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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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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교육을 다시 묻다

17년 동안 숙제만 내주던 나라에서, 갑자기 하고 싶은 전공을 묻는 위선

대한민국의 대입 상담실 풍경은 해마다 기묘하다.

고등학교 2학년 서진이가 창가에서 스며드는 늦여름의 더운 햇살 아래 영혼이 빠져나간 듯한 얼굴로 앉아 있다. 상담 교사는 생활기록부의 빼곡한 텍스트와 내신 성적 곡선을 넘겨보며 나지막이 질문한다. "서진아, 내신 등급도 훌륭하고 생기부 글자 수도 알차게 채워졌네. 근데 넌 어떤 학과에 가고 싶어? 구체적으로 뭘 전공하고 싶니? 평소에 정말 좋아하거나 관심 가졌던 분야가 뭐야?"

서진이는 아주 익숙한 기계적 반응으로 빈 바닥을 가만히 쳐다본다. 그리고 힘없이 중얼거린다. "글쎄요… 딱히 그런 거 없는데… 성적 맞춰서 가야죠." "그래도 네가 밤잠을 설쳐가며 탐독했던 책 한 권이나, 수학이든 과학이든 이 개념만큼은 끝까지 직접 파헤치고 분석하고 싶었던 찰나의 순간이 한 번도 없었어?"

상담실에는 또다시 가혹하고 질척한 정적이 고인다. 아이는 귀찮다는 듯 교복의 마지막 단추만 만지작거리며 입술을 꾹 다문다. 서진이의 흔들리는 눈동자 어디에도 배움에 대한 아주 미미한 열망이나 순수한 비판적 호기심의 불꽃은 발견되지 않는다.


당연하다. 서진이가 세상을 인지하기 시작한 이후 마주한 지난 17년은 어른들이 빈틈없이 조립해 준 '해야 할 일(Must-do)'의 견고한 일방통행 컨베이어 벨트였다. 아침 7시 등교, 자율을 흉내 낸 통제적 학습, 오후 5시 수학 학원, 밤 8시 영어 학원, 그리고 새벽 1시의 독서실.

단 일 초의 시간도 자신이 무엇에 반응하고 눈길이 머무는지, 어떤 사물에 호기심 어린 손을 직접 뻗고 싶은지 주체적으로 선택해 본 시간의 권리를 박탈당해 왔다. 어른들은 아이의 숨을 턱턱 막히게 하는 지루한 과업만 잔뜩 얹어놓고선, 대학 선발의 거대한 문턱에 다다르자 비로소 인자한 얼굴로 도대체 '하고 싶은 것(Want-to)'이 무엇인지 캐묻는다. 그것은 아이들의 지나온 고통스러운 삶에 대한 모독이자 위선이다.


세상의 수많은 기성세대의 양육론은 종종 관심을 '아이의 내면 깊은 영토에 이미 묻혀 있는 보물'로 간주한다. 그래서 부모들은 아주 이른 유아기부터 지능 검사와 진로적성 검사지를 내밀며 "우리 아이가 수학적 흥미를 타고났나?", "언어적 재능이 있는가?"라며 선천적 보물찾기에 골몰한다.

이것이 관심을 왜곡하는 거대한 착각이다. 학습과학의 거장 헤디와 레닝거(Hidi & Renninger, 2006)가 제안한 관심의 발달 경로는 우리에게 정직한 진실을 속삭인다 [3]. 관심이란 결코 완성된 채 묻혀 있는 화석이 아니다. 그것은 세상을 온몸으로 마주하며 부딪히는 '상황적 자극(Situational Interest)'에서 아주 어설픈 불씨로 시작되어, 자율적인 행동과 탐색이 결합될 때 비로소 평생의 '개인적 정체성(Individual Interest)'으로 점진적 성장을 이루는 발달의 영토다 [3].

자율적으로 탐색하고 직접 만져볼 구체적인 경험의 무대, 그리고 그 설익은 관심의 싹이 또다시 자율적이고 주체적인 행동으로 확장될 수 있는 명확한 구조적 지탱(비계)이 주어지지 않았다면, 아이들의 마음속에서 관심은 태어날 최소한의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유산된다 [3].

우리가 주입할 수는 없었으나, 기어이 아이가 발견해 냈어야 할 관심의 토양을 우리는 통제와 주입으로 완벽하게 파괴해 온 것이다.


"아이가 원하는 것에서 배움을 시작하라"는 훈계는 종종 위험한 방임 교육의 함정으로 오해받는다. "그래, 하기 싫으면 네 마음대로 하고 놀아라"라며 허허벌판에 아이를 고립시키는 방조는 아이의 내면에 깊은 두려움과 무기력을 남길 뿐이다.

학습동기 연구가들의 단단한 사실들은 '자율성의 지지'와 '명확하고 단단한 과제 구조(비계)'가 상호보완적으로 결합할 때만 배움의 내재 동기가 극대화된다고 증언한다 [3].

선택권은 주되 방관하지 않는 것. "네가 평소에 그렇게 가슴 뛰며 몰입하는 축구 데이터를 AI와 조합해 진짜 프로 전술 분석가처럼 완벽한 결과물을 가공해 내고 싶다면, 귀찮아 보이고 지루해 보이는 저 비례식과 통계라는 수학의 냉정한 약속들을 마땅히 배워내야 한다"는 적극적 설계.

지식은 시험 점수를 선점하기 위한 쇠사슬이 아니라, 자기가 지독하게 갈망하는 진짜 세계를 지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단단한 '도구'로 거듭나야 한다. 하고 싶은 것이 있다는 것은, 아이들이 배움의 지난한 마찰과 어려운 수학 수식을 회피하는 핑계가 아니라, 기어이 그 마찰을 즐겁게 견뎌내며 주체적인 행위자로 일어서게 만드는 가장 찬란한 '이유'가 된다.

함께 읽은 자료

Hidi, S.; Renninger, K. A. (2006). The Four-Phase Model of Interest Development.

Patzak, A.; Zhang, X. (2025). Blending Teacher Autonomy Support and Provision of Structure in the Classroom for Optimal Motivation: A Systematic Review and Meta-Analy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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