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3줄 요약
- 아이의 “하고 싶은 게 없어요”는 욕망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자기 관심을 따라가본 경험이 부족하다는 뜻일 수 있다.
- 관심은 경험 속에서 촉발되고 유지·발달할 수 있으며, 중요한 징후는 한 경험이 다음 질문과 행동을 만들어내는가이다.
- 교육은 관심을 그대로 두는 것이 아니라 관심이 필요한 지식과 다음 경험으로 이어질 경로를 설계해야 한다.
하고 싶은 것이 없다는 말은 무엇을 뜻할까
질문보다 먼저 있는 것이 있다.
관심이다.
사람은 모르는 것을 모두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질문은 무지에서 자동으로 생기지 않는다. 무엇인가를 조금 더 알고 싶다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아이에게 “질문해봐”라고 말하기 전에 먼저 물어야 한다.
그 아이에게 궁금한 것이 있는가.
어른들은 아이에게 자주 묻는다.
“좋아하는 게 뭐야?”
“커서 뭐가 되고 싶어?”
그런데 “모르겠어요”라는 답이 돌아오면 걱정한다. 요즘 아이들은 꿈이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나는 이 상황을 반대로 보고 싶다.
우리는 아이에게 하고 싶은 것을 발견할 만큼 충분히 많은 세계를 만나게 했을까.
관심은 경험 속에서 발달할 수 있다
하고 싶은 것은 머릿속 어딘가에 완성된 형태로 들어 있다가 어느 날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공을 차본 적 없는 아이가 축구의 재미를 알기 어렵고, 밤하늘을 오래 본 적 없는 아이가 천문학에 매혹될 기회도 적다.
관심에는 재료가 필요하다. 그 재료가 경험이다.
교육심리학에서도 관심을 고정된 성격처럼만 보지 않는다. 어떤 상황에서 순간적으로 촉발된 관심이 반복되고 유지되면서 개인적인 관심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본다.
관심의 징후는 다음 행동이다
다만 경험이라고 해서 모두 같은 경험은 아니다.
박물관에 가는 것도 경험이고, 학원에서 영어를 배우는 것도 경험이고, 책을 읽는 것도 경험이다.
중요한 것은 그 경험이 아이 안에서 다음 행동을 만들어내는가다.
곤충을 본 아이가 집에 와서 도감을 찾는다. 야구를 보다가 공이 왜 휘는지 궁금해한다. 책 한 권을 읽고 그 시대가 궁금해 다른 책을 펼친다.
하나의 경험이 다음 경험을 요구하기 시작한다.
나는 그것을 관심의 중요한 징후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처음 경험을 누가 제안했느냐가 아니다. 부모가 데려간 박물관에서도 아이가 어떤 전시 앞에서 오래 멈추고, 집에 돌아와 다시 찾아본다면 그 경험은 이미 아이의 것이 되기 시작했다. 반대로 아이가 스스로 선택한 활동이라도 점수와 보상만 따라가면 관심이 깊어지지 않을 수 있다.
관심의 핵심은 ‘자유롭게 골랐는가’보다 경험이 자기 안에서 다음 질문과 행동을 낳았는가에 있다.
그래서 능동적인 경험을 단순히 몸을 움직이는 활동과 같은 뜻으로 볼 필요도 없다. 책을 읽으며 장면을 만들고 다음을 예상하는 일도 충분히 능동적이다.
반대로 아이가 직접 연필을 움직이고 있어도 이유가 “엄마가 하라고 해서”, “오늘 여기까지 해야 해서”뿐이라면 행동의 목적은 아이 바깥에 있다.
더 정확한 구분은 이쪽에 가깝다.
남이 정한 목적을 수행하는 경험과, 내 안에서 다음 행동을 만들어내는 경험.
해야 할 것에 익숙해질 때 무엇이 사라질까
그런데 교육은 상당히 일찍부터 아이에게 다른 질문을 익숙하게 만든다.
“무엇을 더 해보고 싶니?”보다 “오늘 어디까지 해야 하지?”
한글을 해야 하고, 영어를 해야 하고, 수학을 해야 한다.
각각은 필요할 수 있다. 문제는 이 경험이 오랫동안 ‘배움의 기본형’이 될 때다.
아이는 점점 세상을
‘무엇이 궁금하지?’가 아니라
‘나는 무엇을 해야 하지?’
라는 질문으로 바라보는 데 익숙해질 수 있다.
그러고 몇 년 뒤 우리는 묻는다.
“넌 하고 싶은 게 뭐야?”
오랫동안 해야 할 것을 잘 수행하는 사람으로 훈련한 뒤 갑자기 자기 욕망을 설명하라고 요구하는 셈이다.
그 아이의 “모르겠어요”는 욕망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자기 욕망을 따라가본 경험이 충분하지 않다는 뜻일 수도 있다.
관심을 지식으로 연결해야 한다
그렇다고 하고 싶은 것만 하게 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관심은 출발점이지 교육의 완성점이 아니다.
축구를 깊게 알고 싶다면 통계가 필요할 수 있다. 공룡을 좋아하다 보면 지질학과 진화가 필요해진다. 해외 자료를 읽으려면 영어가 필요하다.
교육이 해야 할 일은 관심을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관심이 지식의 세계로 들어갈 길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하고 싶은 것에서 시작하되, 하고 싶은 것만 하게 두지는 않는 것.
AI는 관심과 탐구 사이의 비용을 낮출 수 있다
여기에서 AI의 가능성도 생긴다.
관심이 생겨도 실제 탐구까지 가는 데는 자료, 언어, 기술의 장벽이 있다. AI는 그 연결 비용을 낮출 수 있다.
중요한 것은 AI가 대신 탐구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이것이 궁금하다”라는 작은 반응이 다음 행동으로 이어지게 하는 것.
관심은 주입할 수 없다.
하지만 관심이 생길 환경과, 생긴 관심이 사라지지 않을 경로는 설계할 수 있다.
여기에서 어른의 역할은 ‘네가 이것을 좋아해야 해’라고 정하는 것이 아니라 반응을 보는 데 가까워진다. 무엇을 할 때 질문이 늘어나는지, 무엇을 끝낸 뒤 스스로 한 번 더 해보려 하는지, 어디에서는 시간 가는 줄 모르는지를 보는 것이다.
그리고 작은 반응이 나타났을 때 곧바로 진로 이름을 붙이기보다, 그 관심이 더 넓은 세계를 만나도록 다음 경험을 연결해주는 것. 관심은 그렇게 조금씩 자기 것이 될 수 있다.
관심에서 개인화 교육으로
그렇다면 개인화 교육이라는 말도 다시 정의해야 한다.
학생마다 같은 목표를 더 효율적으로 달성하게 하는 것이 개인화의 전부일까.
아니면 서로 다른 관심이 서로 다른 질문과 탐구로 이어지게 하는 것이 더 본질적인 개인화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