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가 다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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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가 다를 뿐 — AI 음악, 누구의 것인가 · 5 / 5

[5편] 자리가 다를 뿐

1. 이름이 두 개인 사건

2025년 가을, 미국 미시시피에 사는 한 시인의 이름이 음악 뉴스에 올랐다. 그는 악기를 다루지 않고 노래도 부르지 않는다. 그가 하는 일은 가사를 쓰는 것이다. 그 가사를 AI에 넣고, AI가 만든 목소리와 반주로 노래를 완성했다. 그렇게 태어난 가상의 가수가 빌보드 가스펠 차트 3위까지 올랐고, 라디오 방송 순위에도 이름을 올렸다. 음반사들이 서로 데려가겠다고 나섰고, 계약금은 수백만 달러였다.

며칠 뒤, 한 현역 R&B 가수가 이 계약을 두고 말했다. 그 사람은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고.

같은 사건인데 이름이 두 개다. 한쪽에서는 기회라고 부른다. 악기를 배울 형편이 안 됐던 사람, 노래를 못 하던 사람이 마침내 자기 노래를 세상에 내놓았다. 다른 쪽에서는 무임승차라고 부른다. 평생 목을 쓰고 손을 쓴 사람들이 하던 일을 버튼 몇 번으로 가져갔다.

둘 중 누가 맞을까. 이 연재를 쓰는 내내 그 질문을 붙들고 있었는데, 다 쓰고 나니 질문이 조금 바뀌었다. 누가 맞느냐가 아니라, 그 말을 하는 사람이 어디에 서 있느냐다. 그러니 먼저 서 있는 자리부터 나눠 봐야 한다.

2. 잃는 쪽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AI 없이 버티는 신인이다. 기타를 치고 화성학을 공부하고, 한 곡에 몇 주를 쓰는 사람. 그 사람이 한 곡을 내는 동안 옆에서는 하루에 스무 곡이 나온다. 버틴다고 그 사실이 바뀌지는 않는다.

그런데 더 조용히 무너지는 쪽이 있다. 광고 배경음악, 영상에 까는 음악, 매장에 흐르는 음악.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채 음악으로 생활하던 중간층이다. 세계 저작자 단체들이 맡긴 한 연구는 2028년까지 음악 창작자 수입의 4분의 1이 위험하다고 내다봤고, 이런 배경음악 시장은 매출의 60% 가까이가 AI로 넘어갈 거라고 했다.

저작자 단체가 낸 전망이니 위험을 크게 그렸을 수 있다. 그래도 방향은 의심하기 어렵다. 가장 먼저 대체되는 건 사람들이 굳이 누가 만들었는지 묻지 않던 음악이다. 그렇다면 같은 파도에 올라탄 쪽은 누구일까.

3. 얻는 쪽

악기라는 문 앞에서 돌아서야 했던 사람들이 있다. 머릿속에 멜로디가 있어도 꺼낼 손이 없던 사람, 가사는 쓰는데 곡을 붙일 수 없던 사람, 남의 노래를 듣고 어디가 좋은지 정확히 짚어 내지만 직접 만들 길은 없던 사람. 재야의 고수, 귀가 밝은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AI는 침입자가 아니라 열쇠다. 미시시피의 그 시인처럼.

다만 여기서 들뜨면 안 된다. 어느 스트리밍 플랫폼에는 지난 6월 일부 날에 하루 올라오는 곡의 절반 이상이 AI였다. 문이 열리자 모두가 들어왔고, 그 많은 곡 가운데 누군가의 귀에 닿는 건 극소수다. 시인의 성공은 복권 당첨에 가깝다.

관문은 사라지지 않았다. 옮겨 갔을 뿐이다. 예전의 관문이 악기였다면 지금의 관문은 들려지는 것이다. 만들 수 있는 사람은 많아졌는데, 들어 줄 귀의 수는 그대로다.

4. 공장은 원래 있었다

동네 카페에 앉아 있으면 유튜브 플레이리스트가 흘러나온다. 잔잔하고 거슬리지 않고, 끝나도 무슨 노래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 음악은 누가 만들었을까.

AI가 처음 그런 음악을 만든 건 아니다. 앞에서 본 것처럼, 어느 큰 스트리밍 회사는 AI가 나오기 전부터 배경음악 목록에 값싸게 만든 곡을 채워 넣었다. 스무 명 남짓한 제작자가 500개 넘는 이름으로 곡을 댔다. 공장은 원래 있었고, 사람이 돌리던 공장이었을 뿐이다. AI는 공장을 새로 지은 게 아니라 그 공장에서 사람을 뺐다.

