- 자갈밭이니까 더 강하게 회전하며 튀어 오를 것인가(팽이).
자책을 멈추십시오.
“내가 게을러서”가 아닙니다. “내 성격이 이상해서”가 아닙니다.
그냥 그런 옵션을 가지고 태어난 게임 캐릭터일 뿐입니다.
중요한 건 그 캐릭터로 이 게임을 ‘어떻게 플레이하느냐’입니다.
천재 작가 스콧 피츠제럴드는 《위대한 개츠비》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누군가를 비판하고 싶을 때면,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너만큼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태어난 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라.”
이 말을 나 자신에게도 해주십시오.
“내가 비틀거리는 건, 내가 못나서가 아니라 조건이 불리했을 뿐이야. 그래도 나는 돌고 있어. 그거면 충분해.”
이제 마지막 8부에서는 이 모든 짐을 내려놓고, 진짜 나를 데리고 사는 ‘성숙한 이기주의자의 마지막 태도’에 대해 이야기하며 여정을 마무리하겠습니다.
(8부에서 계속)
출발점이 된 책
김영훈, 『차라리 이기적으로 살걸 그랬습니다』, 21세기북스. 이 글은 책에 소개된 사회심리학적 논점에서 출발한 설탕바른위로의 재해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