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에 아이에게 미래를 가르친다는 것: 답보다 행위자의 자리

핵심 3줄 요약

  • 미래에 필요한 기술 목록을 정확히 예측해 미리 가르치는 것만으로는 빠르게 바뀌는 세계를 준비시키기 어렵다.
  • 교육은 새로운 세계를 만났을 때 자기 목적을 만들고 필요한 지식을 다시 배우며 실패 뒤 다음 행동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을 길러야 한다.
  • AI의 교육적 가치는 답을 대신 주는 데서 끝나지 않고 첫 시도의 비용과 반복업무를 줄여 사람에게 다시 배우고 서로를 볼 시간을 돌려주는 데 있다.

AI 시대 교육의 핵심은 행위자의 자리다

이 연재는 AI에서 시작했다.

아이들에게 AI를 나눠준다는 소식을 보면서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정답을 찾는 데 익숙한 아이에게 세상에서 가장 좋은 답변기계를 쥐여주면 교육은 정말 달라질까.

처음에는 AI를 어떻게 사용하게 할 것인가에 관한 질문처럼 보였다.

그런데 끝까지 와보니 내가 계속 묻고 있던 것은 조금 다른 것이었다.

이 배움에서 누가 행위자인가.

왜 이 질문이 AI 시대에 더 중요해졌을까.

미래에 필요한 기술을 미리 가르치는 방식의 한계

우리는 오랫동안 아이에게 미래를 준비시키려 했다.

앞으로 필요할 것 같으니 영어를 가르쳤다. 수학을 가르쳤다. 컴퓨터를 가르쳤다. 남보다 조금 먼저 시작하면 유리할 것 같아서 더 일찍 가르쳤다.

부모 입장에서는 당연한 선택이었다.

미래가 불확실할수록 준비할 수 있는 것을 많이 준비시키고 싶다.

그런데 이제 이상한 상황이 생겼다.

우리가 아이에게 열심히 준비시키고 있는 능력 중 일부는 아이가 어른이 될 무렵 지금과 전혀 다른 가치를 가질 수 있다.

번역을 잘하는 능력, 자료를 찾는 능력, 정해진 형식의 글을 쓰는 능력, 기본적인 코드를 작성하는 능력, 많은 정보를 기억하고 빠르게 꺼내는 능력.

이런 것들이 사라진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그것을 잘하는 사람만 할 수 있었던 일들이 줄어들 수 있다.

다시 배울 수 있는 사람

그렇다면 미래를 준비시킨다는 말의 의미도 달라져야 한다.

미래에 쓰일 기술을 미리 많이 집어넣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모르는 세계가 나타났을 때 다시 배울 수 있는 사람.

나는 교육이 점점 그 사람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시 배울 수 있으려면 지식을 빨리 습득하는 능력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무엇을 위해 배우는지도 자기 안에서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이 연재에서 ‘하고 싶은 것’이라는 말을 여러 번 쓴 이유도 거기에 있다.

하고 싶은 것은 어려움을 피하는 것이 아니다

교육에서 하고 싶은 것을 강조하면 쉽게 이런 반론이 나온다.

“아이에게 하고 싶은 것만 시키자는 이야기인가.”

나는 오히려 반대라고 생각한다.

하고 싶은 것이 있는 사람에게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

무엇인가를 정말 해보고 싶으면 지금 가진 능력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필요하면 수학을 배워야 한다. 영어를 읽어야 한다. 역사를 알아야 한다. 코딩을 익혀야 한다. 다른 사람의 비판도 받아야 하고 나보다 잘하는 사람에게 져보기도 해야 한다.

하고 싶은 것이 있다는 것은 어려움을 피하는 이유가 아니라 어려움을 견딜 이유가 생기는 것에 가깝다.

그래서 좋은 교육은 쉬운 길만 만들어주는 일이 아니다.

어려운 길을 걸어갈 자기 이유를 발견하게 하는 일에 가깝다.

AI는 첫 시도의 비용을 낮출 수 있다

나는 AI의 교육적 가능성도 그곳에서 본다.