그러면 공장이 만들지 못하는 건 뭘까. 시를 가지고 한 실험을 다시 떠올린다. 사람들은 AI가 쓴 시와 시인이 쓴 시를 가려내지 못했고, 열네 가지 평가 항목 가운데 열세 가지에서 AI의 시를 더 좋게 봤다. 그런데 딱 하나, 독창성에서만 AI가 앞서지 못했다. 사람이 이긴 게 아니라 비긴 것이지만, AI가 넘지 못한 자리는 거기 하나였다.

이 결과가 말해 주는 게 있다. AI는 누구나 느껴 본 그리움, 누구나 아는 이별 같은 익숙한 감정에 빨리 닿는다. 그래서 공장형 플레이리스트는 AI의 몫이 된다. 하지만 두고두고 곱씹게 되는 가사, 듣는 사람이 자기 이야기라며 오래 붙잡는 가사는 아직 사람 쪽에 있다. 아직이다. 이것도 언젠가는 뒤집힐 것이다.

5. 증명 말고 호소

이 연재의 두 번째 글에서 나는 무대가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한다고 썼다. 무대 위의 몸은 가수가 사람이라는 것만 말해 줄 뿐, 곡이 누구의 것인지는 말해 주지 않는다고.

그 말은 지금도 맞다. 하지만 증명과 호소는 다른 문제다. 증명은 이 곡이 누구 것이냐를 묻고, 호소는 이 노래가 나에게 닿느냐를 묻는다. 증명은 사라지고 있지만, 호소는 여전히 사람의 몸을 통과한다. 같은 노래라도 누가 어떻게 소화해서 부르느냐에 따라 사람들이 붙잡기도 하고 흘려보내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에게 남는 자리는 두 개다. 하나는 무대에서 노래를 자기 것으로 소화해 사람들에게 닿게 하는 몸이다. 다른 하나는 아직 아무도 이름 붙이지 않은 감정 앞에 먼저 가서 서는 일이다. 익숙한 감정은 공장이 더 빨리 만들지만, 아직 없는 감정은 누군가 먼저 느껴야 노래가 된다.

미시시피의 시인으로 돌아간다. 그는 기회를 얻은 사람인가, 남의 일을 가져간 사람인가. 이제는 둘 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문이 열려 들어온 사람에게는 기회고, 그 문을 지키며 살아온 사람에게는 위기다.

같은 변화를 누군가는 위기라 부르고, 누군가는 기회라 부른다. 틀린 사람은 없다. 자리가 다를 뿐이다.

출처와 참고자료

사례

  1. CNN(CP24 게재) (2025.11.1). Xania Monet is the first AI-powered artist to debut on a Billboard airplay chart, but she likely won’t be the last. https://www.cp24.com/news/entertainment/2025/11/01/xania-monet-is-the-first-ai-powered-artist-to-debut-on-a-billboard-airplay-chart-but-she-likely-wont-be-the-last/
  2. Wikipedia. “Xania Monet”(Billboard 2025.9.16·9.19 보도 인용). https://en.wikipedia.org/wiki/Xania_Monet

산업과 시장

  1. CISAC (2024.12). Global economic study shows human creators’ future at risk from generative AI(PMP Strategy 수행). https://www.cisac.org/Newsroom/news-releases/global-economic-study-shows-human-creators-future-risk-generative-ai
  2. Deezer (2026.7.21). AI music has surpassed 50% of new music uploads for the first time. https://newsroom-deezer.com/2026/07/ai-music-exceeds-50-percent-daily-uploads-deezer/
  3. Renshaw, D. (2024.12.19). Report: Spotify is populating its playlists with ‘ghost artists’. The FADER. https://www.thefader.com/2024/12/19/report-spotify-is-populating-its-playlists-with-ghost-artists
  4. LANDR (2025). AI 사용 실태 설문. Hypebot 게재(2025.11.20). https://www.hypebot.com/hypebot/2025/11/new-survey-reveals-how-87-of-artists-really-use-ai.html

연구

  1. Porter, B. & Machery, E. (2024). AI-generated poetry is indistinguishable from human-written poetry and is rated more favorably. Scientific Reports, 14, 26133. https://pmc.ncbi.nlm.nih.gov/articles/PMC11564748