AI는 지금은 할 줄 모르는 일의 첫 시도를 싸게 만들 수 있다. 영어를 잘하지 못해도 해외의 자료와 사람에게 접근해보고, 코딩을 몰라도 생각한 프로그램의 첫 모습을 만들어볼 수 있다. 전문가가 아니어도 궁금했던 데이터를 분석하고, 자기 생각을 글과 영상과 이미지로 현실에 꺼내볼 수 있다.

그리고 결과가 나오면 부족한 것이 보인다.

왜 이건 원하는 대로 안 되지.

이 결과가 맞나.

내가 설명을 잘못했나.

더 잘하려면 무엇을 알아야 하지.

그러면 배움의 순서가 달라질 수 있다.

관심과 욕망 → 첫 시도 → 결과 → 부족함 발견 → 질문 → 필요한 지식 → 더 나은 시도

지식을 배우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지식이 자기 이유를 갖게 된다.

지식은 더 이상 ‘어른들이 중요하다고 하니까 미래를 위해 미리 저장하는 것’만이 아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필요해서 획득하는 힘이 된다.

행위자의 자리

이 지점에서 다시 행위자의 자리가 보인다.

누가 질문을 정하는가.

누가 목표를 정하는가.

누가 실패를 해석하는가.

누가 다음 행동을 결정하는가.

아이에게 늘 정해진 질문을 주고, 정해진 답을 찾게 하고, 정해진 시점에 평가하고, 정해진 다음 단계로 이동시킨다면 아이는 그것을 아주 잘 수행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어느 날 아무도 질문을 주지 않는 세계에 나갔을 때는 어떻게 될까.

AI는 바로 그런 세계를 더 빠르게 만들고 있다.

답은 넘쳐난다.

방법도 넘쳐난다.

도구도 넘쳐난다.

오히려 더 중요해지는 것은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무엇을 믿을 것인가.

무엇을 물을 것인가.

어디까지 해볼 것인가.

를 결정하는 사람이다.

교육은 실패하지 않는 사람보다 다시 움직이는 사람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교육의 목적을 조금 다르게 생각하게 됐다.

아이를 실패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실패한 뒤 다시 움직이게 하는 것.

항상 이기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져도 자신의 존재 전체가 패배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다음 행동을 찾게 하는 것.

모든 것을 미리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것을 다시 배울 수 있다는 믿음과 방법을 갖게 하는 것.

“너는 특별해”라고 말해주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무언가를 해내면서

“나도 할 수 있는 것이 있구나.”

라고 스스로 알게 하는 것.

AI가 효율을 높일수록 사람에게 쓸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

물론 이런 교육은 비효율적이다.

아이의 말을 듣고, 질문을 오래 들여다보고, 엉뚱한 시도를 기다리고, 실패가 포기로 바뀌기 전에 옆에 있어야 한다.

시간도 들고 사람도 필요하다.

아이러니하게도 AI가 효율성을 극단적으로 높이는 시대가 오면서 우리는 교육에서 이런 비효율을 다시 선택할 기회를 얻는지도 모른다.

AI가 자료를 찾고, 반복적인 설명과 기록을 도와준다면 그 남은 시간을 다시 사람에게 쓸 수 있다.

나는 AI 시대의 교육혁신이 그런 모습이었으면 한다.

기계가 사람을 더 잘 가르치는 세계가 아니라, 기계 덕분에 사람이 사람을 더 오래 바라볼 수 있는 세계.

미래를 맞히는 대신 다시 움직일 수 있게 하기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

아마 지금 우리가 예상하는 것과 많이 다를 것이다.

그렇다면 미래를 정확히 예측해 아이에게 필요한 답을 모두 미리 준비시키는 일은 애초에 불가능한지도 모른다.

대신 한 가지는 준비시킬 수 있다.

새로운 세계를 만나면 관심을 갖고, 모르는 것을 질문하고, 필요한 것을 배우고, 쓸 수 있는 도구를 이용하고, 자기 생각을 현실에 시험해보고, 실패하면 고치고, 다른 사람과 겨뤄보고, 다시 시작하는 사람.

그 사람은 미래를 맞히는 사람이 아니다.

미래가 달라져도 다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이제 아이에게 미래를 가르친다는 말을 이렇게 이해하고 싶다.

미래에 필요한 답을 미리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답이 없는 미래에서도 자기 질문을 가지고 움직일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

AI 시대의 교육은 아마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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